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서 흐르는 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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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서 흐르는 땀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4.11.08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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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영 미래전략대학원 석사과정
얼마 전, 필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한국을 방문하신 국제응용시스템분석 연구소(iiasa)의 한국인 고문님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필자는 저녁 식사로 나온 불고기를 앞에 두고 두세 개의 멜로디를 머릿속으로 끄적인 후에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으로 답을 했다. 라흐마니노프, 실제로 필자에게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가 함께 있었다. 생물학적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873년 4월의 첫날, 러시아에서 태어나 1943년 3월 28일에 캘리포니아의 베버리힐즈에서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음악들은 그 후의 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필자의 생물학적 삶에까지 여전히 깊고 진한 영향을 주고 있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받는 생물학적인 영향이란 이런 것이다. 누군가를 한없이 사랑하느라 내 영혼을 다 써버린 때에는‘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에서의 낭만적인 선율이 내 영혼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깊이 흐르기 마련이다. 탈진한 것 같은 온 사랑의 밑바닥에 낭만이 차 있다. 그 섬세하고도 다정한, 동시에 깊은 우울과 기나긴 외로움을 동반하기도 하는 서정은 필자에게 있어 ‘라흐마니노프적’인 것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피아노 소나타 작품인 ‘악흥의 순간’ 역시 극한을 향해 치닫는 예술적 감흥의 순간들이 응축된 초절정의 건반 여행이다. 음악이 시간을 응축하는 것일까. 시간이 음악을 응축하는 것일까. 예술 감상에 있어 시공간적 응축에 대한 존재에의 고민은 콘서트 홀에서든 뮤지엄에서든 서점에서든 필자를 곧잘 따라다니는 고민이기도 하다.

독주회에서 악흥의 순간을 만날 때 필자는 무대 위 연주자가 해석하며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바로 그 예술적 감흥을 연주자와 함께 놓치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고 싶어 온몸의 촉수를 다 써버리고 싶은 심정일 때가 있다. 그럴 땐 연주자의 온몸에서와같이 나에게서도 땀이 난다. 나로 하여금 땀을 흘리게 하는 예술가. 어떤 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연주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듣고 나면 식은땀이 흐를 때가 있다. 그 땀은 몸과 영혼 모두에서 흐르는 것임을 느낀다.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어떤 응축을 발현하게 하는 예술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흐른다. 어디론가 흐른다. 그러나 결코 흩어지지는 않는다. 사라지지도 않는다.

예술에서의 응축은 절제하는 성숙을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필자에게는 라흐마니노프적인 응축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가 나에게 있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이며 예술가라 할지라도, 필자가 삶에서 라흐마니노프적인 응축을 실현하고 따르기에는 필자는 한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러니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랑하므로 듣고 또 들으며 공부해야 한다. 예술을 보고 느끼며 흐르는 땀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내면 빗줄기는 어딘가로 향하려 하는 듯한데 그곳이 어디인지를 나는 아직 모르지만, 향하고 싶다.

그곳은 어디일까? 다음에는 내가 그 고문님께 질문할 차례다. 먼저, 라흐마니노프에게 질문해야겠다. 질문은 음악에서 시작된다. 카이스트 학우들에게 이 가을이 끝나기 전에 보칼리제 Op.34-14의 선율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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