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언어적 소수자를 일컫는다. 반대로, 청인은 들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농사회는 농인들이 살아가는 사회로, 수어라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공동체를 뜻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농인보다 청인이 훨씬 많지만, 만일 청인보다 농인의 수가 많다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될 것이다. 즉, 농인이라는 존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청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차별당한다. 수어 없이는 청인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소통하기 어려우며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대다수 사람이 수화라는 용어가 수어로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농인에 관심이 없지만, 이들의 세상에는 단순 장애로 인한 불편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반짝이는 목소리가 존재한다. 이 아름다운 농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수어란?

수화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농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 정확한 용어는 수어이다.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되며 농인의 오랜 바람대로 한국 수어가 한국어를 이어 2번째 공식 언어로 인정받았다. 한국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국어라 부르듯, 수어라는 표현은 농인의 언어인 수화를 공식적인 하나의 언어로 인정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수어는 손짓과 표정을 비롯한 신체적인 신호를 이용해 의사를 전하는 시각 언어이다. 비언어 의사소통인 몸짓 언어와 동일하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으나, 둘 사이엔 명백한 차이가 있다. 수어는 수향, 수형, 수위, 수동 등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수향은 손바닥의 방향, 수형은 손과 손가락의 모양, 수위는 손의 위치, 수동은 손의 움직임을 말한다. 또, 동일한 동작이라 하더라도 표정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지기도 한다. 표정은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려주는 수단이 되므로 수어를 통한 소통에서 중요하게 여겨진다.
 

코다의 이야기

하나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알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수어를 사용하고 농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문화는 어떠할까. 사실 농인만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가장 직접적으로 수어라는 언어의 곁에 있지만, 코다를 빼놓고 농사회에 대해 논하기는 어렵다. 코다란 가족 중 유일하게 청인인 자녀를 뜻한다. 대부분의 청인은 수어를 모르고 농인은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기에, 한국어와 한국수어를 모두 구사할 수 있는 코다는 보통 가족과 세상 사이에 다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들을 향한 세상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들에게 모범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을 준다. 어쩌다가 부모님이 농인이라는 이야기를 하면 처음 만나는 사이임에도 동정이나 위로를 받기 일쑤이고, “너네 부모님은 안 들리니까 너는 열심히 공부해야 해”라는 말을 습관처럼 들으며 살아간다. 말하는 이에겐 아무 거리낌 없이 느껴졌을 이 말들은 위로가 되긴커녕 코다로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에 아프게 박힌다.

그리고 동정이나 위로를 받는다고 하여 실제로 농인들이 충분히 배려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농인 사회에서 호떡 장사와 풀빵 장사는 가장 화제인 돈벌이 수단 중 하나이다.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고 적은 의사소통만으로도 장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사를 하다가도 낯선

사람에게 리어카를 뺏기고 다시 찾아오는 것은 일상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주어진 조금의 자유조차 빼앗아 간다. 그러다 보면 다시 돈벌이가 힘들어져 빚이 쌓이고, 은행이나 채무자와 소통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코다의 몫이다. 그들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는 엄청나다. 가족을 챙겨야 한다는 마음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진다.
 

미국의 농사회

하지만, 미국으로만 가더라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농사회가 존재한다. 우선 코다를 위한 커뮤니티가 많다. 코다는 농문화과 청문화를 동시에 경험하기에 혼란을 많이 겪는데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코다의 장점 등 코다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 미국에는 세계 최초의 농인 종합 대학인 갈로뎃 대학이 있다. 모든 소통은 미국 수어나 필담으로 이루어지며 강의실도 소통에 용이하도록 원형으로 설계되어 있다. 사고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엘리베이터도 유리로 되어 있을 정도로 정말 사소한 것까지 농인을 위한, 농인에 의한 대학이다. 이곳에서 농인은 존중받는다. 오히려 수어를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곳이다.

이에 반해, 아직 한국 농사회의 현실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차갑고 무겁다. 대학생 장애 학생 도우미 제도가 존재하는 학교도 있지만, 청인과 동등한 수업 환경까지는 만들어지지 못했다. 도우미 신청 시스템 자체도 체계적이지 않으며 속기가 불가한 도우미가 많아 농인이 대필 도우미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도 더러 존재한다. 표면적으로 생기는 변화들은 있지만, 아직 소리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코다에게 늘 동정이 따르듯이, 농사회가 어두울 것이라는 편견은 늘 존재한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를 통해 조금은 알 수 있듯이 수어를 하는 이들은 실로 반짝이는 사람들이다. 소리가 없는 언어이기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어딜 가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농사회에서는 당연하다는 뜻이다. 코다인 이들은 표정이 중요한 수어를 알고 있기에 다른 청인들과 대화할 때도 다채로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처럼 소리가 들려서 좋은 것이 있듯 소리 없는 세상의 장점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농인들은 본인이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 글을 통해 수어의 세상을 들여다본 이 짧은 순간이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해주었길 바란다.
 

참고문헌 |
<영혼에 닿은 언어>, 김유미(2016)
<반짝이는 박수 소리 : 또 다른 언어, 수어로 말하는 사람들>, 이길보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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