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걱정하는 마음이 글을 쓰게 한다. 이번 카이스트 문학상 소설 부문에 응모된 열한 편의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이다. SF로 분류될 수 있는 소설이 주류를 이루면서도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고전적 소재의 판타지 등 다양한 작품이 응모되었는데, 장르적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시도보다는 위태로운 존재들 사이의 관계나 함께 미래를 맞이할 가능성에 대한 애틋한 탐구가 많이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 서로 다른 소설적 매력을 가진 당선작과 가작 한 편씩을 선정할 수 있어 즐거운 심사였다.

이채원의 <파랑의 무덤>은 전지구적 재난으로 육지의 많은 부분이 매일 커다란 파도에 쓸려가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일상적으로 우주로 쏘아보내는 세계에서 매립지로의 수송기사 일을 하며 지구에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는 인물의 이야기다. 설정을 통해 구축한 이미지 자체에도 힘이 있지만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한 것은 그 어떤 요약으로도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마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이 시대의 사랑을 “파도가 치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라 정의하며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창조하고 앞다투어 허물어버린 순간의 찬란함”을, 이제는 영영 잃어버린 세계를 어지러울 정도로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작가는 상처난 몸, 땀흘리는 몸, 바다 비린내가 밴 몸 등 신체의 감각적 경험과 그리움을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고, 현재 시점에서 회상한 과거, 현재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는 일에 대한 상상, 과거 시점에서 꿈꿨던 미래 등 복합적인 시간성의 경험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감정의 흐름을 유려하면서도 힘있게 이끈다. 자칫 감상적으로 흐를 수 있는 부분에서 유독 멋을 부린 문장들이 눈에 걸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설득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 작가의 개성적 역량이라 보았다. 세계를 걱정하는 마음이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는 마음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아름답게 보여준 작품이기에 <파랑의 무덤>을 기쁘게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당선작을 선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가작을 선정하는 일이었다. 익숙한 감동으로 이야기를 끝맺는 상투성을 피하지 못하거나 문장 단위의 기본기 부족으로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 설정의 참신함이 서사의 힘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두 작품은 이동은의 <역마 2333>과 김민교의 <그늘>이었다. 가작으로 선정한 <역마 2333>은 우주여행과 AI라는 일견 흔한 소재를 경유해 죽음에 대한 추상적 생각들을 공간적으로 구현해낸 구성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우주정거장과 우주선, 멈춰 있는 삶과 능동적인 죽음 등의 대비를 활용해 단편소설이라는 짧은 형식 안에서도 이야기의 전환점마다 필요한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며 윤리적 질문들을 식상하지 않게 던진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김민교의 <그늘>은 미묘한 감정이나 불현듯 떠오르는 직관을 직접 말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 다소 조급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나 계층 간 갈등, 자기혐오,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등 오래된 문제들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기교가 뛰어나며 불편한 장면 하나 하나를 집요하게 다루는 서술 방식에서 작가적 패기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완성해 투고한 모든 학생에게 축하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시간을 들여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정직함과 용기가 어떤 미래에서든 스스로에게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