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가 ‘실패 주간’ 행사를 지난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2주간 열었다. KAIST 실패연구소가 주관한 이번 행사에서는 전시, 발표,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실패연구소 측에 의하면 망한 과제 자랑 대회에는 약 90명이, 실패 세미나에는 56명이 참여하는 등 많은 학생이 실패 주간 행사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본 행사를 통해 실패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 학교 학우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번 달 1일 열린 망한 과제 자랑 대회에서 학생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실패연구소 제공
이번 달 1일 열린 망한 과제 자랑 대회에서 학생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실패연구소 제공

 

일상에서 실패의 순간을 포착하다, <KAISTian Photograph “Capture the Failure Moments”>

실패 주간의 첫 번째 행사는 창의학습관(E11) 1층 로비에서 열린 사진전 <KAISTian Photograph “Capture the Failure Moments”>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 31명이 3주간 자신의 일상 속 실패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총 356개의 사진 중 30장이 일, 성장, 생활, 회복력의 네 가지 주제로 나뉘어 오프라인으로 전시되었다. 과제를 위한 재료를 한 달 반 전에 주문했는데 마감 일주일 전이 되어서야 택배를 받아 좌절감이 몰려왔다는 슬픈 사연부터, 흙탕물로 인해 새 신발이 엉망이 되었지만, 며칠이 지나니 얼룩이 안 보여 ‘실패도 지나고 보면 별것 아닐 수 있다’라고 느꼈다는 긍정적인 사연 등이 전시되었다. 사진들이 대부분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순간을 담았기에 많은 학생이 쉽게 공감하고 실패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전시에 참여한 권유리 학우(생명과학과 박사과정)는 “평소엔 실패라고 느꼈던 상황을 더 긍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고, 김종우 학우(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석사과정)는 “실패가 아주 부정적이고 크게 다가왔는데,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크고 작은 실패 끝에서 만난 새로운 기회, 망한 과제 자랑 대회

실패 주간의 두 번째 행사로 창의학습관(E11) 1층에서 ‘망한 과제 자랑 대회’가 열렸다. 실패연구소가 ICISTS와 함께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총 10명의 학우가 참여하여 본인의 실패담을 공유했다. 참가자들은 유라시아를 횡단하려다 출발도 못 해보고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 음악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 갔으나 공연도 취소되고 아파서 여행도 하지 못한 채 한국에 돌아온 이야기 등 자신의 실패담을 발표했다. 발표자 시상은 ‘연구 대상’, ‘마상’, ‘떡상’, ‘인기상’ 총 네 부문으로 나눠 진행되었고, 그중 실패를 가장 흥미롭게 풀어내 연구 대상을 받은 문진우 학우(생명과학과 박사과정)와 스탠드업 코미디 형식을 잘 살리며 청중의 호응을 끌어내 최다 투표를 받은 인기상의 주인공인 배서연 학우(화학과 20)를 인터뷰했다.

먼저 문진우 학우는 ‘암 파인 땡큐’라는 주제로 암 발병으로 크게 쓰러졌던 일에 대해 발표했다. 유전적으로 집안에 암 환자가 많았던 그는 암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암 전이 연구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힘들지만 결과는 잘 나오던 연구에 들뜬 날들을 보내던 와중, 그는 뇌출혈로 쓰러지고 암 진단을 받는다. 시력을 잃을 수도 있던 악조건 속에서 그는 빠른 회복력으로 이른 퇴원을 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었지만 다시 연구도 시작하고 최근엔 성공적으로 논문을 마무리하며 박사 디펜스도 마쳤다. 문 학우는 생사가 오가던 실패를 겪은 만큼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말을 전했다. 더불어 이 실패 공유의 자리가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아니면 그저 재밌는 하나의 이야기로만 남아도 좋겠다고 밝혔다. 

