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종 (화학과 13)

미국에 있는 동안,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인 채 많은 일을 겪었고, 덕분에 지금 내 머릿속엔 수백 가지‘ 느낀 점’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약간의 고민을 거친 후, 정돈되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을 모조리 늘어놓기보다는 미국에 도착하고 꾸준히 느꼈던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해서 쓰고자 한다. 바로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라는 오래된 - 동시에 상당히 낡은 -격언이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옳다는 점이다.
 
난 방학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했다. 3개월 정도 같이 샌프란시스코에 일하러 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듣고 좋은 기회라 생각해 급하게 출국을 준비했고,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서의 2달은 흥미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의 연속이었다. 만난 사람 중 다수가 하버드대학교, MIT, 스탠퍼드대학교 등 세계에서 손꼽는 대학에서 공부했고, 전세계에서 사용 중인 서비스를 개발한 IT 기업이나 유명한 벤처 캐피털에서 일하는 사람도 적지 않게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만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같이 온 고수 개발자인 고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하루하루 실무에 쓸 수 있는 다양한 지식과 기술들도 배우고는 했다.
이런 환경에 놓이다 보니 하루하루 엄청난 긍정적인 자극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실 그 자극들을 모두 소화해 내지는 못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 언어적 장벽이 정말 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때까지는‘ 그래도 이 정도면 외국 나가서 의사소통에 문제는 없겠구나!’라고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었다. 한데 웬걸, 관광객의 입장일 땐 어떨지 몰라도 직접 이곳에 거주하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에게 내 생각을 온전히 전달하기에 내 영어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언어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보니 식당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주문할 때에도 걱정이 앞서게 되었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도 말을 걸기 꺼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스타트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개발자들을 정말 많이 만나는데, 나는 대학에 와서 개발을 처음 시작한 터라 사실 관련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듣고만 있는 처지가 되거나, 이야기의 흐름에 잘 끼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공부만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공부 해 놓을걸!’ 이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개발자로서 이야기할 때 난 그들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못 한 존재인 셈이었다. 좋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기본적인 전산 개념들을 알고, 사실 이런 것들은 여기선 너무나도 당연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흥미로운 사람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에 날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완전히 똑같을 순 없는 노릇이다. 분명히 한국에서 내게 주어진 것들 중 소홀히 한 것은 별로 없었지만,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다 보니 주어진 것만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정말 크게 들었다. 영어도, 개발도, 그 외의 모든 것도 누군가가 내게 시켜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을 발전시키려 노력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게 실력을 키워 놓아야만 비로소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100% 잡을 수 있다는 걸 하루 하루 체감했다.
 
내게 주어진 이 기회를 100% 잡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이 기회를 통해 얻은 큰 수확이 하나 있다. 내가 알던 세상보다 훨씬, 훨씬 큰 세상이 있고, 그 큰 세상에서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선 매일을 더 치열히 살아가고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게 내가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느낀' 가장 큰 점이다. 그러한 태도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모르는 것을 묻고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걸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온전히 잡아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글을 읽고 있을 학우들뿐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진심으로 전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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