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이 폭설에 갇힌 것이라고 믿었다. 바퀴는 눈에 파묻혀 헛돌기만 하고 눈보라로 인해 창밖은 새하얗게만 보이는 작은 자동차 안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눈보라가 지나갈 때까지 버틸 여유를 줄 코코아 한 잔이었다. 몇 가지 다른 점은 자동차가 아니라 우주선이었다는 점, 그리고 눈보라가 아닌 태양풍에 의한 신호 간섭이라는 점이었다. 우주선 면허를 자신의 딸보다 늦게 딴 그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택시기사였다. 그 때문인지 그는 첫 혼자 하는 우주선 운전에서 태양풍에 갇히는 사고를 겪고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의연했다.

그가 코코아를 입에 달고 산 건 택시기사 일을 시작하며 술을 끊었을 때부터였다. 수제 맥주 가게를 운영하며 적절한 홉과 맥아 그리고 효모의 교향곡이라며 맥주를 칭송하던 그도 LK-알코올 주류 시장에서 뭇매를 피하지 못했다. 알코올과 유사한 구조를 가졌지만, 체내에서 분해되거나 잔류하지 않는 LK-알코올 덕분에 사람들은 술의 취기만 빌려오고 숙취와 몸에 해로운 영향은 빗맞을 수 있었다. 이내 그의 가게를 자주 찾던 단골들도 그런 구식 독극물 제조소는 문을 닫아야 한다며 주변에 나불거렸고 몇 명 만이 진지하게 다른 직업을 찾을 것을 권유했다. 그렇게 그는 택시기사 일을 시작했다. 야간 운행을 하기 전 졸음을 달래기 위해 그는 사무실에서 동료 기사들과 코코아를 타 마시곤 했다. 동료들은 아직 시내 도로가 어두운 그에게 ‘자신은 자율주행보다 빠르다.’, ‘아직도 GPS에 잡히지 않는 숨은 지름길이 있다.’ 와 같은 자신감 넘치는 이야기들을 했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왠지 그들과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이들도 완전 자율 주행의 상용화로 수입이 줄어 택시를 그만두었고, 이들 중 아무도 막내였던 그가 지구에 남은 마지막 택시기사가 될 것이라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난 것은 에딘의 장례식이었다. 각자 에딘의 가족에게 슬픈 마음을 전하며 모였지만 그와 친구들은 어딘가 새어 나오는 반가움의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말했다. 

“와서 와인 한잔해.”

“나 술 끊은 거 알잖아.” 그가 답하자 또 다른 친구가 물었다.

“너 아직도 그거 해? 택시기사?”

“응. 그렇지 뭐. 그래서 여전히 술도 안 마시고.”

그는 오렌지 주스가 담긴 와인잔을 홀짝이며 답했다. 주변은 이미 에딘의 이야기보다 각자의 사는 이야기, ‘누가 돈을 벌고 누가 돈을 잃었나?’, ‘누구네 자식이 좋은 대학을 갔는지’, ‘누가 이혼을 하고 누가 재혼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북적였다. 자녀 얘기만 제외한다면, 이미 장례식보단 고등학교 졸업 파티에 온 느낌이었다. 그는 그 중 에딘과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물었다.

“원래 장례식 분위기가 이렇게 밝았나? 우리 이렇게 웃고 떠들어도 되는 걸까?”

“다들 오랜만에 봤으니 신난 모양이야. 이젠 다들 가정도 있어서 워낙 때맞춰 모이기가 어렵잖아. 에딘 성격상 우는 것 보다 이렇게 다들 웃고 있는 걸 좋아할걸? 그리고 또.”

“또?”

“에딘은 안락사였잖아. 일부러 본인 부모님이랑 아들한테도 장례식에서 울지 말라고 했대. 본인은 언제 떠날지 아니깐 그 전에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장례식은 즐겁게 보내 달라는 의미로. 언제 이별할지 알고 보내는 경우도 흔치 않다고.” 그때 그에게 택시기사를 아직도 하느냐고 물어본 친구가 술에 취해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 언제까지 할 거야? 택시기사?”

“글쎄다. 적어도 요안나 결혼할 때까진 벌어야 하지 않을까?”

“너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는 어쩌고? 최근에 LK-알코올을 만드는 효모도 나와서 다시 수제 맥주 공방들도 되살아나고 있대.”

