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앞둔 겨울방학, 우리 학교는 벌써 새 학기를 위해 이사 오고 이사 가는 학생들로 분주하다. 얼었던 땅도 녹았고 종종 푸른 잎이 보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패딩 입은 사람이 줄어가는 걸 보니 봄이 가까운 게 분명하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들 한다. 본격적인 봄이 찾아와 바빠지기 전, 카이스트신문 문화부에서 추천하는 콘텐츠와 함께 따뜻한 이불 속에서 마지막으로 알차게 쉬어보자. 

 

일러스트 | 유호정 기자
일러스트 | 유호정 기자

매력적인 신인 작가들의 도전, <tvN 드라마 프로젝트-O’ PENing>

극장에서 보는 영화, 공연장에서 보는 연극이나 뮤지컬,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콘서트까지,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OTT의 시대에 그중에서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길을 걸으면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의 접근성은 좋아졌다. 그럴지언정, 짧은 호흡의 콘텐츠가 익숙해진 대중에게 16부작 정주행을 기준으로 족히 20시간은 들여야 하는 드라마 시청은 시간적, 감정적으로 부담되기도 한다.

<O’PENing>은 CJ ENM의 신인 작가 지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매년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10개의 작품을 선보인다. 오랜 시간 봐야 하는 드라마와는 달리 한 시간 남짓만 들이면 볼 수 있는 단막극이기에 드라마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2017년 신인 작가의 데뷔 무대라는 뜻의 <드라마 스테이지>로 시작하여, 2022년에 <O’PENing>이라는 이름으로 바꾸며 숏폼 형식의 2~4부작 드라마도 선보이는 등 장르적 변화를 주고 있다. 신인 작가가 집필하였기에 작품성이 떨어질까 우려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명작을 제작한 CJ ENM과 스튜디오 드래곤이 협업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기대해 봐도 좋다. <O’PENing>의 단막극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다채로운 주제를 선보인다. 다양한 SF 소재는 물론, 사회 풍자의 방식으로 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작품, 그리고 ‘내 앞에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나타난다면?’과 같이 누구나 해보았을 상상을 현실로 만든 작품도 있다. 더불어, 누구나 알만한 배우도 다수 출연하기에 마음 놓고 끌리는 작품을 골라 본다면 분명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작품 사이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는 독자를 위해 네 편의 추천작을 남긴다. <귀피 흘리는 여자>는 늘 타협하며 살아오던 수희(강한나 분)에게 어느 날 갑자기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귀에서 피가 나는 이상 증세가 생기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바벨 신드롬>은 뇌의 언어 중추가 마비되어 돈으로 언어를 사야 하는 세상에서 연희(이시우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려 애쓰는 흙수저 하늘(추영우 분)의 이야기다. <러브 스포일러>는 유전자 검사로 사랑의 유통기한을 알 수 있게 되며 연인에게 버림받은 두 남녀의 아날로그 러브스토리다.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김희선이 생겼어요>는 권태기를 겪고 있는 결혼 8년 차, 소해(류현경 분)가 남편 진묵(오정세 분)에게 ‘김희선’이라는 여자가 생겼다고 의심하며 펼쳐지는 맞바람 대소동이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맘에 드는 단막극을 하나 골라 그 세계로 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꿈꿔왔던 세계에 발을 들이다, <트래블러 – 아르헨티나 편>

방학을 맞이하여 많은 학생이 가족, 친구, 혹은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가까운 동남아시아부터 유럽이나 미국까지 목적지는 다양했다. 하지만, 남아메리카에 가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30시간이 넘는 긴 비행 시간과 좋지 않은 치안까지 감당해야 하기에 남아메리카는 여행 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남아메리카, 그중에서도 아르헨티나는 볼수록 아름답고 빛나서 여행 버킷리스트에 쓱 넣게 되는 나라이다.

