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석 - 「선산」, KAIST 도서관 이달의 DVD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전주국제영화제 제공

우즈베키스탄 출신 나타샤(올레나 시도르추크 분)는 부동산을 찾아 대뜸 땅을 사겠다고 한다. 뿌리가 있어야 자기가 인정받을 수 있고 안심이 된다며 땅을 사 선산을 만들고자 한다고 전한다. 이방인의 모습을 한 손님에 잠시 당황했던 공인중개사는 본인이 귀화한 한국인이라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는 나타샤의 모습에 금세 적응한다. 자금이 부족한 나타샤를 위해 땅 주인 할머니(허진 분)에게 전화까지 하며 가격 흥정에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행운은 쉽게 오지 않는다더니, 땅을 살 사람이 귀화한 외국인이라는 걸 알게 되자 할머니는 돌연 땅을 팔지 않겠다고 전한다. 영화 <선산>은 나타샤가 할머니를 설득하는 과정을 차분하게 따라간다.

간단한 이야기의 몰입에 배우가 주는 힘이 크다. 요즘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 배우 허진의 연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허진은 1971년에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우수 연기상을 받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다. 그는 보수적인 할머니가 나타샤에게 마음을 여는, 어쩌면 관객이 설득되기 어려울 수 있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올레나 시도르추크는 촬영 당시 한국 생활이 7년째이던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로, 이 영화에서 첫 연기를 뽐냈다. 나타샤와 공통점이 많다고 밝힌 그를 캐스팅하고 이끈 정형석 감독의 능력도 엿보인다. 

영화는 나타샤가 왜 한국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깊게 설명하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에 자기도 한국인이며 신촌 나 씨라고 소리치는 나타샤의 간절함, 웃음을 잃지 않은 채 끊임없이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증명해야 하는 나타샤의 불안을 보여줄 뿐이다. 동시에, 이민과 이주의 복잡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전달해 관객이 부담 없이 소화하도록 도와주려는 노력이 보인다. 더 나아가야 하지 않았을지 아쉬움을 표하는 영화 후기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2년, 울주산악영화제 제작 지원 프로그램 ‘울주 서밋’ 선정작 및 전주국제영화제 ‘코리안시네마’ 초청작이었던 <선산>이 지난달 KAIST 도서관 이달의 DVD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39분의 짧은 러닝 타임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선산>은 2022년 영화제 이후 DVD로만 시청할 수 있다. 대부분의 중단편 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도 국내외 OTT 플랫폼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구성원이라면 DVD를 구매하지 않고도 학술문화관(E9) 4층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여유로운 시간에 확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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