배서연 학우는 주식 실패를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2020년 비대면 수업의 시작으로 지루하던 중 주식을 접했고, 초등학생도 한 달에 1억을 벌었다는 ‘도파민 솟는’ 이야기에 주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과외나 교내 활동 등을 병행했고 1년이 지났을 때쯤 주식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투자한 주식의 주가는 반토막이 나더니 점점 더 떨어져 결국 최저점을 찍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실패담이고,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 이후의 과정이었다. 실패 수용의 5단계에 따라 그는 부정했고, 분노했으며, 타협을 지나 우울의 단계에 들어갔고, 결국 잃은 돈을 수습하자며 결과를 수용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배 학우는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 5단계를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청중에게 실패를 경험한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실패했음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묻자, 두 발표자 모두 ‘주위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문진우 학우는 수술 후 시험을 앞두고 있던 친구, 군대에 있던 지인까지도 병문안을 와서 회복을 도왔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지도 교수님도 편의를 많이 봐주셔서 다시 연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동시에 혼자 실패를 떠안기보단 솔직하게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실패를 건강하게 이겨낼 수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런 이유로 실패는 그에게 위로였다고 밝혔다. 

배서연 학우도 주변 사람과 대화하면서 실패를 빨리 수용했고,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패는 당연하며 채워야 하는 실패의 할당량이 있기에 모두 열심히 실패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렇다고 실패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무엇에 임하기보단 최선을 다해야 실패해도 결과를 수용하기 편하다고 말했다. 두 학우는 인터뷰를 통해 공통으로 '실패 이후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비로소 실패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행사에 대해서는 두 학우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선 문진우 학우는 의미 있는 행사를 기획한 조성호 실패연구소 소장과 ICISTS에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행사가 꾸준히 열리고, 더 큰 규모로 진행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을 전했다. 배 학우 또한 실패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좋았고, 새로운 시도들이 재밌었다고 밝혔다. 또, 사소한 실패여도 다 같이 즐기며 배울 일이 많으니, 더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대회는 많은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1층 로비에서 진행이 되어 소리가 울려 퍼지는 바람에 발표자들의 말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학생 수에 비해 취재진의 수가 많아 행사장 내부가 혼잡했다.
 

인기상을 수상한 배서연 학우가 상패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실패연구소 제공
인기상을 수상한 배서연 학우가 상패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실패연구소 제공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 본 시간, 실패 세미나

실패 주간의 세 번째 행사로 학술문화관(E9) 2층 양승택오디토리움에서 ‘실패를 다루는 성공적인 방법에 관하여’라는 주제의 실패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수안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초빙교수와 리사 손 콜롬비아 대학교 버나드칼리지 심리학 교수가 연사로 무대에 올랐다.