<트래블러>는 2020년 방영한 여행 예능으로 강하늘, 안재홍, 옹성우 세 배우의 아르헨티나 여행기를 담고 있다. 보통의 여행 예능은 단순한 여행 이야기보단 재밌는 콘텐츠나 게임 등으로 예능적인 특성을 많이 담아낸다. 이와 달리, <트래블러>는 감독진의 개입이 거의 없어 출연진이 연기자가 아닌 온전한 여행자로서 아르헨티나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세 출연자의 성향이 달라 보는 내내 아르헨티나를 전혀 다른 세 가지 방식으로 더 다채롭게 즐길 수 있다. 동시에, 출연진의 궁합 또한 좋아서 함께 여행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인터뷰 형식이 아닌 영화 대사처럼 풍경 위에 잔잔하게 깔리는 그들의 내레이션은 여행의 감동을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한다.

이들의 여정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해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로 향한다. 아르헨티나는 사계절을 모두 간직한 곳이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인 말문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이과수 폭포, 페리토 모레노에서 즐기는 빙하를 담은 위스키 한 잔, 피츠로이 트래킹과 자전거를 타고 거니는 바람의 땅 파타고니아까지, 사계절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 탱고의 고향 라보카에서 추는 정열의 춤, 세계에서 가장 값싼 곳에서 즐기는 스카이다이빙 등 낭만의 나라답게 즐길 거리도 많다. 숟가락으로 썰릴 만큼 부드러운 아르헨티나 전통 바비큐 아사도를 비롯한 각종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겨울,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면, 이불 속에서 아르헨티나로 훌쩍 떠나보는 건 어떨까? 트래블러를 보며 다 같이 살루테(salute)를 외쳐 보길!

겨울 풍경에 퍼지는 따뜻한 이야기, <빨간 머리 앤>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간 머리 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오프닝 송의 주인공, 빨간 머리 앤. 캐나다의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1908년 발표한 소설 <그린게이블스의 앤>은 흔히 <빨간 머리 앤>이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사랑받으며 수많은 매체와 나라에서 재생산되었다. 실수하고 잘못하더라도 매번 바로잡고 성장하는 앤과 에이번리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는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힘이 된다. 가장 최근 실사화 드라마로 캐나다에서 제작된 <빨간 머리 앤>도 굉장한 성공을 거두며 시즌3까지 방영되었다. 

고전은 시대에 따른 해석과 각색으로 새로운 울림을 주기도 한다. 드라마 <빨간 머리 앤>도 원작의 주제를 지금의 방식으로 전달하기 위해 과감한 각색을 시도했다. 원작 소설이 1900년대 당시 캐나다의 다양성을 담지 못했다는 점을 수정하여 북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이민자의 이야기를 담았으며, 당당하고 솔직한 앤의 모습이 프로듀서이자 각본가인 모리아 월리-베켓의 표현처럼 ‘우연한 페미니스트’로 그려지는 에피소드도 있다. 원작에서 앤 셜리라고 불리던 앤의 이름을 앤 셜리 커스버트라고 분명하게 여러 차례 강조하는 것이 기존의 이야기와 다른 전개를 펼칠 것이라는 각색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에 맞춘 각색에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연출과 캐스팅에 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설경, 뛰어난 소품과 촬영, 바쁘게 뛰어다니는 등장인물로 드라마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돕는다. 앤뿐만 아니라 마릴라, 매튜 등의 인물에게도 적절한 서사와 과거 회상 장면을 배치하여 인물의 입체성을 높이기도 했다. 캐스팅은 공개되었을 때부터 주목받았는데, 앤 역을 맡은 에이미베스 맥널티가 원작의 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랑받는 드라마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네 개의 시즌으로 계획되었다가 세 개의 시즌으로 마무리가 된 만큼 마지막 시즌에서 전개가 휘몰아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이야기와 인물을 지금의 관점에서 성공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무엇보다 결말이 행복하다는 것이 보장되는 따뜻한 이야기인 만큼, 남은 겨울방학 동안 편안하게 시청하기에 제격이다. 

누군가에게는 정신없이 바빴을, 누군가에게는 휴식의 시간이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쉬웠을 겨울이 끝나가고 언제나처럼 봄이 찾아오고 있다. 혹시 새로운 봄에 떨리고 불안하다면,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자. 다채로운 이야기에 빠져봤다가, 못 가본 여행을 영상으로 떠나봤다가, 겨울 풍경의 따뜻한 이야기에 위로받다 보면 어느새 충전된 에너지로 학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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