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만이 볼 수 있는 것

 

조애리 인문사회학부 교수

 

올해는 140여 편의 시가 투고 되었다. 아마도 릴케가 그다지도 원했던 “사흘만 더 남국적인” 가을날이 아니라 한 달이나 더 이어진 가을날이 한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교내 분위기가 팽팽한 긴장에서 순간순간의 느낌에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여유로 바뀐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슬픔과 사랑과 희망과 연민의 느낌을 솔직하게 적은 140편의 시들을 읽는 일은 즐거웠으며 이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고자하는 학생들의 시도가 반가웠다. 시인으로 가득 찬 교정을 걷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기도 했다.

시는 우리가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을 어쩜 저렇게 잘 표현할까 할 정도로 생생하게 재현하기조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우리가 한 번도 생각지 못한 것을 상상하게 한다. 백석은 눈이 와서 나타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고 한다. 140편의 시 중에 1차 심사를 통과한 시는 조영민, 오지연, 박정수, 도준엽의 시였다. 이 시들은 현상에서 출발하지만 현상을 넘어서는 차원을 동시에 거머쥐고 있어서였다. 이 중 도준엽은 이미 1학년 때 당선작을 쓴 시인이라 제외했고 남은 후보 중 조영민에게 당선작을 오지연에게 가작을 수여하기로 했다.

오지연은 ‘외로움의 집’에서 자신을 “모래바람에 바스러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모래이기를 거부하여 “비를 바라는” 존재로 묘사한다. 이런 다층적인 자기 인식이 오지연의 빼어난 점이지만 이것에 천착하여 좀 더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쉽다. 단지 다층적인 데 그치지 말고 모순을 포착하거나, 절망을 넘어선 희망, 희망에도 불구하고 끝내 떨쳐지지 않는 절망 쪽으로 나아갔으면 더 좋은 시가 되었을 것이다. 또 하나 오지연의 장점은 “검은,” “쪽빛,” “먹빛” 등의 생생한 색채감과 아울러 “어둡게 흘러내리는 햇빛” 같은 표현에서 보이는 색채와 촉감이 어우러진 순간을 엮어내는 능란한 솜씨다.

조영민의 시에서 놀라운 것은 사물을 발견하는 힘이다. 조영민이 이렇게 보기 전에는 누구도 물고기를 “환희” 나 “웃음” 혹은 “단말마”와 연관시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눈을 통하여 물고기는 “환희에 물든 움직임”을 보이는 사물로 발견된다. 그렇다고 물고기에 시인 자신, 혹은 인간의 기쁨이 투사된 것은 아니다. 이 점이 그의 뛰어난 장점이다. 즉 그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새로운 사물을 발견하고 창조한다. 조영민의 투고 작 중 인간의 감정이 투사된 ‘해바라기’보다 ‘물고기’를 선정한 이유도 바로 이런 장점 때문이다. 이 시에서 물고기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모든 연에 움직임이 한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이어 “파문,” “던진 덩어리,” “움직임,” “튀어 오르는,” “내뱉은” 등의 움직임은 아주 자연스럽게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와 얽혀든다. 튀어오르는 물고기는 때로는 휘황찬란하기도 하고 때로는 흙색이기도 하며 때로는 웃음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때로는 단말마를 내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능숙한 이미지의 재현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응축된 은유 혹은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는 점이다. 에즈라 파운드 ‘지하철 정거장에서’라는 짧은 시를 보면 자신의 결여가 무엇인지 시인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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