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무협 소설을 탐독했던 사람이라면 ‘금시조’라는 작가를 기억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작가가 우리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무협소설작가, 웹툰 <TLT>의 스토리작가를 거쳐 창업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전을 하는 박성진 동문(전기및전자공학 86)을 만났다.

 

만화책 탐독하던 학창시절

박 동문은 작가가 되기 전부터 글쓰기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대신 읽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 학교 학부과정 1기로 입학했던 박 동문은 허허벌판이나 마찬가지였던 학교 주변을 뒤지며 책 대여점을 찾아다녔다. 박 동문은“ 당시에는 만화를 읽는 것에 죄책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그것이 제가 먹고사는 일이 되었죠”라고 회상했다.

 

연구실 뛰쳐나가 무협소설 작가로

처음부터 작가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박 동문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대기업에서 맡긴 큰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사측에서 그 프로젝트를 중단해버려 연구가 무용지물이 되었고 논문도 쓸 수 없게 되었다. 박 동문은 “현실 속에서 무력감, 소외감을 느껴 도망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연구실을 나온 박 동문은 작가가 되었다.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분야 혹은 아예 모르는 분야 둘 중의 하나여야 글 쓰는 재미가 붙는다는 것이 박 동문의 지론이다. 그래서 이미 잘 아는 분야인 공학에 대한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전혀 모르는 분야인 무협 소설을 택해 상상력을 펼쳤다. 박 동문은 ‘금시조’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책을 출판했다. 사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만화 시나리오나 무협 소설 원고료를 더 후하게 줬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공학도로서의 경험은 계속 박 동문을 따라다녔다. 박 동문은 논리의 엄밀성과 정확하게 짜인 인과 관계를 선호하는 이공계의 성향이 자신도 모르게 글 속에 투영된다며 “독자들은 지나치게 조밀하게 짜놓은 세계관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소설가에서 다시 기업가로

무협소설 작가로만 활동하던 박 동문에게도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레저스포츠 기구 제작회사‘ 휴머닉’을 창업한 경험이다. 당시 박 동문은 자신이 능력을 총동원해 열심히 살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남는 에너지를 이용해 무언가를 해 보자”라고 결심하고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간단한 힘의 원리만 알아도 좀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제조업체들은 그러한 분석 없이 생산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 동문은 레저스포츠 기구 ‘이글라이더’를 개발했고 특허청에서 상을 받는 등 아이디어는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회사 운영에는 실패했다. 박 동문은 “손해에서 배우는 게 많았다”라고 회상했다.

 

창업 경험 바탕으로 만든 <TLT>

그러나 ‘휴머닉’을 창업하고 실패한 경험은 박 동문에게 또다른 자극제가 되었다. 박 동문은 동물 캐릭터를 내세워 회사 경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웹툰 <TLT (Tiger the Long Tail)>의 스토리 작가로 활동했다. ‘자식에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이라는 심정으로 쓴 작품이다. 특히 올빼미 모습의 캐릭터 ‘포우 교수’에는 자신의 철학을 녹였다는 설명이다.

 

사업과 작품활동 병행할 것

현재 박 동문은 IT 방면을 연구했던 경험과 작가로서의 경력을 합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를 위한 온라인 소셜 플랫폼‘스토리툰’이다. 또한,‘ 카이스토리’라는 기업을 만들어 KAIST 브랜드와 동문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작가로서의 길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박 동문은 현재 ‘금시조 월드’라고 불리는 자신의 무협 세계관을 이어나가는 소설과 야구와 무협을 결합한 만화 스토리를 구상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 정치, 관료 사회 등을 녹여낸 대규모 기업 극화도 준비하고 있다.

박 동문은 “여러번 길을 바꾸며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라며“ 그런 경험 하나하나가 작가로서 소양을 넓히고, 그렇게 넓혀진 상상력이 다시 사업가. 창업가로서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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