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대전 곳곳에 걸린 현수막 중 유난히 예술적이고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검은 바탕에 분홍 글씨로 쓰여있는 “ARTIENCE DAEJEON(아티언스 대전).” 아티언스는 예술(ART)과 과학(SCIENCE)의 합성어로,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 과학 인프라를 기반으로 예술과 과학 융복합 창작 과정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부터 시작된 아티언스 대전은 미리 선정된 과학 연구 협업 주제를 바탕으로 매년 봄에 참여 예술가를 공모하고, 선발된 예술가와 연구자가 2년간 교류하며 독창적인 작품을 만든다. 

대전문화재단은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참여 예술가에게 창작활동비와 워크숍을 지원하며, 예술가와 과학자의 적극적인 소통을 위해 정기적인 연구실 투어와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최한다. 교류할 기회가 적은 분야의 전문가 사이 협업은 창의적인 결과를 끌어내며, 그 결과물은 매년 가을, <아티언스 대전 결과보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다. 
 

2023 아티언스 대전 포스터  대전문화재단 제공
2023 아티언스 대전 포스터                                                                                     대전문화재단 제공

 

각양각색 전시실의 조화

이번 달 2일부터 16일까지 진행되는 결과 보고전에는 2021년부터 아티언스 대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9명의 예술가와 대덕연구개발특구 6개 기관의 9명의 박사가 협업한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는 합성생물학, 소리 측정 기술, 식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합성고분자 분석 기술 등 다양한 과학 주제와 수채, 펠트, 3D 프린팅, 디지털 페인팅 등 여러 기법과 재료의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예술가와 과학자로 이루어진 9개의 팀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협업했다. 방법은 분명하게 두 갈래로 나누기는 어려우나, 각 팀을 구상에 관한 교류를 한 경우와 기술적인 교류를 한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과학자의 연구 주제로부터 창작 아이디어를 얻거나, 기존에 예술가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과학자에게 검증받는 방식으로 협업을 진행한 경우는 구상에 관한 교류로 볼 수 있고, 예술가가 과학자의 기술을 배우거나 작품에 차용한 경우를 기술적인 교류로 볼 수 있다. 

 

메롱, 멋진 신세계 (이승연, 2020)                       ©방민솔 기자
메롱, 멋진 신세계 (이승연, 2020) ©방민솔 기자

 

첫 번째 경우에는 구체적으로, 임승균, 이승연, 홍주희, 배규무, 주다은, 그리고 채종혁 작가의 활동이 포함된다. 임승균 작가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최정헌 박사의 <루미네선스 신호를 이용한 연대측정 기술>이라는 주제에서 테마를 얻은 설치 예술을 보여준다. 이승연 작가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대희 박사와 <합성생물학, 의료용 미생물 등 미생물 유전체 진화 및 응용 기술이라는 주제>로 협업했는데, 지구와 닮은 창백한 푸른 점 Y에 관한 서사를 전개하며 자기 생각을 과학적으로 검증받고 멘토링 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이 멘토링을 토대로 화려한 색과 선의 환상 세계를 평면 그림뿐 아니라 펠트, 3D 프린팅, 동화책, 내레이션 등 다양한 매체로 보여줬다. 홍주희 작가는 한국기계연구원 유화롱 박사와 <화석연료에서 친환경 연료(액체수소 등)로의 변화 기술>이라는 주제로 설치 및 영상 예술을 전시한다. 배규무 작가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정미 박사와 <식물과 미생물의 상호작용 및 식물 분자 면역>을 주제로 협업하며 자문했다. 그는 특히, 모든 생명을 키메라*로 해석하며 펠트, 점토 등 각지지 않은 재료를 통해 생명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했다. 주다은 작가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조현수 박사와 <줄기세포 융합 연구 기술>을 주제로 협업하여, 상상의 종인 ‘아주 모호한 개체’를 설정하고 서사를 구축했다. 채종혁 작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희영 박사와 <데이터의 시대>를 주제로 교류하며 설치 및 디지털 페인팅 작품을 전시했다.