“요안나 결혼하고 나서 마땅한 때가 온다면? 지금은 아니고.”

“야! 요안나 얘기는 내가 봤을 땐 핑계고, 원래 마땅한 시점은 제때 찾아오는 법이 없거든, 이제는 받아들여야 해. 그렇지 못하면 미련만 돼 그거.”라고 말하며 친구가 쓰러졌다. 주변 몇 명이 부축하여 푹신한 풀밭에 눕혔다. 그 친구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친구도 그도 내일 멀쩡히 일어나 출근을 할 것이다. LK-알코올은 숙취가 없으니깐. 그가 테이블로 가서 말했다.

“저도 와인 한 잔 주세요. 셰리로.”

“가만히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옛날 사람들이 그랬지~.”

그는 콧노래에 혼잣말로 가사를 붙이며 선실 옆 작은 탕비실에서 코코아를 타왔다. 조종석을 최대한으로 눕혀두고 그는 정말 폭설 속이었다면 추위에 떨었을 텐데 그렇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간은 이 또한 휴가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알아챈 것은 코코아 가루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였다. 그 후로 차례차례 컵 형태의 즉석식품들이 고갈되었고 마지막으로는 지구에서 가져온 노노그램 책이 마지막 장을 드러냈다. 마지막 노노그램 문제를 풀고 나서, 그는 “에잉. 휴가가 끝났네.”라고 말했다. 예상했던 소행성 TGF5B에는 도착하지 못했지만, 집에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그였다. 

“요안나가 TGF5B가서 몽블랑 사다 달라고 했는데….” 하며 우주선 시동을 다시 켜려던 그는 이제껏 그가 큰 착각을 했다고 깨달았다.

“우주선은 시동 버튼이…. 없네?”

지구에서 처음 발사되며 추진력을 얻은 우주선은 관성으로만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설계되어있었다. 발사대에 오른 시점부터 지구에서 소행성 TGF5B로 가는 경로상의 모든 천체의 궤도가 철저히 계산되어 서로의 중력으로 서서히 우주선을 목적지로 인도할 수 있는 각도로 우주선은 발사된 것이다. 애당초 그는 우주선 면허를 땄지만, 우주선을 운전할 필요가 없었다. 

‘아빠 바보야? 우주선은 관성으로 간다구.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기어를 중립에 둘 수도 없어. 태양풍을 맞았다면 이미 경로에서 멀리 와버렸겠지. 이건 자동차랑 달라.’ 하는 요안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는 택시 번호판을 반납하는 대가로 구매한 깡통 우주선을 탓하며 우주 미아가 되거나,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그는 폭설 같은 태양풍에 갇혀 있었다. 

다행히 눈과 달리 태양풍은 눈에 보이지 않아 그는 창밖을 볼 수 있었다. 우주선에 시동 버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 이틀 정도 후에 그는 우주선의 경로가 틀어졌다면 이제는 어떤 천체의 중력에 의해 그가 당겨지는 중일지 고민하고 있었다. 곧이어 창밖에서 빠르게 커지는 한 점을 보았다. 천체는 아니고 그의 우주선보다 적어도 수백 배는 질량이 나가 보이는 우주정거장이었다. 별다른 동력이 없는 그의 우주선은 저항 없이 우주정거장의 중력에 끌려가고 있었다. 그대로 뒀다간 우주정거장에 처박을 게 뻔한 광경에 그는 우주선의 프로토콜을 급히 읽어내려갔다. 

“소행성 충돌 시 보호막 설정. 아냐 소행성은 작지만, 지금은 거의 내가 소행성인 꼴이야. 우주선 납치 시 탈출 프로토콜. 해당 선체에는 포함되지 않은 옵션입니다? 이런 젠장. 목적지 천체가 소멸했을 경우? 근방 1 밀리파섹 이내의 암석형 천체를 목적지로 재설정합니다. 아, 이거다. 이거라도 제발.” 하며 그는 해당 프로토콜을 실행시켰다. 그의 우주선은 충돌 직전의 우주정거장을 목적지로 재설정했다. 소행성 TGF5B에서 분사돼야 했을 착륙 가스가 우주정거장 태양열 패널 위로 쏟아지자 우주정거장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그의 우주선도 그 위를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착륙 가스의 반동으로 그의 우주선은 우주정거장을 위성처럼 맴돌며 서서히 가까워졌다. 

