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수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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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수업료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4.05.1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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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는 복기라는 절차가 있다. 결과는 이미 가려졌으나 그럼에도 무엇이 승수(勝手)고 어느 곳이 패착인지 살핌으로써 반성의 기록으로 남기려는 것이다. 이 글을 복기하는 심정으로 쓴다. '중앙일보 교육개발연구소 선정 대학교 순위 1위', '영국 타임지 선정 세계 대학 순위 56위'그리고 각종 찬란한 수상기록… 이 찬란한 성적표를 가지고도 2011년, 2012년에 이어 올해까지 일어난 유감스러운 일들을 돌아보자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이다. 왜였을까? 차분하게 인과관계의 퍼즐을 맞춰보자.

카이스트는 지리적, 학문적 특성 외에도 여타 대학들과 대단히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대부분이 과학 고등학교 조기졸업자 출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압축성장과 어려운 시절을 보낸 학부모의 기대의식이 수재들을‘ 양산’했다. 재수, 삼수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일류대에 1년 월반(越班)한 이들의 학업 능력은 대단히 우수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속도경쟁’의 슬픈 산물이기도 하며 구조적인 불균형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항상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니 자존감과 주체성이 약하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목표를 성취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본인만의 이유를 찾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영재들을 KAIST까지 인도하는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보다는 불안감과 비교의식이 큰 몫을 했다.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 간판’이라는 간편한 자기 증명을 보다 빨리 취득하게끔 한 것이다. 결국, 희미한 열정은 사그라지고 대학생활이 시험을 위해서 공부하고, 다음 단계의 직업을 가지기 위한 고통스러운 과도기로 인식되는 것이다. 행복을 찾을 권리를 유예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학우들은 사회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심, 즉 삶의 다양성이 결핍되어 있다. 습관화된 경쟁심이 경쟁과는 무관한 분야까지 침투하여 현재의 성적과 진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독서, 교양 따위의 관심거리에 눈멀고 귀먹게 한 까닭이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자신을 자기 안에 갇히게끔 한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인생을 뒤흔들기 쉽게 된다. 이러한 태도로 우리의 정신은 쉬지 못하고 자극에 민감해지고, 분별력과 균형감각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자기연민과 극단주의로 빠져들기도 쉽다.

나에게도 주체성과 삶의 다양성이 결핍된 초기 과기원 생활은 혹독한 고통이었다. 외면화된 삶의 방식에 굴종했다. 맹렬한 자기 성찰 없이 당장 닥친 시험을 치기에만 급급하다 보니“ 눈앞 인간”이 되어갔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오는 갈증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독서를 하고 폭넓게 사회와 접촉하여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세상과 나와의 관계를 명확히 규명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아니하였다. 내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였고, 불안감을 마치 고난받는 순교자처럼 자기 연민으로 포장하고 습관처럼 원인을 외부에 돌리곤 했다.

우리는 개개인의 주체성을 학교 및 사회, 주변 사람들로부터 탈환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삶을 동력을 외부, 일반적인 동질성에서 찾는 데 나는 크게 반대한다. 그 동력이 밖에 있다면 상황이 변할 때의 좌절감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현대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에고이스트’ 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무엇을 배우고 싶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여물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끊임없이 자문하고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정립해야한다. 그리고 다양한 학문과 주변 세계, 사람들에 폭넓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를 읽고 주인공‘ 한스’ 와 나를 비교해보기도 하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고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과연 어떤 것인지 자문해보기도 해야 한다.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하면서 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얼마나 미약한지도 몸으로 느껴 봐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궤적을 수정하는 일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참된 젊음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제도와 환경이 변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를 바로 보기'는 먼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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