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동안잠자고 짧은동안 누웠던 것이 짧은동안 잠자고 기인동안 누웠던그이다 네시에누우면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그리고아홉시에서열시가지리상-나는리상한우스운사람을아안다” 독특하고 난해한 문학 기법으로 유명한 소설가 이상이 1932년 ‘비구’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던 단편 소설 <지도의 암실> 의 한 부분이다. <지도의 암실> 속 주인공은 매일 새벽 4시에 잠들며 꿈에서 자기 자신인 ‘리상’을 만난다. 형광등을 환하게 켜둔 채 잠이 든 리상은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되지 않는 시간을 꿈속의‘가상의 지도’위에서 보낸다.

 올해 들어 전국의 국공립미술관에서는 ‘사진과 미디어’를 주제로 한 사진전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사진전에서는 이상의 < 지도의 암실>을 차용했다. 이번 전시는 <지도의 암실>의 주인공이 잠이 들고 다른 세상을 유영하는 새벽 4시를 ‘새로운 차원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으로 의미 짓고, 사진전의 이름을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로 붙였다.

 어두운 방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환히 켜놓고 이것저것 뒤적이는 2014년의 우리는, 새벽 4시에 형광등을 환히 켜놓고 잠에 드는 1932년의 리상과 닮았다. 또, 1932년의 리상이 유영하던 가상의 지도는 2014년의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유영하는 SNS 세상이 되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미디어 속에서 다중적인 정체성을 갖는 현대인의 자아’를 ‘새벽 4시’ 사진전 의 세부 주제로 삼았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미디어와 현대인, 현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낸 작품은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온다.

원서용은 <Table>이라는 작품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대상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비판의식을 담아냈다. 교묘하게 완성되어 사람들의 시각 체계를 뒤흔드는 그의 작품은 기발하다. 스튜디오에 하얀 천을 걸어놓고, 그 앞에 프레임 역할을 하는 판을 걸어 놓는다. 판 앞에 3차원의 물체를 올려놓고 와이어로 고정해 사진으로 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실제로는 3차원 물체를 찍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다시 찍은 사진작품으로 느낀다. 사진이라는 미디어로 보여주는 것은 물체 그 자체가 아닌, 미디어의 특성을 교묘히 이용한 속임수라는 문제의식이 잘 담겨있다.

 ‘재현의 매체’이던 사진을 ‘생산의 매체’로 승화했다고 평가받는 작품도 있다. 한성필의 <Flatten 3-D Out>이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그림으로 착각할 만큼 독특하다. 새벽에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을 촬영한 사진으로, 유심히 살펴보면 건물 벽면에 건물 다른 면의 모습을 그려놓아 사람들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한다. 사진에서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떠올리게 한다. 한성필은 이렇게, 하나의 시 점에서 담아내기는 힘든 모습들을 하나의 사진에 표현했다.

차지량의 <타임라인 머신>에는 미디어로 표현되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의 작품은 여섯 개의 TV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끊임없이 깜빡거리는 TV 화면에 사람들이 SNS에 업로드 한 사진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SNS에서 유명인을 ‘팔로잉’하고, 사람들과 ‘친구’를 맺으며 그들의 소식을 받아본다. 하지만 넘쳐나는 소식 속에서도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차지량의 작품은 이런 소외감을 ‘빛’과‘어둠’으로 잘 표현해냈다. 사람들의 참여로 완성되어 그 의미를 더한다.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미디어와 현대인,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잘 담아낸 작품이많다. 또, 단순한 사진작품에서부터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완성한 설치작품, 대중의 참여로 이뤄진 작품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전시는 무척 새롭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사진과 미디어 : 새벽 4시’전에서 사진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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