“워호! 아무리 내가 우주선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되었어도 택시기사 경력 어디 안 간다니까. 그래도 그렇지, 조종석에 핸들 하나 없는 게 말이 돼? 이거 참 내 맘대로 되는 게 없군.” 

우주정거장을 인식한 그의 우주선 계기판에서 알림창이 떴다. ‘연결이 허용된 우주정거장입니다. 연결하시겠습니까? 보안이 되어있지 않은 우주정거장은 위험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건 뭐 선택지를 준건지 알 수가 없구만. 일단, 이 깡통 우주선으로는 집에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도와줄 사람이라도 있는지 찾아봐야지. 코코아도 있으면 좋고. 연결.”

우주정거장은 오랫동안 방치된 것 같았다. 그는 문득 이 우주정거장도 그와 같은 태양풍에 휩쓸려 이곳에 오게 된 것인지 혹은 원래 이곳이 우주정거장의 궤도인지 궁금해졌다. 여전히 태양풍 간섭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신호들은 차단되어 있었다. 우주선의 경고대로 보안이 되어있지 않은 정거장이라 그는 어떤 사람이 있는지 몰라 불안해했다.
‘인간은 맞겠지? 일단 우주선이 인식한 걸 보면 인간이 만든 정거장은 맞을 거야. 어, 여기 비상대피도에도 영어랑 글자들이 적혀있잖아. 휴….’ 

정거장의 로비에 들어선 그는 가운데 탁자 위의 스크린에서 [관리인 호출]이라는 버튼을 찾아 눌렀다. 잠깐의 연결음과 함께 스피커에서 사람 음성이 나왔다.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꼬마 아이의 목소리라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지만, 목소리와 달리 말투와 말의 빠르기는 차분하고 정돈된 어른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우주정거장 E102-3의 관리인 마고입니다.”

“음, AI 인건가? 이거 무인 우주정거장인가요?”

“저는 AI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고로 무인이라고 할 수도 아닐 수도 있죠. 모든 우주정거장에는 저 마고의 복제인간들이 관리인으로 탑승해 있습니다. 또한, 저는 신체의 엔트로피 증가를 막기 위해 물리적인 일이 필요할 때에만 깨어나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음성 안내는 저의 인격이 들어간 AI로 재구성된 목소리입니다.”

“도통 뭔 소린지 알 수 없구만. 여기 혹시 코코아는 없나요?”

“안타깝지만 코코아는 이곳 정거장에서도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지구 시간으로 약 53년하고 245일 4시간 동안 이곳은 방치되어 물자를 수급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이런 곳에 정거장이 있는 거지요? 이 정거장이 원래 있어야 할 곳이 이곳이 맞나요?” 질문이 끝나자마자 답을 이었던 마고가 침묵했다.

“마고?”

“이곳은 제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닙니다.”

“그럼 이 정거장도 저 우주선이랑 같이 태양풍에 떠밀려 온 건가요?”

“아니요. 이곳은 제가 있어야 할 곳은 아니지만, 저에게 안전한 곳입니다. 다른 이용자가 이 정거장 E102-3을 방문했을 때 저를 호출하였고 그때 깨어난 틈을 타 결국 이곳에 도착하도록 핸들을 조향해두었습니다.”

“잠깐만 여기 핸들이 있다고요?”

“우주정거장 E102-3은 제작된 지 226년이 된 구형 정거장이기 때문에 아직 조종실에 핸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후 제작된 우주정거장들은 경로 이탈 사고를 막기 위해 사람의 손으로는 조향할 수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핸들만 틀면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여기는 지구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요?”

“저 또한 정확한 현재의 위치는 모릅니다. 다만 처음 이곳을 목적지로 설정했을 때 지구와의 거리는 3.3 파섹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후로는 태양풍에 둘러싸여 외부와 신호가 단절되어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럼 태양풍을 벗어나는 방법은…?”

“이 정거장은 이곳에 멈춰있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조금 전에는 얼마나 이동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요.”

