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을 결심하면서 가장 최우선으로 둔 목표는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여행을 떠나거나 진로에 도움이 될 만한 활동을 많이 하는 일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인 부분부터 제대로 다지고 싶었다. 잘 자고,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기. 그래서 휴학 후 처음으로 시도한 일은 운동이 되었다.

‘시도’라는 단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시피, 평소에는 운동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 스포츠는 관람만 좋아했고, 운동 비슷한 활동은 걷기와 가끔 하는 새벽 달리기 정도였다. 여기서 새벽 달리기는 여섯 시에 일찍 일어나서 하는 새벽 조깅이 아니라,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새벽 두 시에 난데없이 캠퍼스를 달리는 거였다. 당연히 운동신경이나 체력도 없었다.

이런 사람이 운동을 시작하려고 보니 선택지가 협소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선 단체 종목을 모두 제외했다.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 종목들도 모조리 지웠다. 유연성이 필요하면 삭제, 기구가 많으면 삭제, 근력이 너무 많이 필요하면 삭제. 장비도 없어야 했다. 장비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운동에 질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슬슬 이 정도면 운동을 왜 해야 할까, 싶을 무렵에 남은 종목 하나를 골랐다. 그렇게 9월부터 골프를 배우게 됐다. 기본적인 클럽들을 연습장에서 무료로 대여할 수 있다고 해서였다. 유산소로는 러닝을 병행했다.

처음에는 동작이 맞는지도 모른 채로 같은 스윙만 몇백 번씩 반복하고 돌아오곤 했다. 거리나 속도는 고사하고, 클럽을 똑바로 휘두르는 것조차 힘들었다. 옆 타석에서 구력이 십 년도 넘는 분들이 클럽을 휘두를 때면 바람 소리가 났는데, 직접 휘둘러보면 한숨만 나왔다. 스윙 연습기를 백 번씩 휘두르고 나면 다음 날 아침에는 손가락을 접기도 어려웠다. 연습장이 쉬는 일요일만을 기다리며 살다가 막상 일요일이 되면 근육통에 시달리며 침대 신세를 졌다. 사람 체력이 이 정도로 없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관성적으로 운동을 했다. 즐겁지는 않았다. 생각이 달라진 건 맨 처음 배우는 클럽인 7번 아이언으로 100m를 넘겼을 때였다. 그날 이후로는 다시 부진했지만, 연습할수록 거리가 늘어나는 과정이 눈에 보여서 뿌듯했다. 혼자 연습하며 기록만 보이니까 목표를 정하기에도 좋았다. 목표를 정하고 나서부터는 점차 방향성이 보이는 듯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서 한동안 지문인식이 안 되기도 했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괴롭지만도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일상도 그렇다. 별다른 의미 없는 하루가 모여 오늘이 되었으니 말이다. 관성적으로 살아내는 하루하루라도, 분명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는 한 학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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