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에 누워서 어두운 천장을 말똥말똥 바라본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스운 방법이긴 하지만, 양이라도 세어보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속으로 숫자를 되뇌인 경험 역시 말이다. 서른 세 마리, 서른 네 마리… 어디까지 세었을까, 당신은 눈을 감는다. 그리고 꿈을 꾼다. 비틀어진 현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꿈에서 혼란스러워한다. 어떤 사람은 단숨에 꿈임을 알아챘겠지만 또 어떤 사람은 끝까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깨어났을 때 얼마나 기억할 지도 모르는 꿈을 꾼다는 사실만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꿈에서 사건을 보다

동물원에 가서 양을 본다. 그럼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뇌는 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적 정보를 토대로 신경세포가 나타내는 정보 내용인 신경 표상을 활성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꿈에서 양을 볼 때도 역시 뇌는 같은 신경 표상을 활성화한다는 점이다. 즉, 적어도 우리 뇌에게는 현실에서 보는 양과 꿈에서 보는 양이 근본적으로 같은 특질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간단하고도 놀라운 사실은 뇌 전반의 활동을 기록할 수 있는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를 통해 증명되었다. fMRI는 뇌를 5만 개의 복셀이라는 작은 단위로 쪼개어, 2~3초에 한 번씩 모습을 기록하게 된다. 남겨진 기록을 토대로 다중 복셀 분석(MVPA)를 사용한다면 특정 이미지군을 볼 때 뇌의 시각 처리 영역 등에서 일어나는 복셀 활동 패턴을 밝힐 수 있다. 이를 역으로 활용한다면 복셀 패턴만을 보고도 뇌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 교토 ART 뇌정보통신종합연구소의 호리카와 토모야스 연구팀은 실제로 꿈을 꾸는 실험자들을 깨워, 기상 직전 그들의 뇌 복셀 패턴과 실험자들의 꿈 진술이 일치함을 확인하기도 했다.
 

현실의 거울상

꿈은 깨어있는 모습에 대한 일종의 재구성이다. 일어나는 사건, 등장하는 인물들, 심지어는 뇌가 꿈을 처리하는 과정마저도 깨어있는 “실제 세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꿈에는 “실제 세계”에서 상상도 못할 이상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곤 한다. 벨기에의 피에르 마케 연구팀에 따르면 이는 꿈을 꾸는 잠의 단계인 렘수면 상태일 동안에는 계획이나 논리적 사고 등을 맡는 뇌의 배외측 전전두엽 피질의 활성이 감소하는 반면, 감정 표현을 조절하는 변연계 전반에서 뇌 활동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꿈을 꾸는 동안 우리는 덜 이성적이고, 더 감성적이 되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꿈의 특성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현실적이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꿈을 이해하기 위해서 넥스트업 모델이 사용된다. 넥스트업 모델은 꿈에서 인간의 뇌가 기존에 탐색하지 않은 경로를 “약한 연관성”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강화하여 새로운 지식의 도출을 도모하는 독특한 기억 처리 과정을 지칭한다. 비록 시작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 예를 들어 학교나 직장에 관한 것일지라도 보통은 고려하지 않을 연관성 낮은 서술이 개입하게 되면서 꿈이 비로소 꿈이 되는 것이다. 

로버트 스티크골드 연구팀이 1999년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이를 “의미 점화”를 활용한 실험에서 밝혀냈다. 실험자들이 모니터에 띄워진 단어를 보고 이것이 존재하는 단어인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인지 판별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실험이다. 예컨대 모니터에 “Right”가 표기되면 “단어임”으로, “Wrank”가 표기되면 “단어가 아님”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다만 모니터에 판단될 “표적 단어”가 표시되기 전에 실험자들은 4분의 1초가량 깜빡이는 “점화 단어”에 노출된다. 아주 간단한 시행인만큼, 실험자들은 각각의 판단을 내리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그리고 판단이 얼마나 큰 정확성을 가지는지를 가지고 평가되었다. 