먼저 김수안 교수가 본인이 쓴 책과 동명의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 그 누구보다 많은 실패를 경험한 프로야구선수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강연을 진행했다. 야구 심리학자인 김 교수는 2루수 중 KBO 최다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박정태, KBO 리그 최초의 통산 200승을 달성한 송진우, LG 트윈스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MVP 김용수 등 뛰어난 성과를 냈던 전설적인 야구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두 역경을 극복한 경험을 소중하게 여겼고, 메타 인지적 점검과 성찰을 바탕으로 위기를 통해 성장했다. 슬럼프에 빠진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해 삶의 전환점을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슬럼프를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김 교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나를 흔드는 환경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일이 안 풀릴 때면 직장을 나와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는 자기 경험을 예시로 들며, 환기의 시간을 가질 때 다시 일을 시작할 활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 나를 위한 생산적 취미를 가져보는 것이다. 김 교수는 취미로 목공을 하는 남편의 사례를 소개하며 취미를 열심히 하는 것이 스스로를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마지막 세 번째 방법은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록의 방법으로 그가 제안한 것은 감사 일기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이, 순간순간 기분이 좋을 때 사진을 찍거나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끝으로 김 교수는 사람마다 삶의 그래프와 어느 한 시점에서의 기울기는 다르지만 항상 '실패는 순간이고, 자기 삶이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수안 교수에 이어서 리사 손 교수가 “실패 의지: 성공적인 메타인지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책 <메타인지 학습법>과 <임포스터>의 저자인 손 교수는 강연을 통해 메타인지와 가면 증후군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와 통찰을 공유했다. 
손 교수에 따르면 메타인지를 어렵게 하는 다양한 인지적 편향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고치기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사후 과잉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다. 무언가를 배운 후에는 그것을 몰랐던 시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의 이 편향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라는 속담으로도 설명된다. 관련해 손 교수는 흥미로운 연구를 하나 소개했다. 이 실험에서는 아주 흐릿한 사진을 보여주고 그림의 사물이 무엇인지 참가자에게 물었다. 참가자가 모른다고 대답하면 알게 될 때까지 카드를 하나씩 넘기며 조금 더 선명한 사진을 보여준다. 그 이후 다시 처음부터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시점에서부터 알았는지, 혹은 몰랐는지 물었다. 그 결과 참가자들은 실제 맞춘 것보다 이른 시점에 ‘알았다’고 대답하는 경향이 있었다.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고 노력했던 과정을 은연중에 간과한 것이다. 

사후 과잉 확신 편향은 '얇은 가면'을 쓴 '임포스터'가 되게 하는 인지적 동기로 작용한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성공을 이루었지만, 과거의 노력을 잊는 편향된 사고로 인해 자신의 성공을 착오였다고 믿게 된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와 실제 '나'의 차이는 벌어지고 가면도 더욱 두꺼워진다. 이들 임포스터는 가면을 들킬까 늘 두려워한다. 관련해 손 교수는 "(미국에) 동양인, 특히 한국인 중에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많은데 고위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는 비교적 찾기 어렵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질문을 받았을 때 얼어버린다(freeze)'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런 질문들은 보통 정답이 없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문항인데, 가면을 들킬까 봐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면을 쓰고 사는 일은 자아를 고갈시키는 행위이기에, 평생 가면을 쓰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해결책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손 교수는 '들키기 학습법'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이왕 들킬 거, 내가 먼저 들킬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가면 뒤의 모습을 일찍 발각당하게 되어 덜 불안해지고, 더 가치 있는 피드백을 얻을 수 있다. 나아가 완벽함을 향한 강박을 점차 없애가며 임포스터 증상을 약화할 수 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현장 참석자와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김 교수는 “물리적 환경이 아닌 직장, 가족 등 사회적 환경이 괴롭게 하는 경우에는 쉽게 벗어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죽을 것 같으면 포기했다”라고 답했다. 이직, 퇴사 등의 결정은 힘들지만, 몸이나 마음이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것 같다’라는 신호를 보내면 더는 지속할 수 없다는 신호이므로 즉시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행사 진행을 맡은 실패연구소의 안혜정 연구조교수를 인터뷰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 교수에게 이번 행사를 통해 학생들이 얻어갔으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스스로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드러내지 못했던 생각이나 경험을 조금은 꺼내볼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안 교수는 “지난 학기에도 포토보이스 연구를 진행하며 각자의 실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살면서도 심리적으로 고립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모두가 어려움을 겪지만 동시에 회복한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고, 자신들이 느낀 감정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는 반응이 다수였다고 전했다. 이어 안 교수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는 '나는 이럴 때 힘든데 너는 어때?', '나는 실패를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와 같이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느낌이 나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은 창의학습관을 행사 장소로 정하고, 망한 과제 자랑 대회를 ICISTS와 함께 꾸민 것도 그런 이유였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내년 행사에 관해 묻자 안 교수는 “교수, 직원 등 더 많은 구성원이 함께 실패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었으면 좋겠다. '실패학회'라는 큰 틀에서 일상, 인생, 연구 등 다양한 맥락의 실패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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