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생일을 믿지 않았다. 믿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하니까,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두겠다. 1년이라는 시간은 그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일 뿐, 그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불만이 많았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랐다.

날것의 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지내는 법을 배워도 의문은 그대로였다. SNS를 통해 타인의 생일을 들여다보아도 생일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떤 사람에게 생일은 얼마나 많은 축하를 받았는지 자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값비싼 선물과 장소를 찍어 올리며 ‘진정으로’ 생일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생일의 본래 의미라면 생일은 너무나도 공허하지 않은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공허함에 쾌락을 들이부으면 대체 무슨 감정으로 생일의 끝을 맞이할 것인가?

그런 생각에 올해 생일은 조금 더 차분하게 보내기로 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내고자 특별한 약속은 잡지 않았다. 우선 충분한 숙면을 취했고, 일어나서는 천천히 빨래를 널며 은은한 햇살을 맞았다. 그러다 잠시 밖으로 나와서는, 주변 냇가를 오래 걸으며 물소리에 귀를 씻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편안해진 마음을 채워넣었다. 스무 번째 생일치고 지나치게 밋밋한가 싶다가도, 이만하면 괜찮은 스무 번째가 아닌가 생각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해야 할 일도 많지만, 그래도 어찌저찌 여기까지 왔잖아. 그래도 잘 살아온 것 같아.’

걷다 보니 날이 점차 어두워졌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자 집에 들어갔다. 가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그래,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이런 생각 하겠어.’다르게 말하자면, 내게 있어 생일은 삶의 의미를 다시금 꽉 부여잡는 날, 또 잘 살아보기로 다짐하는 날이 되는 것으로 충분했다. 축하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고마울 따름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 별거 아닌 날에 연락을 주는 사람들이 조금 더 고마웠다. 그리고 한때는 호들갑을 떨며 생일을 축하해주던 친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조금 더 무덤덤해질 수 있게 되었다.

1년은 생각보다 빠르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여유 있게 고민할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인생의 방향키를 놓치고, 삶은 불확실 속으로 빠진다. 너무나도 많은 것이 확실하지 않은 세상일지라 해도, 적어도 지구는 매일 똑같이 정해진만큼 태양을 돈다. 불확실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간단한 사실조차도 안정감을 준다. 미로 속에 갇힌 삶을 사는 우리들을 위하여 적어도 생일에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했던 덕분에 태양을 도는 스무 번째 바퀴를 자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한 바퀴를 돌러 가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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