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어서는 아니 됐다.

카이스트신문의 독자라면 올해 학위수여식에서 있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독자도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학위수여식을 취재한 적 있는 필자는 ‘올해도 비슷하겠지’라는, 돌이켜보면 기자치고는 안이한 마음가짐으로 학위수여식 당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다음 상황은,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였다. 

예상한 대로 대통령이 실없는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단에 올랐다. 예상한 대로 그는 ‘손을 굳게 잡아줄 테니 과감하게 도전하라’ 따위의 말을 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한 사복 경호원들은 대통령 연설 중 피켓을 든 졸업생의 사지를 굳게 잡고 날랐다. 

피켓을 든 졸업생이 녹색정의당 대변인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이 사건은 어느 순간부터 정치 논쟁으로 변해있었다. 여기에 자리에 없었던 여야 정치인이 각자 한마디씩을 보태며 본질은 점차 흐려졌다. 그렇게 점차 커진 스포트라이트는 3,014명의 졸업생에서 시작해 끌려 나간 정당원에게로, 또 대통령에게로 옮겨갔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마치 아무 말 없이 예산을 줄였던 때처럼 아무 일 없었던 듯이 지나가지 않을까. 어쩌면 이 신문이 발행되기도 전에, 아무도 사과하는 이 없이 정치가 이 사건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일이 더욱 참담하게 느껴진다. 올해 학위수여식의 일을 가장 오래 기억할 사람은, 손수 불편하게 사진기와 삼각대를 들고 와 다시 없을 하루를 가장 아름답게 남기고 싶어 했을 사람이기에. 경호를 이유로 자리를 뺏긴 누군가의 부모는 먼발치서 자식을 화면으로만 지켜봐야 했기에. 미래를 삭감한 이가 눈앞에 나타나 ‘과학기술이 미래다’라고 웅변하는 착잡함을 대면해야 했기에.

학위수여식이 끝난 다음 날, 날씨는 더욱 풀리고 교정은 학교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려는 졸업생으로 간만에 산뜻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보다 많아진 카메라의 앵글에 걸리지 않도록 걸으며 연못 윤슬에 반사된 따사로움을 맞으니, 마음이 한층 차분해졌다. 하지만 손잡아주겠다고 한 이가 떠난 뒤에야 손잡고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는 모순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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