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 - 「번역: 황석희」

(주)예스이십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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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관객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사람이다. 스크린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것이야 엔딩 크레딧이 끝난 뒤 5초 남짓 나오는 번역가의 이름뿐이지만, 영화를 보는 매 순간 쳐다보는 자막이 온전히 그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황석희 번역가는 데드풀의 B급 감성과 말솜씨를 잘 살린 자막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 화끈한 시도는 데드풀이라는 인물과 잘 맞았기에 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하지만, 그는 늘 자막의 뉘앙스를 관객에게 더 잘 전할 방법을 시도하고 고민하는 번역가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의 첫 에세이 <번역 : 황석희>에는 이런 그의 고민과 번역하며 겪은 흥미로운 일화, 그리고 다채로운 일상이 ‘황석희’만의 언어로 담겨있다.
저자는 번역가를 ‘뉘앙스의 냄새를 맡는 사람’이라 칭한다. 단순한 문장 해석이라면 그 언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 누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번역이란 ‘최대 두 줄, 한 줄에 열두 자’라는 빡빡한 기준안에서 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기에 뉘앙스를 글자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 아내가 던진 질문에서 갖게 된 호기심으로 그는 틀에서 벗어나 이모지를 쓰고 글자마다 크기를 달리하거나 심지어는 자막을 상하좌우 반전시키는 등 과감하게 시도했다. 사실 이런 시도는 그가 여태까지 번역한 모든 대사 중 10개도 채 안 되지만, 그의 유연함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예시다.

저자에겐 오역 없는 번역가라는 별명이 있다. 실로 오역 하나만으로 기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번역가이다. 그가 말하길 운이 아주 좋은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선 한 편에 1~3개 정도의 오역은 존재한다고 한다. 이 수를 넘어선 빈번한 오역이 보인다면 비평할 의미조차 없지만, 오역 개수로 번역 전체를 평가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전한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타인의 말을 각자의 방법으로 소화하고 해석하고 나누며 살아간다. 이상한 말만 내뱉는 사람이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겠지만 몇 단어 잘못 말했다 하여 탓하는 건 너무 각박한 것 아닐까. 유의미한 대화보다 서로를 헐뜯고 탓하는 것이 우선시되는 시대에 저자의 언어는 값지고 따뜻하다. 

저자의 번역이 함께하는 영화를 보며 피식 웃듯이, 책을 읽으며 그의 유머에 웃음이 났다. 백만 개에 가까운 대사를 번역하며 단단하고 유연해진 그의 생각은 책을 몇 장만 들춰보아도 느낄 수 있다. 저자의 언어는 늘 일상을 번역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이자 즐거움이 되어 닿는다. 누군가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면, 유쾌하고도 따뜻한 황석희의 이야기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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