평소의 실험자들은 “점화 단어”가 “표적 단어”와 사전적으로 연관성이 클 때 더 빠르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Plum”이 점화된 뒤에 “Wrong”을 판단한 속도보다 “Right”가 점화된 뒤에 “Wrong”을 판단한 속도가 더 빠르다는 뜻이다. 우리의 뇌는 “점화 단어”를 보고 빠르게 그 단어와 연관성이 높은 기억을 떠올린다. 따라서 만약 “표적 단어”가 그 회로에 포함되어 있었다면 한 층 더 수월하게 연상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면 중이던 실험자들을 깨운 뒤, 세라토닌이나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조절물질이 평소의 각성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빠르게 실행한 실험의 경우에는 결과가 전혀 달랐다. “Right”-“Wrong” 등의 강한 연관 단어에는 의미 점화가 90퍼센트까지 감소했지만 “Plum”-“Wrong” 등의 약한 연관 단어에는 의미 점화가 2배 이상 늘었다. 이로써 우리는 꿈이 약한 연관성을 선호함을 알 수 있다. 익숙한 것들의 연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을 하게끔 강요하는 넥스트업 모델은 낮 시간동안 만들어진 사고의 연결에 의문을 재기한다. 연결의 타당성을 평가하고, 재단한다. 유용하다고 판단된 것들은 강화되어, 더 많은 사용이 권장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잊혀질 것이다. 결국 꿈을 통해 우리의 뇌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새에 복합적인 사고 판단 과정을 거친다. 애당초 우리가 기억할 것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것이 아니기에 꿈을 기억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꿈은 왜 꾸는가

현재까지 꿈은 밝혀진 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부분보다 적다. 따라서 꿈이 어디서 왔으며 꿈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고, 꿈은 왜 꾸게 되는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시각일 것이다. 그럼에도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이론 중 어네스트 하트만의 이론은 몹시 유명하기 때문에 소개하고자 한다. 하트만에 따르면 꿈은 새로운 기억과 오래된 기억을 낮 동안의 연결보다는 느슨하게 엮으며 그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하트만은 꿈에서 감정이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서부터 꿈이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성폭력을 당하거나 화재를 겪은 적 있는 사람의 무기력했던 감정에 대한 기억이 해일에 휩쓸리는 꿈으로 투영될 수 있다는 식인 것이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꿈이 사람의 나쁜 기억을 기존의 기억 시스템에 엮어 기억의 처리를 돕는다는 점에서, 꿈은 ‘밤의 치료’의 한 형태라고 믿었다. 

회상된 과거의 나쁜 기억은 꿈 속의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꿈꾸는 사람의 감정은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변한 감정의 맥락에 맞추기 위해 나쁜 기억과 엮인 감정적 이미지를 다른 형태로 탈바꿈하여, 적응케 한다. 꿈 맥락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은 정신적 외상 사건을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로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 잠든 사이에 외상 기억을 처리해낼 수 있지만 이 기능에 장애가 생긴다면 외상 사건을 조금도 잊지 않고 매순간 생생하게 느끼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된다고 설명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이 이론을 통해 우리는 PTSD가 수면 의존성 기억 진화의 장애로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꿈에서 배우다

자기 전에는 온통 뒤죽박죽이었던 개념이 잠을 잔 뒤에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잠자는 뇌는 깨어있는 동안 수용한 다양한 정보를 처리한다. 어떤 회로는 강화하고 안정화하는 반면, 또 어떤 기억은 요약하고 핵심만을 추출해내기도 한다. 다만 꿈은, 다양한 작용을 하는 뇌가 만들어내는 불필요한 부산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우리는 이런 관점을 거부한다. 꿈은 앞서 언급했듯, 마음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하나의 거대한 내거티브를 만든다는 사실 자체로 인간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마음에서 생성된 잘 짜여진 내러티브는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당위성, 해야 할 생각과 느껴야 할 감정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과거를 기억하도록 하고 미래를 계획하도록 하는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참고문헌
<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 안토니오 자드라, 로버트 스틱골드, 추수밭(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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