뉴 락 표본 2020~2023 (장한나, 2023)                                            ©방민솔 기자
뉴 락 표본 2020~2023 (장한나, 2023)                                                                               ©방민솔 기자

 

두 번째 경우 역시 흥미롭다. 민보라 작가는 한국기계연구원 백동천 박사와 <자성유체**의 확산과 제어 기술>이라는 연구 주제로 협업하며, 자성유체를 이용하여 한국화를 키네틱 아트***로 재탄생시켰다. 이다희 작가는 본인이 노래를 들으며 이를 회화로 옮기기 위해 고안한 체계적인 ‘음악번안시스템’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조완호 박사의 ‘소리 측정 기술’을 비교하고 접목했다. 같은 음악에 대한 여러 연주가의 ‘음악 번안 시스템’ 창작물과 서로 다른 연주가의 ‘소리 측정 기술’ 분석 결과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그 모양이 비슷하다. 장한나 작가는 플라스틱과 다른 생명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두고 자연에서 플라스틱을 수집하고 촬영했다. 자연이 된 플라스틱의 외형뿐 아니라 화학적 성질도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조건 박사와 <질량분석기를 이용한 합성고분자 분석 기술>을 주제로 협업했다.  

전시회는 과학과 예술의 융합만이 공통점인 9개의 전시실에 모두 깊이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입구는 아티언스 대전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을 제공하는 전시실 1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기에 바로 연결된 전시실 8부터 다시 전시실 1로 돌아올 때까지 한 바퀴 돌면서 관람하게 되어있는데, 각 전시실에 들어갈 때마다 관람객이 직접 문을 여닫으며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도록 한다. 또, 각 전시실의 조명, 배경 음악이 달라서 금방 다른 분위기의 작품에 집중할 수 있다.
 

과학자, 예술가, 대중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전시

아티언스 대전은 2011년부터 시작된 10년이 넘은 프로그램이지만, 예술가와 과학자의 협업은 대중에게 여전히 생소하면서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대덕연구개발특구 과학 인프라와 대전문화재단의 적극적인 기획이 있는 대전에서만 진행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과학과 예술의 융합으로 두 분야가 서로 영감을 주고받고 더 창의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다는 점은 아티언스 대전의 큰 매력이 되지만, 자칫하면 과학과 예술을 모두 잘 알고 있는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 과학 분야에 종사한다면 예술이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반대로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면 과학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두 분야의 사람 모두 이 프로그램에 장벽을 느낄 수 있다. 과학과 예술을 모두 깊이 알지 못하는 대중의 경우, 더 큰 진입 장벽을 느낄 수 있다. 

아티언스 대전을 주최 및 주관하는 대전문화재단은 이런 어려움을 완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3 아티언스 대전 결과 보고전>의 모든 전시실에 큐레이터가 있다. 관람객은 전시회 성격에 맞는 실험복 형태의 유니폼을 입고 있으며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큐레이터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질의하며 전시회를 즐길 수 있다. 또, 지난 12일 오후, 이다희 작가는 <보이는 음악, 들리는 그림>을 제목으로 전시실에서 토크 콘서트를 진행하여 직접 <Bach-Prelude in F# Major bwv858>을 연주하고 ‘음악 번안 시스템’의 과정을 상연했다. 같은 날 이다희 작가의 토크 콘서트 이후, 이승연 작가, 조숙현 큐레이터, 그리고 사운드 아티스트 Remi Jlemensiewicz는 함께 <그들이 눈을 뜨면>을 제목으로 사운드 퍼포먼스와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하기도 했다. 

배열, 색, 형태 J.S.Bach-Prelude in F# Major bwv858 (이다희, 2023)                                                        ©방민솔 기자
배열, 색, 형태 J.S.Bach-Prelude in F# Major bwv858 (이다희, 2023)                                        ©방민솔 기자

 

장소 | 대전예술가의집 3층 
기간 | 2023. 11. 2.(목) ~ 11. 16.(목)
요금 | 무료
시간 | 10:00 ~ 18:00
문의 | 480-1032, 1034

 

*키메라(Chimera)
한 개체 내에 서로 다른 유전적 성질을 가지는 동종의 조직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

**자성유체(Ferrofluid)
자기장이 존재할 때 강하게 자화되는 액체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포함하는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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