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딛고 세계인의 유산으로, 남한산성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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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딛고 세계인의 유산으로, 남한산성을 걷다
  • 김하정 기자
  • 승인 2014.07.30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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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며 우리나라는 11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서울을 지키는 요새 중 하나인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은 경기도 성남시와 광주시, 하남시에 걸쳐진 광주산맥을 따라 쌓여있다. 남한산성은 어떻게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을까. 남한산성을 찾아가보았다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이 되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 중 두 개를 만족했다. 우선 축조 시 동아시아의 산성 축조 기술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특정 기간이나 문화권 내 건축이나 기술발전, 도시 계획 등에서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라는 조건을 만족했다. 또 다른 나라의 기술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에 맞춰 적용하는‘ 적합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교류의 증거는 남한산성의 본성과 외성의 차이로도 확인할 수 있다. 남한산성의 본성은 신라 문무왕 때 세워졌던 주장성을 기본으로 세워졌고, 외성은 본성보다 늦게 세워져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축성기법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둘째로,‘ 인류 역사의 중요 단계를 보여주는 건물, 건축,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탁월한 사례’라는 조건의 경우 남한산성이 비상시 임시 수도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실제로 17세기 병자호란 당시 조선의 임시 수도로 쓰였던 것이 조건을 만족했다고 평가되었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무기를 보관하는 시설이 증축되었고, 병자호란 이후에는 당시 부족했던 점을 보충하기 위한 내성과 옹성이 추가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 남한산성 내에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살아있는 유산’의 가치 또한 인정받았다.
 
남한산성 내부에 있는 행궁의 경우, 타 산성의 행궁과는 달리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다. 즉, 비상시의 임시수도의 기능을 모두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한 산성인 것이다. 이런 고유하고 독특한 의미를 인정받아 남한선산성은 산성의 영어 번역어인 Mountain Fortress가 아닌, ‘Namhansanseoung’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남한산성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무릎을 꿇었던 치욕스러운 현장이라고만 기억한다. 하지만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자존심을 지켰던 곳이다. 수어장대 2층에 있는 누각의 이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치욕을 잊지 말자는 뜻의 ‘무망루’라는 이름이 붙은 이 누각에서 조선 후기의 여러 임금이 자주를 위한 결의를 다지곤 했다.

 

 

직접 올라본 남한산성
 
남한산성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수도권광역철도 8호선 산성역에서 내려 남한산성이 종점인 시내버스를 타야 한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20여 분을 달리면 남한산성의 중앙, 산성로타리에 도착하게 된다. 산성로타리에 내린 사람들은 원하는 코스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남한산성을 탐방하려는 사람들은 보통 5개의 코스 중 하나를 택해 걷는데 1시간이 걸리는 2코스부터 3시간 30분이 걸리는 5코스까지 원하는 시간과 난이도에 따라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본지에서는 남한산성의 대표 유적을 거치는 1코스를 직접 걸어보았다. 1코스는 산성로타리에서 시작해 북문과 서문, 수어장대와 영춘정, 남문을 거쳐 시작점인 산성로타리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한 바퀴 도는데 80분 정도가 소요되며 경사가 급한 부분이 많지 않고 볼거리가 다양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코스다.
 
1코스를 따라 한 바퀴 돌면 북문과 서문, 남문을 차례로 만날 수 있다. ‘전승문’이라고 불리는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법화골 전투’에서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청군에게 전멸당하고 만다. 이후 성곽을 보수할 때 법화골 전투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전승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문은 서울의 시가지와 가장 가까운 문이다. 산 서쪽의 경사가 급해서 물자 이송에는 자주 쓰이지 않았지만 송파나루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가까운 문이어서 중요한 방어기지였다. 서문 옆에서는 ‘서암문’도 볼 수 있다. 암문이란 적의 관측이 어렵도록 설치한 작은 문인데, 이 서암문은 성벽의 방향과도 다르고, 옆의 지형에 맞춰 작게 설치되어 눈에 쉽게 띄지 않는다. 남문은 현재 우리가 남한산성에 들어가기 위해 통과하는 입구다. 주차장과 버스정류장이 있어 남문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북문에서 서문까지의 길에서는 소나무 숲이 장관이다. 커다란 소나무와 반대편의 탁 트인 도시 전경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서문에서 남문까지는 수어장대가 있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가서 군대를 지휘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지은 건물을 뜻하는데, 남한산성에는 총 5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수어장대만 남아있다. 수어장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공식 엽서 사진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그 풍채가 아름답다.
 
남한산성은 역사와 이야기, 자연이 공존하는 우리의 보물이다. 남한산성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인조가 머물렀던 남한산성 행궁, 만해 한용운 선생의 기념관과 신익희 선생의 동상, 산성 내의 절 또한 남한산성의 볼거리다.
 

진정한 세계문화유산,우리의 노력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남한산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모자란 부분도 있었다. 외성의 등반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구간도 있었고, 아직 복원 중인 공사장이 풍경을 해쳤다. 산길 옆에는 출입이 금지된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돗자리를 편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에 대한 제지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등반로 옆에서는 음식물을 판매하는 노점상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는데,‘ 노점상의 물건을 사지 말자’라는 현수막 바로 아래에서 장사를 하는 모습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잘 드러냈다. 또, 인력이 부족해서인지 등반로에 있는 문화재나 행궁에서 관리인의 모습을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에는 6년마다 유네스코의 모니터링을 받게된다. 이 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세계문화유산의 가치에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게 되면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분류된다.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등재 목록에서 삭제된다. 이런 일이없기 위해서는 남한산성에 대한 관리가 조금 더 철저해져야 할 필요가 보였다. 또, 시민들도 이제는 우리만의 유산이 아닌 세계인과 함께 나눌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아끼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죽어서도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의 한 구절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 최후의 항쟁지이며, 자주의 결의를 다진 곳이다. 남한산성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적인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를 부정해서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남한산성에 담긴 의미를 잘 기억하고, 지켜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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