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이 끝날 무렵 내가 편집장을 맡겠다고 나서자 내 주변인은 모두들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누군가는 불쌍하다는 눈초리를 보냈고, 또 누구는 나를 말렸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이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무렵 나는 취재부장을 맡으면서 한때 번아웃이 올 정도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작년 가을에 나는 도합 56,662자의 기사를 써냈다. 짧게는 1,000자 분량의 기사부터 길게는 14,000자 정도 되는 기사까지, 정말 온갖 종류의 기사를 썼다. 그 기간 동안 내 실력은 늘었지만, 문제는 기사 작성을 거의 나 자신과 맞바꾸었다는 데에 있었다. 주말을 헌납하는 건 물론이고, 하루하루를 여유 없이 쫓기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아냈다.

그러다 일이 가장 극심하게 몰렸던 추석 직전이었다. 우연히 당시 편집장과 나란히 신문사실에 앉아 일을 하던 나는, 조금은 거칠게, 더 이상 신문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서는 방을 나와버렸다. 밤샘 작업에 지쳐있던 탓이었을까, 내가 희생해야지만 돌아가는 시스템에 분노했던 탓이었을까, 혹은 내가 아무리 희생하더라도 다른 부서에서는 관심조차도 없는 현실에 분노했던 탓이었을까. 정확한 건 모르겠다. 아마 그 전부였던 것 같다. 

확실했던 건, 그때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일을 다 끝낸 뒤 그제야 일출을 맞이하며 자러 갈 때 느끼는 아침 바람이 싫었다. 나날이 악화하는 피부와 곪아 터지려고 하는 여드름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서는 일주일 내내 수업을 가지 않고, 방 안에서만 누워 지내며 생각했다. ‘아, 이런 걸 원했던 건 아니었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와 그렇게 공들여 쓴 기사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자문했다. ‘이 기사가 나 자신을 저버려야 할 정도로 가치 없는 글이었는가?’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분노로 가득 찼던 마음에 목표가 하나 생겼다. 내게는 카이스트신문에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이토록 비참하게 장식하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그래서 그냥 무기력하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내 손으로 끝내자’. 귀찮고 고단하겠지만 한번 덤벼나 보자. 아무리 대학언론이 위기라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말자. 함께 남아준 이들에게 신문사의 미래를 걸어 보자.

물론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문제의식에 공감해주고 기꺼이 고단함을 함께 짊어 주는 동료 기자들을 생각하며 되새긴다.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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