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130억 원을 들인 한국 최초의 재난 영화 ‘해운대’가 2006년 ‘괴물’ 이후 삼 년여 만에 천만 관객 돌파에 이름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더니 극장 밖에서 불법 동영상 유출이라는 쓰나미를 만나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말부터 각종 P2P사이트에서 저작권법을 교묘히 피해 ‘광안리’, ‘부산바다’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으로 유포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각종 사이트에 버젓이 ‘해운대’라는 이름을 내걸고 수많은 누리꾼의 클릭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극장에 떡 하니 간판을 내걸고 있는 영화가 불법 다운로드의 표적이 되었다니 다소 충격적이다. 지난 3월 초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불법 동영상 파문이 일어난 지 채 6개월도 안됐을 뿐만 아니라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이러한 거작을 상대로 일이 벌어진 셈이다.

지난 주말 이후 업로드만 수백 건에 다운로드는 10만 건을 훌쩍 넘겼다 하니 ‘해운대’를 제작한 CJ엔터테인먼트나 윤제균 감독이 얼마나 속을 앓고 있을지 짐작이 간다. 더 큰 문제는 ‘해운대’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시장을 겨냥해 만든 영화라는 점에 있다. 불법 동영상 파문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행여 수출에 재를 뿌리지 않을까 했던 우려는 중국 좌판에 해운대의 해적판 DVD가 5위안, 우리나라 돈으로 약 900원 정도에 팔려나가고 있음이 확인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영화계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해운대’가 바로 옆 나라 중국에서는 900원짜리 싸구려 영화가 되고 말았다. 더욱 슬픈 사실은 그나마 그 900원 중에서도 ‘해운대’ 제작사에 돌아가는 돈은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이다.

불법 다운로드의 폐해가 심각한 것은 단순히 돈 번 영화가 돈 더 버는데 방해가 되는 문제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부자야 망하면 삼 년은 버틴다지만, 여유가 없는 이들은 털리고 나면 쫄딱 망하는 이치다. 극장 흥행에서는 부진했지만 부가 판권 시장을 향해 만회를 노렸던 작지만 괜찮은 영화들이 불법 다운로드 한 방에 나가떨어지고 마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비단 국내영화에만 국한할 문제도 아니다. 무수히 많은 해외의 걸작영화들이 불법 다운로드로 인해 한국에서 개봉을 회피하거나 수입이 되었어도 개봉을 포기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니 그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어 보겠다는 P2P 장사치들의 얄팍한 술수 때문에 관객들이 정당하게 누려야 할 문화 향유권의 폭이 축소되고 있는 현상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가뜩이나 열악한 우리 영화 제작 현실에서 불법 다운로드야말로 영화계를 고사시키는 주범이다. 영화 동영상, 특히나 해외 개봉을 앞두고 극장 상영 중인 영화가 유출되었다는 사실은 법이나 산업 이전에 문화콘텐츠를 대하는 우리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창피한 일이다. 앞으로는 개봉 이전 단계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에 더욱 우려스럽다.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는 나라가 문화 선진국이 될 리 만무하다. 문화산업은 대중의 관심과 보호 속에서만이 꽃필 수 있다. 이번 ‘해운대’ 사건은 단순히 몇몇 비뚤어진 헤버업로더만이 비판받을 대상은 아니다. 법만 만든다고 될 일도 아니다. 그간 숱한 영화들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에 시큰둥하던 우리 사회가 왜 ‘해운대’에 이르러서야 발본색원을 외치며 이슈화하고 있는가도 되짚어볼 문제다. 천만 명 이상이 본 영화라야 그 심각성이 논의되는 풍경에서 일말의 씁쓸함이 느껴지지만 어찌 되었든 이러한 계기로나마 불법 다운로드에 대해 다시금 주위가 환기되는 것은 분명히 반길만한 일이다.

감히 불법 복제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는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정부가 강력한 단속과 처벌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민도 물건을 훔치는 것은 죄악시하면서 지적 창작물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잘못된 행태 역시 바꿀 때가 되었다. 그것이 우리가 이번 ‘해운대’사건을 풀어나갈 실마리이자 앞으로의 불법 다운로드 문제에 대처해야 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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