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트릭 브링리 -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시간의 흐름이 별안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느껴지고, 삶의 무게는 유독 막중해 보인다.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저자 패트릭 브링리를 만나보기를 권한다.

야심만만한 젊은이였던 브링리는 대학 졸업 후 미국의 유명 잡지사인 <뉴요커>에 입사한다. 선망받는 직장에 입사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고층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의 삶에는 화려한 성공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형인 톰이 젊은 나이에 시한부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지했던 형의 암 투병과 죽음을 겪으며 저자는 앞으로 나아갈 의욕을 잃어버리고 만다. 형의 장례식을 마치고 난 저자는 불현듯 어린 시절 어머니와 미술관에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경이로운 작품들에 둘러싸인 채 정적 속에서 슬픔과 달콤함을 맛볼 수 있는 장소. 저자는 자신이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그는 도피하듯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저자의 회고를 담은 에세이다. 저자는 관람객이 입장하기 전의 고요한 전시실을 바라보며 렘브란트를 만난 듯 몰입하기도 하고, 근무 중에 작품을 바라보며 미켈란젤로에 대한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차 일상은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지만, 또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료 경비원과의 연대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암살 위협을 겪고 미국으로 망명한 이민자 출신 동료, 문학가 등단을 꿈꾸는 예술가 동료, 보험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던 동료 등 다채로운 출신과 배경을 가진 사람과 함께하며 저자는 자신의 삶이 제자리를 찾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마침내 저자는 도피하듯 떠났던 세상으로 다시 한 발을 내디딘다.

예술을 통해 상실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치열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반복되는 하루를 맞이하는 일에 어느새 지쳐 버린 사람이라면, 저자의 회고를 따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들 틈에 슬쩍 끼어들어 보라. 미술관의 고요하고도 소란한 정적과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얻어갈지도 모른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것이기도 하다.” (p.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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