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은 과학기술의 해라 할 만하다. 인공지능, 뇌공학, 우주공학 등의 전방위적인 발전은 SF 장르에서나 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일들을 대중의 눈 앞에서 현실화시켰고, 샘 알트먼이나 일론 머스크와 같은 과학기술자들의 말과 행동이 연일 복음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2023년 중반기를 장식한 영화 오펜하이머의 흥행은 과학기술자들의 연구나 성취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 경험, 생각, 사랑, 아픔까지도 대중이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금년도 카이스트 문학상의 수필 및 평론 부문을 심사하기에 앞서 한국의 과학기술계를 선도해 갈 카이스트의 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그런 열의와 선망에 얼마만큼 부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스레 기대와 걱정이 공존하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금년도 카이스트 문학상 수필 및 평론 부문에는 8명의 학생들이 총 12편의 글을 투고하는 데 그쳤고 옥석을 가리는 것을 넘어 시대 정신에 부합할 수 있는 글까지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지 모를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내밀한 경험이나 개성적인 논증을 정제된 언어로 전달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은 투고자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성스레 글을 읽어 나갔다. 투고된 글의 성격이나 분량이 다양하여 정밀한 비교가 어렵기는 하였으나 주제의 참신함, 내용 구성의 치밀함이나 체계성, 장르적 의의를 중심으로 수상작을 가려내었다. 

당선작인 강의룡의 ‘인생에 대한 주성분 분석’은 대규모의 복잡한 데이터 집합을 분석하기 위한 방법론인 ‘주성분 분석’의 시각을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 영역에 적용한 발상이 참신했다.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비전공자의 관점에서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생각할 수도 있는 접근이고 군데군데 비교가 성기게 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인생이나 가치관과 같은 추상적이고 관습화된 관념을 과학기술자의 시각에서 새로운 언어로 해석하고 이를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 비추어 의미화함으로써 나름의 설득력을 확보한 점은 이 글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이러한 생각을 고단한 학업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후배들을 위한 따뜻한 격려와 조언으로 연결한 점도 창의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지식인으로서 성장해 나갈 저자의 모습을 기대하게 하였다.

아쉽게 수상은 하지 못하였으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글들도 있었다. 오지선의 ‘흉터’는 아버지와 관련된 가슴 아픈 기억과 그리움을 신체의 상흔으로부터 떠올리고 그 의미를 되새기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저자로서는 평생에 걸쳐 의미화해야 할 과제일 것이고, 절제된 문장과 구체적인 묘사 덕분에 그 진정성에 깊이 수긍할 수 있었다. 다만, 진정성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보았을 때는 소재의 전개 방식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어느 정도 기시감이 드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장르적인 측면에서의 새로운 시도나 좀 더 깊이 있는 질문들이 뒷받침될 때 저자의 기억이 다른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게 현재화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손지아의 ‘갈색왜성의 미소’ 또한 비슷한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는 글인데, 이 글의 경우 오지선의 글에 비해 좀 더 전형적인 사건과 감정을 다루고 있는 점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 외 작품들의 경우 뜻 모를 수사의 남발, 과잉 감정의 표출, 질보다는 양을 앞세우는 경향이 두드러져 한 편의 완성된 글로서 의의를 찾기 어려웠다는 점을 밝혀둔다. 카이스트 문학상이라고 하면 아직까지는 교내의 일부 구성원들만 관심을 갖는 소소한 잔치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2023년을 기점으로 한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가 과학기술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학생들의 자기 표현 및 소통 욕구에 색다른 자극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이스트 문학상의 수필 및 평론 부분이 내년에는 더욱 다채로운 사유와 경험이 교류하는 풍성한 축제의 장으로 거듭나길, 나아가 수상자들의 글이 우리 사회의 좀 더 많은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영감과 변화의 동력을 주는 매개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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