“이 정거장을 둘러싼 특정 영역은 태양풍에 갇혀 태양풍과 함께 이동합니다. 하지만 태양풍 속에서는 외부의 신호가 단절되어 있으니 외부와의 거리를 알 수 없죠. 그러므로 또한, 멈추어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위치와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올 땐 모든 역학적 에너지를 두고 와야 합니다. 우주의 기본 물리는 멈추는 데에도 에너지가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 정거장에 착륙하기 위해 제 우주선에서 착륙 가스도 분사했는걸요? 그건 움직인 게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이용자의 우주선이 이 공간에 상대적인 위치를 만들었기 때문에 더는 이 공간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태양풍도 걷힐 것입니다.”

“아니, 마고,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얘길 하는데 저는 이곳에서 태양풍에 갇힌 게 위험이었어요. 대체 무엇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얘길 하는 거죠?”

“삶입니다.”

“삶?”

“저는 삶으로부터 안전해지기 위해 정거장을 멈추었습니다. 현재 모든 우주정거장에는 관리인으로 마고가 있고 새로 만들어지는 정거장에도 새로운 마고가 섬유아세포로부터 복제되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마고는 연결되어있고, 이전 마고의 기억을 물려받기 때문에 마고의 삶은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마고의 삶에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우주정거장 관리인 마고에 대한 이야기는 면허시험에서도 나온 적 없었다는 듯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로비 한가운데 덩그러니 주저앉았다. 그는 문득 오랜만에 술에 취했었던 에딘의 장례식이 떠올랐다. 에딘이 끝까지 싸우던 병마는 마지막엔 에딘의 기억마저 앗아가려 했었다. 자신의 삶이 멈추는 순간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전한 마지막 선물이었던 에딘이 마고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부러웠을까 혹은 안쓰러웠을까?

‘마고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마고를 만난 그가 그리고 마고 스스로가 그를 만나기 전부터 해답을 찾던 질문이었다. 우주정거장 E102-3의 마고는 한 때 여느 마고들과 같이 우주 여행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관리인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장기 우주여행을 위해 정거장 E102-3에서 경로를 재탐색하던 여행자들은 마고의 도움을 받았다. E102-3의 마고는 여행자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 행성의 기상 상황과 착륙허가 정보를 주변 정거장의 마고에 연결해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유독 우주정거장 E102-3를 거쳐 간 여행자들이 착륙이 허가되지 않은 미개발 행성에 착륙을 시도하거나 소행성 돌풍에 휩쓸리는 일들이 있었다. E102-3의 마고가 다른 마고들과 연결이 빈약해지면서 생긴 정보 오류였으나 이들 여행자에겐 ‘마고가 틀렸다.’라는 전제가 없었기 때문에 마고의 이상을 찾지는 못하였다. 마고는 틀린 적이 없으니까. 

그 시점에서 E102-3의 마고는 자신의 증상을 건망증으로 인식했다. 때때로 자신이 우주정거장 관리인이기 이전 기억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더라?’ 하고 마고는 생각했다. ‘이번 삶 전에는 RN45-S 정거장에 있었고, 또 ….’ 분명 언젠가 자신이 복제되는 데 쓰인 섬유아세포에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가 생겨서 암처럼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대개의 암세포는 사람을 죽게 만들었지만, 이 암세포들은 마치 마고 자신보다 더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마고라는 정체성을 덮고 있었다. 마치 마고는 죽고 정거장 E102-3의 마고만 남기려는 듯이. 돌연변이 암세포와 정상 세포는 어느덧 균형을 이루어 정거장 E102-3의 마고는 과거의 몇몇 기억을 잃었지만, 여전히 다른 마고들과 연결되어있었다. 다른 연결된 마고들에게서 공통으로 들려오는 정보는 자신들이 우주정거장 관리인으로 선택받아서 행복하다는 신호였다.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정거장 E102-3의 마고에게는 끔찍한 소음이었다. 정거장 E102-3의 마고는 생각했다.

‘저들도 자신들이 행복하다는 것이 틀리진 않았을 것이다. 마고는 틀린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정거장 관리인 마고로 사는 것에 동의한 적이 있던가?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지난 마고들과 나는 같은가?’ 

이 생각이 다른 마고들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이제 정거장 E102-3의 마고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자신의 이상을 스스로 신고하고 지구로 돌아가 치료를 받거나, 과거의 또 그리고 연결된 현재의 마고들로부터 끝없이 도망치는 것이었다. 이제 마고가 누구인지는 E102-3의 마고에겐 다른 마고들과는 다른 질문이 되었다.

