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노블’. 어디서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정확한 뜻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단순히 ‘그래픽’과 ‘노블’로 단어를 분리해서 ‘그림으로 이뤄진 소설’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부족하고, 만화와 소설이 합쳐졌다고 하기에도 모호하다. 하지만 오늘날 그래픽 노블은 만화라는 장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영화, 게임 등 다양한 장르로 리메이크되며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그래픽 노블이 무엇이고,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렇게 주목 받고 있는 것일까?       
 
 
완결된 이야기, 그래픽 노블
그래픽 노블은 만화를 일컫는 다른 단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소설처럼 길고 복잡한 이야기를 지니고, 이야기가 완결되는 만화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78년 미국의 윌 아이스너라는 만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면서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는 작품이 기존의 ‘코믹북’과는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그래픽 노블’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후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가 완결성을 지니는 만화를 일컫는데 사용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코믹북과 그래픽 노블은 어떤 점에서 다를까. 
만화가 미국에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대공황기다. 힘든 시기를 지내는 미국의 대중은 환상적이고 모험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만화에 빠져들었고, 만화 속 영웅의 승리에 환호했다. 1938년 <액션 코믹스> 창간호에 처음 등장한 <슈퍼맨>을 시작으로 영웅이 등장하는 ‘히어로물’은 이후 큰 인기를 끈다. 초록 안개로 변신하는 <어매이징 맨>, 거미인간 <스파이더 맨>, <배트맨> 등 미국 만화계는 히어로물이 주류가 되었고, 이런 히어로물을 만드는 DC Co-mics(이하 DC 코믹스)와 MAR VEL(이하 마블)이 미국 만화 시장을 양분했다. DC 코믹스와 마블에서 제작하는 만화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만화(코믹북)와는 약간 다르다. 코믹북은 한 화의 마지막 부분이 다음 이야기에 대해 궁금증을 갖게 하는 쪽으로 마무리 되어 각 이야기가 완결성을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은 한 화가 각각 완결된 이야기를 갖는다. 이렇게 소설처럼 완결된 서사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 ‘novel’을 따서 그래픽 노블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작품들은 얼핏 보면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가 그래픽 노블을 떠올릴 때의 이이지는 소설처럼 긴 대사, 무거운 분위기, 철학적 메시지, 강한 색채까지 무엇인가 공유하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을 이렇게 단순하게 정의하기에는 범위가 너무나도 넓을뿐더러 그 범위 조차 모호하다. 그래서 혹자는 그래픽 노블을 설명할 때 ‘여집합’ 개념을 사용하기도 한다. 기존의 만화가 지녔던 특성을 지니지 않는 만화를 모두 그래픽 노블이라고 하자는 것이다. 이렇듯 그래픽 노블은 기존의 만화와 다른 무언가로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그래픽 노블의 대표, 히어로물
그래픽 노블의 대장격인 히어로물은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크로스 오버’와 ‘유니버스’라는 개념도 만들어냈다. ‘크로스 오버’는 각각의 능력과 개성을 지닌 만화 속 인물이 서로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는 것을 뜻한다. 마블의 전신인 ‘타임리 코믹스’에서 ‘서브마리너’와 ‘휴먼토치’라는 서로 다른 캐릭터를 한 작품에 등장시킨 것이 첫 번째 크로스 오버다. 같은 해, DC 코믹스에서는 12명의 DC 코믹스 캐릭터를 ‘JSA’라는 팀으로 묶었고, 모든 캐릭터를 같은 세계관으로 통일했다. 현재까지도 크로스 오버가 계속 이뤄지고 있고, DC 코믹스의 세계관은 ‘DC 유니버스’, 마블사의 세계관을 ‘마블 유니버스’라고 한다. 이런 세계관 아래에서 진행되는 완결된 이야기 하나를 ‘스토리 아크’라고 하며, 이를 책으로 엮어 내면 그래픽 노블이 된다. 
 
대표적인 그래픽 노블
그래픽 노블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은 앨런 무어의 <브이 포 벤데타>다. ‘브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유를 잃은 미래 세계를 표현한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그래픽 노블 역사에 남을 명작으로 여겨진다. 또, 앨런 무어의 작품인 <왓치맨>도 타임지에서 선정한 1923년 이래 출간된 영문소설 걸작 100선에 들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다. 작년 여름 개봉했던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인 프랑스의 프랑스의 <Le Transperceneige>,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작도 그래픽 노블이다. 

 
우리나라의 그래픽 노블 시장
우리나라의 그래픽 노블 시장은 미국에 비하면 턱없이 작고, 매니아층도 얕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매거진 <그래픽 노블>이 그 주인공이다. 1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매거진 <그래픽 노블>은 피오니 북스에서 발간되고 있다. 창간호 두 호에서는 추천하는 그래픽 노블 100권을 간략하게 소개했고, 한 달에 한 권씩 작품 하나에 대해 깊이 설명하는 방식으로 발간된다. 현재까지 창간호 두 호와, ‘땡땡의 세계’, ‘좀비 그리고 워킹데드’, ‘보바리 그리고 보배리’까지 총 5권이 발간되었다. 피오니 북스의 관계자는 그래픽 노블을 ‘글과 그림을 이용해 만든 이야기 예술’이라고 칭하며 그래픽 노블을 만드는 창작자의 태도와 작품의 깊이에 대해 탐구하고 싶어서 매거진 <그래픽 노블>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래픽 노블을 ‘예술을 추구한 만화’라고 이야기하며 “표현이 단순하다고 꼭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윌 아이즈너의 표현을 빌렸다. 그래픽 노블은 이야기를 다양한 방법과 스타일로 실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매체와 구분되고, 자유롭게 구성해 재미를 전할 수 있어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만화를 2류 문화, 저급 문화로 여겨 그래픽 노블을 접할 기회도 많지 않다. 하지만, 매거진 <그래픽 노블>을 시작으로 사람들이 그래픽 노블에 대해 좀 더 알고,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그래픽 노블 시장도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 <그래픽 노블>에서도 한국의 그래픽 노블을 소개했다. 지난 2004년 미국 만화계의 3대상을 휩쓴 데릭 커크 킴의 <난 어느나라 사람일까>와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상을 수상한 전정식의 <피부색깔=꿀색>, 한국 인디 그래픽 노블 계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앙꼬의 <삼십 살> 등 우리나라 그래픽 노블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그래픽 노블, 다른 분야와 협업하다
그래픽 노블이 가장 확장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영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보다는 영화를 통해 접할 정도로 다른 분야로의 진출이 활발하다. 다양하게 리메이크된 <슈퍼맨>부터 <다크나이트> 시리즈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배트맨, <어벤져스>와 에 화려한 영상미도 결합해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또, 웹툰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웹툰도 연재 중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고영훈 작가가 그리는 ‘어벤져스 : 일렉트릭 레인’은 어벤져스의 원작 회사인 마블과 공식으로 협력해 웹툰 형식으로 연재하고 있다.

아직까지 그래픽 노블은 매니아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그래픽 노블은 우리가 지금까지 봐왔던 일본의 ‘망가’와 우리나라의 ‘만화’에 비해서도 인기를 끌 요소가 충분하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독특한 분위기, 높은 완성도를 갖춘 그래픽 노블이 조금 더 알려지고, 우리나라 그래픽 노블 시장도 커져간다면 우리나라 만화의 재기를 이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만화가 유치하다는 인식을 버리고, 그래픽 노블을 만나보자. 어느새 그래픽 노블 매니아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하정 기자
hajung0206@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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