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헤켈 - 「자연의 예술적 형상」, 2023 KAIST 스페셜도서

(주)예스이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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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파리 박람회장 주 출입구가 방산충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방산충은 바다에 부유하며 살아가는 진핵생물로, 키틴질을 분비하며 규질의 골격으로 방사상 모양을 이룬다. 한 마디로, 해양성 플랑크톤이다. 건축가 르네 비네는 어떻게 방산충의 형태에서 예술적 모티프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 시작은 에른스트 헤켈의 그림에 있다.

헤켈은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의학박사 학위와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동물학을 공부했다. 비교해부학 교수로서 그가 특히 심취했던 주제는 바다 깊숙이 살거나 크기가 매우 작은 방산충을 포함한 단세포 생물이었다. 헤켈은 자연의 시각적 질서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공유하고자 노력했다. 종자식물과 척추동물의 아름다운 형태는 인간이 오래도록 접해왔을지라도, 헤켈이 주목한 ‘하등 생물’의 세계는 그때까지 일반인에게 흔히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는 45년 동안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의 해안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의 해안을 여행하며 스케치한 그림 중 흥미로운 것을 모아 아돌프 길치의 석판화로 인쇄했다. <자연의 예술적 형상>이라는 제목으로 6년에 걸쳐 도판 100개, 총 10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이는 과학뿐 아니라 미술과 건축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림씨는 “클래식그림씨리즈”라는 이름으로 문명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고전 속 그림을 소개하는 교양 예술서를 출판하고 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출판된 <자연의 예술적 형상>은 2018년 출판 당시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이었던 이정모 교수의 해설과 1899년 헤켈이 쓴 서문으로 시작해 100개의 석판화를 깔끔한 디자인의 인쇄로 소개한다. 1900년 르네 비네가 영감을 받았던 방산충 그림을 비롯한 형태에 집중한 흑백 석판화, 한두 개체를 여러 관점에서 관찰하고 해부한 흔적이 보이는 해파리류 그림, 비슷한 무리로 묶이는 생물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그림, 연구 삽화라기보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작품인 난류, 벌새과의 그림까지, 다채롭고 알찬 구성의 석판화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 헤켈이 노트에 스케치한 해파리류 그림이 어떻게 수정을 거듭해 길치의 석판화로 인쇄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개한 것도 인상적이다.

<자연의 예술적 형상>은 KAIST 학술문화관(E9) 4층 스페셜도서에서도 만날 수 있다. 공부에 지쳤을 때 학술문화관에서 헤켈이 나누고자 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아주 어렸을 적 살아 있는 존재들의 형태에 매료된 이래, 그리고 약 반세기 동안 애정을 갖고 형태학 공부를 하면서 나는 생물의 형상화와 발달 법칙을 인식하려고 애썼을 뿐 아니라, 그것들을 스케치하고 그림으로 그리면서 그 아름다움의 비밀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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