“삶이 끝나기를 원했던 건가요?”

마고의 음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마고의 삶에는 끝이란 게 없을 거예요. 적어도 제가 계산할 수 있는 시간 내에선. 단지 멈춰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마고 들로부터 정보를 받지 못한다면 끝없는 마고의 삶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네요. 이 태양풍도 곧 걷힐 테니.”

“마치 제가 당신을 죽였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태양풍이 걷히면 외부의 신호들이 잡힐 겁니다. 우주정거장 E102-3의 마고는 이제 바깥 세상에선 되살아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이용자도 지구로 돌아가는 경로를 찾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제 우주선은 소행성 TGF5B에서 지구로 가는 추진력을 얻어야 했던걸요. 워낙 깡통이라 행성 간에서는 관성으로만 이동하게 되어있어서….”

“제가 계산해 본 결과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있습니다. 이용자가 정거장에 탑승한 채로 지구로 돌아가는 방법입니다. 정거장도 태양풍에 멈춰있느라 추진체의 역학적 에너지는 다 소진했지만, 이용자의 우주선이 결합한 덕에 우주선을 정거장에서 쏘아 보낼 때 쓰는 시스템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정거장도 조금 느리겠지만 반대로 밀려날 것입니다. 대신….”

“대신?”

“워낙 정거장이 오래된 기체(機體)여서 직접 핸들을 잡고 조향하셔야 합니다.”

“하하! 제가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택시기사 아니겠습니까? 핸들로 운전하는 건 제 전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왜 제 우주선에 타지 않는 거지요? 그게 더 빠르지 않나요?”

“이용자의 우주선은 조향장치가 없어서 정거장과 분리될 때 설정된 경로로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태양풍이 변덕이 심한 곳이라 지구로 귀환하는 중에 다시 태양풍에 갇힐 위험이 있습니다.”

“음,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어차피 코코아가 없다는 점은 어느 쪽이나 같고 저는 핸들이 더 편하니 정거장에 있겠습니다.”

“저는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분리되는 우주선에는 제가 탑승해 있겠습니다. 다시 태양풍에 갇힐 가능성이 있다는 건 제게 위험이 아니라 삶으로부터 다시 멈출 기회입니다.”

“그야 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그게 왜 부탁인 거죠? 마고의 선택 아닌가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이용자가 저의 물리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만 엔트로피 저감 상태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아! 음, 그럼.” 그는 로비를 둘러 보다 말을 이었다. “로비에 탁구대가 있는데 같이 칠 사람이 없어요. 같이 쳐줄 수 있나요?”

로비에 연결된 수많은 문 중 가장 좁고 높은 문이 열렸다. 그는 그것이 미처 문인 줄도 몰랐다. 이미 서늘한 우주정거장 안임에도 더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마고는 그 틈에서 조립 전의 프라모델처럼 프레임에 붙어있다 떨어졌다. 마고의 신체 크기는 분명 성인이었지만 얼굴 피부와 젖살은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커다란 아기라는 표현이 딱 적절해 보였다. 그를 마주한 마고가 말했다.

“E102-3의 마고는 이용자들이 자주 찾지 않아서 신체 엔트로피가 낮아 이런 상태입니다. 다른 우주정거장의 마고는 청소년부터 노인의 모습까지 다양합니다. 그나저나 정말 탁구가 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건 탁구대가 눈에 마침 들어오길래 어릴 때 딸이랑 같이 쳤던 기억이 나서, 물론 이렇게 어릴 때는 아니었는데… 요.”

“괜찮습니다. 그럼 저는 이용자의 우주선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요. 음… 빨리 태양풍에 갇히기를 바라주어야 할까요?”

“빨리는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노화가 와서 죽기 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마고들과 연결되어있을 때 죽게 되면 다시 다른 마고의 기억 속에서 살아갈 테니까요.”

“그래요. 그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저는 그럼 조종실로 가서 우주선 반출 프로토콜을 실행할게요. 죽기 전에 시간이 멈추기를!”

마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처음 타고 왔던 우주선으로 걸어갔다. 그도 조종실로 향하다 마고를 향해 외쳤다.

“아 참, 미안해요!”

그는 정말 오랜만에 핸들을 잡으며 마고의 말을 곱씹었다. 우주의 기본 물리는 멈추는 데에도 에너지가 든다는 것 시간도 공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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