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흔히 ‘시나리오’라고 부르는 영화의 대본은 영어의 ‘스크린플레이(screenplay: 영화 대본)’과 ‘텔레플레이(teleplay: TV 드라마 대본)’에 해당하는 용어다. ‘게임플레이(gameplay: 게임 대본)’도 넓은 의미에서 이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 문학상에서는 ‘영상의 시대’로 불리는 오늘날 문학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문학상 공모 부문에서 ‘시나리오 부문’을 독립시키고 작품을 모집해 왔다. 

시나리오 부문 모집을 시작한 이후 줄곧 시, 소설, 수필, 비평 등 전통적인 문학 장르에 비해 응모작이 많지는 않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응모작이 더 줄어들어 심사자로서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학내에 영화 동아리, 동영상 제작 동아리 등 영상 제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와 학생들이 작지 않은 만큼 ‘100분짜리 상업영화 대본’과 같은 거창한 작품이 아니라, 학생으로서 제한된 제작 조건 속에서도 영상화가 가능한 다양한 콘텐츠의 ‘밑그림’ 정도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작품을 창작하고 응모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올해 카이스트 문학상 시나리오 부문에는 이형욱의 ‘페이퍼볼’ 한 작품만 응모되었다. 신문 배달을 하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중학생 소년이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던지기’라는 공통점을 지닌 ‘야구’를 향한 꿈을 키우고, 야구부 투수를 하는 소녀의 도움으로 꿈을 향한 첫걸음에 해당하는 야구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진로’ ‘꿈’ 등 대학생, 대학원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고민하는 주제를 지금은 없지만 20~30년 전까지 존재했던 ‘신문 배달 소년’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매개로 풀어낸 점은 매우 창의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문장이 유려하고 전달력이 높으며, 서사의 완결성이 갖춰졌다는 점에서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될 미덕과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영상화할 때 좀 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좀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첫째, 이야기를 좀 더 구체화하고, 인물과 배경을 특정할 필요가 있다. 영화는 공동 작업이다. 작가나 감독의 의도가 배우, 스태프와 공유되어야만 작가, 감독이 의도했던 영상이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요 등장인물 두 명의 이름도 나타나지 않고,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어떠한지도 설명되지 않았다. 예컨대, “생활속에 불조심. 화재 없는 행복한 동네”, “녹슨 청동 철문 위에는 해태 조각상” 등의 지문을 통해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을 제시하려 한 듯하나 이 정도로는 어느 시대 이야기인지 공유되기 없다. 신문 배달 소년만 하더라도 195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존재하던 인물유형이다. 주요 공간적 배경인 신설 중학교, 해태 복합주택이 어떠한 이미지인지 지금 시나리오 상태로는 연출, 배우, 스태프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둘째, 첫 번째와 연결된 문제인데, 시대와 공간에 대한 고증과 고민이 부족하다.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학생이라면, 지금으로부터 최소 20~30년 전 상황인데, 그때의 상황과 중학교 야구부 투수를 하는 여학생이라는 설정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때는 남학생은 야구, 여학생은 소프트볼로 성별에 따라 엄격히 스포츠 종목의 참여가 제한되던 시대였다. 또한 작품에서 ‘신문 인쇄소’라고 설정된 공간은 ‘신문 배급소’의 오류임에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서사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신문 배달 소년과 야구부 투수 소녀의 관계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과관계가 잘 설명되지 않으며, 절정 부분의 화재 신도 너무 작위적이고 상투적이다. 이러한 독자, 관객의 의문, 질문을 염두에 두고 좀 더 정진하면 훌륭한 작품으로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형욱의 ‘페이퍼볼’을 가작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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