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에서는 노예무역이 금지된 이후 노예의 보급을 위해 자유인인 흑인을 납치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했다. 이를 막기 위한 법도 제정되었지만, 그럼에도 무고한 흑인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흑인의 대부분은 원래 살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에서 주인을 모시며 평생 일해야 했다. 좋은 주인을 만난 노예는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품이 좋지 않은 주인을 만나면 개나 돼지 같은 가축보다도 못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노예들의 등은 채찍 자국으로 성한 법이 없었고, 높은 상품가치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모자란 양의 밥을 먹어야 했다. 배움의 기회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솔로몬 노섭은 이런 처우를 받은 노예 중 한 명이었다. 12년간 루이지애나에서 노예‘플랫’으로 산 후 가까스로 탈출해 1853년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다.

자유의 몸이 된 후 그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12년을 담은 책 <노예 12년>을 발간했다.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노예12년>은 아카데미 시상식 예술작품 부분과 골든 글로브 작품부분에서 상을 받았고 더불어 원작인 책도 이목을 끌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신안군 염전 노예사건과 맞물려 더욱 큰 관심을 받았다.

 

관찰자의 눈으로 보는 노예제도

12년의 세월 동안 솔로몬은 수많은 주인을 모셨지만, 영화 속 솔로몬의 주인은 포드와 엡스로 두 명이다.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 중에는 간혹 포드처럼 주인이 온화한 성품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엡스 같은 난폭한 주인이 태반이었다. 좋은 주인 아래에서는 형편이 나았지만 흉포한 주인 아래에서 노예들은 가혹한 행위를 당했다. 단지 검은 피부 때문이었다. 영화는 특정한 사람의 관점을 빌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장면을 구성했다. 그들이 겪었던 어려움과 그 속에서 느꼈던 감정이 그대 로 드러났기에 다큐멘터리 같다는 느낌도 든다. 관람하는 동안 불편하고 피로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주제이지만, 굵직한 사건들을 긴장감있게 연결해 끝마무리까지 무리 없이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노예의 시선으로 보는 그들의 삶

책 <노예12년> 또한 최대한 객관적으로 12년 동안 일어났던 일을 서술했다. 노예 시절 사건들과 노예에서 풀려난 이후 법정에서 겪었던 일이 영화에서 생략된 것 이외에는 내용에서 큰 차이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솔로몬과 노예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12년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라면, 책에서는 솔로몬이 자신이 12년간 겪었던 일을 설명하며 이를 녹음한 녹음기를 틀어준다. 영화가 솔로몬 노섭이 겪었던 야만적인 제도를 사실적인 장면으로 고발한다면 책 속에서 솔로몬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스스로가 겪었던 일의 근본적인 원인을 꿰뚫어보며 독자들에게 그 생각을 전달 한다. 바로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환경에 저항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이다. 노예를 짐승처럼 다루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노예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잊어버렸다. 노예로 평생을 살았던 흑인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두려움과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솔로몬이 자유인의 신분을 되찾은 이후 법정에 노예 상인을 고소하는 과정에서 노 예 상인은 백인이라는 특권으로 처벌을 피했다. 노예제도와 더불어 고소과정 또한 제도의 관성을 보여준다.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닌 이기는 자가 정의라는 낯익은 문구가 떠오르는 장면이기도 하다.

 노예12년은 19세기의 그늘진 부분을 솔로몬의 입과 맥퀸 감독의 카메라로 비춘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스스로 과거와 유사한 생채기를 내고 있지 않은지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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