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즐겨보던 모 프로그램에서 익숙한 장면이 나왔다. 모 OTT에서 하는 정치풍자 코너였다. 누구나 아는 익숙한 대통령으로 분장한 개그맨의 뒤에서는 단지 대통령보다 노래를 잘 불렀다는 이유로 경호원들에 의해 ‘입틀막’당하는 개그맨이 웃픈 장면을 연출한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분장한 개그맨이 그 전에 한 말도 압권이다. 그는 3.1운동의 자유 정신을 이야기하며, 이를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고.

 

 카이스트 구성원이라면, 평소 즐겨보고 남의 일만 같았던 정치풍자도 이러한 장면에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을 것이다. 나의 마음에는 슬픈 감정과 또 분노의 감정이 뒤섞인 채로 그날의 기억에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된다. 그저 남의 일 같았던 ‘입틀막’ 사건과 같은 일이 내 주위에도 벌어졌다는 것이 아직까지 믿기지 않는다.

 

 올해 발생한 첫 ‘입틀막’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떠오른다. 평소 y모 뉴스를 즐겨보던 나는 퇴근 후 배달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 시간에 어김없이 y모 채널을 틀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였던 것 같다. 한 국회의원이 입이 틀어막히고, 사지가 들린 채 식장에서 끌려나가는 장면을 보았다. 저 의원은 얼굴을 안다. 원외 정당인 진보당으로서 재보궐에서 당선돼서 나도 당시에 놀랐었다. 그런데 안면이 낯익은 것보다도 국회의원이 사지가 들리고 입을 막히다니. 대통령실의 해명은 단호했다. 그 국회의원이 대통령의 손을 놓지 않으며, 고성을 질렀다고. 하지만 리플레이된 영상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손을 잡은 것은 5~6초며, 고성을 지르며 대통령을 막지도 않았으며, 그저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한다는 목소리뿐이었다.

 

 입이 틀어막히며 사지가 붙들린 채 식장에서 쫓겨난 그는 한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구의 국회의원이다. 그 사람의 목소리는 전주시 을구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국정 기조의 변화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목소리를 막는 것은 전주시 을구 사람들의 목소리가 짓밟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비록 지지하는 정당은 달랐지만 나와 반대의 이야기라도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자유의 억압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경호처의 대응에 대한 분노도 들었다. 하지만 ‘설마 또 이러한 일이 있겠어? 이번 한 번뿐이겠지’하는 마음으로 연구실이라는 일상 속에 살아가며 나의 머릿속에서도 잊혔던 것 같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졸업식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졸업식에서 주인공이 되어야 할 졸업생이 R&D 예산 감축에 대해 외치다 입이 틀어막혀 끌려나갔다는 것이었다. 실험을 끝내고 잠깐 뉴스로 소식을 들었던 그 날, 나는 잠깐 갔다 온 미용실에서 연구실로 돌아오는 밤까지도 분노와 슬픔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졸업식에 참석하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감정이 들 정도면 그 당시에 끌려나간 학생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어수선한 졸업식에 참석해 같이 졸업을 하는 학우가 끌려나가는 모습을 본 졸업생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학생의 외침에 대통령에 위협을 가할 정도로 위협이 있었을까. 대통령과 저 멀리 떨어져 자리에 일어선 그는 단지 피켓을 들고, R&D 감축에 대해 항의 차원에서 외칠 뿐이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그를 제지할 수 있지만, 그가 한 행동이 물리력을 주저 없이 행사할 만큼 명백한 위협이었을까. 영상 속에 그는 몇 마디 외치지도 못한 채 강 의원처럼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끌려나간다. 조용히 해달라는 구두 경고도 없이 말이다.

 

 어느 쪽에서는 그의 소속 정당을 일컬으며, 정치적인 쇼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영논리 이전에, ‘석사’ 졸업생인 그가 자신의 일자리와 관련된 R&D 삭감에 대해 걱정을 하며 절망감을 느끼고 쉽게 만나지 못할 대통령 앞에서 항의성으로 외침 정도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가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발생한 미래에 대한 위협과 동료들에 대한 걱정이 크지 않았다면 이러한 필사적인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저번 입틀막 사건 때부터 비교되어오는 영상이 있다. 바로 2013년의 오바마의 이민개혁안 연설 영상이다. 오바마의 연설 도중 자신의 가족이 추방되었다는 한국계 학생의 항의가 시작되자 경호원들은 이를 제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오바마는 경호원들을 막고 학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이야기가 끝나자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바마 또한 그 학생에 공감하며 그를 도와줄 법안인 이민개혁안에 관해 설명해나간다.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누군가의 필사적인 목소리를 막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듣고 자신 또한 의견을 개진해 그 사람을 대변해주는 것이 비로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목소리를 통해 말을 하고 의견을 내고, 또한 그 말을 들으며, 그 의미를 이해하고 또 서로를 이해한다. 이번 정부는 특히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던 것 같다. 청와대 개방부터 도어스테핑까지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보여준 행보들도 있다. 하지만 도어스테핑은 중단되고, 최근에는 국민의 목소리가 단지 듣기 싫은 소리라는 이유만으로 입이 틀어막힌 채 전달되지 못한다.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어 외친 메시지가 다 전달되지 못한 채 한 사람이 그곳에서 끌려나가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대통령이 잠시라도 그들의 필사적인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더욱 진정성 있게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앞으로는 틀어막힌 입보다는 이해와 대화로 타협하는 정부의 모습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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