이병욱 교수 (건국대학교 기계공학과 학과장)

 

카이스트를 거쳐간 여러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가족다음으로 오랜 기간 함께 살아온 친구, 룸메이트(roommate)가 있다. 고교 기숙사에서 시작하여 대학을 거쳐 대학원까지, 심지어 방학 때 서울로 여행을 와서도 같은 방을 썼다. 가끔씩 우리는 다른 친구들과 방을 쓰면서 외도(外道)아닌 외도를 하기도 했는 데, 다른 방을 쓸 때도 우리는 여전히 룸메이트처럼 행동을 했다. 우리가 특별히 가까웠던 것은, 학창시절 가장 스트레스가 많아 힘들었던, 고교 2학년, 학사 2학년과 3학년, 석사 1학년을 함께 지낸 때문이리라. 석사 1학년 때였던가? 과하게 먹은 술을 게워내느라 속이 아파 침대에 꼬꾸라져 버린 나를 처량히 쳐다보던 룸메이트는 축 쳐진 나의 손을 한참이나 잡아주며 힘내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그에게는 혜원이라는 S여대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그녀에게는 6살 연상의 결혼할 애인(愛人)이 있었는데도, 룸메이트에게 연락해서 갖가지 물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가끔 룸메이트를 따라 서울에서 혜원이를 만났던 나는, 그 묘한 만남에 호기심이 들곤 했다.


룸메이트는 책을 구입해서 끝 페이지까지 읽고는 사과박스에 곱게 모아두는 것을 좋아했는 데, 최고의 재산은 다 읽은 책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독서를 통해 인간관계의 깊은 면을 깨닫고 있었던 그는 내게 따끔한 지적을 해 주곤 했다. 여자에 빠지지 말라, 친구들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하지 말라, 서두르지 말라는 것 등등. 낯선 여학생들과의 만남, 소위 미팅(meeting)은, 오랜 학창시절 만큼이나 많았지만, 그 만남에서 룸메이트와 내가 애인을 만들었던 기억은 없다. 함께 미팅에 가면, 늘상 우리만의 이야기에 빠져 여학생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 같다.


룸메이트의 유일한 단점은 대학 2학년 때 시작한 담배 태우기였다. 학업스트레스 해소로 시작한 그의 흡연은 기숙사에서 지내는 내내 가끔씩 분쟁의 소지가 되곤 했다. 룸메이트는 방 밖의 휴게실에서 담배를 태웠지만, 쾌쾌한 냄새는 그만두더라도 담배에 찌든 그 모습은 룸메이트의 멀끔한 외모와 어울리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담배에 찌든 룸메이트를 볼 때마다 내가 담배 피우기를 막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친구관계의 끝은 결혼이라고 했던가? 졸업 후 내가 갑작스레 결혼을 하면서, 우리의 연락은 확연히 뜸해졌다. 사회생활이 바빠지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생기면서, 나는 룸메이트에게 연락할 정신적 여유가 없어졌고, 그 역시 부담스러운지 연락이 뜸했다. 그렇게 훌쩍 십 여 년이 지나자 친구들의 행사에 가끔씩 만나 담소를 나누는 것으로 우정을 확인할 수 밖에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카이스트를 졸업 한 후, 벤처기업에 들어가 온갖 험한 고생을 다 겪던 룸메이트는, 이제는 제법 괜찮은 벤처기업의 소유주이자 사장이 되었다. 잘 지내냐는 나의 연락에, 하루하루가 ‘전쟁’이라는 문자 답장을 보내긴 하지만 말이다.


사십 줄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총각인 룸메이트는, 결혼해서 부인이 챙겨주는 밥을 먹으라는 나의 말에, 혼자 사는 것이 편하고 결혼은 매우 귀찮다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친구들의 경악 속에 출판했던 나의 첫 로맨스 소설을 누구보다 빨리 읽고는 꽤나 재미있다는 어거지평을 했던 룸메이트.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마다, 십 대의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인생(人生)의 최고가치에 대해서 토론을 했던 열정과 함께, 흩날리던 머리칼에 가린 핸섬(handsome)하면서도 심오한 룸메이트 얼굴이 꽤나 그립다.



편집자 주: 이병욱 교수는 우리 학교를 학사 93학번, 석사 97학번, 박사 99학번으로 졸업한 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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