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국, 이어확 과기 연대회의 공동대표 “‘과학계 이권 카르텔’동의할 수 없다”… 과학기술계의 미래 우려해

지난 8월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이하 R&D) 예산 배분·조정결과>를 통해 대대적인 예산 삭감을 발표한 이후 그 여파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학부생·대학원생 학생회, 과학기술원, 정부출연연구원 등 과학계 전반이 연대하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계속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9월 5일에는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출연(연)과학기술연협의회총연합회,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과기정통부 지부 등 10개 과학기술계 단체가 참여한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이하 과기 연대회의)가 출범하기도 했다. 이후 5개 단체가 과기 연대회의에 추가로 가입하여 현재는 15개 단체가 과기 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R&D 예산안의 골자를 살피고 우리 학교 김돌비 예산팀장, 이동헌 대학원총학생회장을 인터뷰한 것을 시작으로, (관련기사 521호 <33년만의 R&D 예산 삭감 … 기초연구, 출연연 예산 포함해 5조원 이상 삭감>) 이재호 기초연구연합회 이사 겸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인터뷰해 학계의 상황을 취재했다. (관련기사 523호 <기초과학 단체 모인 기초연구연합회, R&D 예산 삭감 반대 서명운동 진행한다>) 여기에 이어 본지는 R&D 정책 연구자의 평가를 싣고 정부출연연구원(이하 출연연) 연구자들의 반응을 들어보고자 하였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과기 연대회의의 제동국, 이어확 공동대표를 인터뷰했다. 각각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 노동조합 위원장,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수석부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두 위원장은 ETRI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에서 각각 근무 중이다. R&D 예산 복구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두 공동대표에게 출연연 내부의 반응과 과기 연대회의의 출범 과정, 출범 이후의 활동 등에 관해 물었다. 

지난 24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가 열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동 앞에서 과기 연대회의 구성원들이 팻말을 들고 시위 중이다.                                                                                                                                이어확 과기 연대회의 공동대표 제공
지난 24일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가 열린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동 앞에서 과기 연대회의 구성원들이 팻말을 들고 시위 중이다.                                                                                                                                이어확 과기 연대회의 공동대표 제공
지난 24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장 앞에서 과기 연대회의 구성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제동국 과기 연대회의 공동대표 제공
지난 24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장 앞에서 과기 연대회의 구성원들이 현수막을 들고 있다.                                                                                                                                                         제동국 과기 연대회의 공동대표 제공

 

“충격적 예산 삭감에 출연연 구성원들 격앙되어 있다”

두 공동대표는 이번 사태가 이전과는 매우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제 공동대표는 “IMF와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국가R&D 예산이 삭감되지는 않았고, 기관에 어려움이 있을 때에도 타당한 설득의 과정이 있었다”며 “지금은 삭감을 결정한 시기와 삭감의 폭이 연구 기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정도”라고 답했다. 게다가 삭감의 사유와 삭감한 예산의 사용처도 비밀에 부치고 있어 걱정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이 공동대표도 정상적인 연구 수행에 차질이 빚어져 구성원들이 모두 격앙되어 있으며, 이번 사태가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연구비 삭감 발표를 전후로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지부장이 삭발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말까지 들었다”라고 연구원 내에서도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두 공동대표 “‘과학계 이권 카르텔’, 동의할 수 없다”

R&D 예산 삭감과 함께 과학계 내에서 큰 논란이 되었던 ‘과학계 이권 카르텔’에 대해서도 두 위원장의 생각을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한 이후, 여당인 국민의힘 산하 과학기술특별위원회는 이에 발맞추어 “정부 R&D 예산을 둘러싼 부처·기관·브로커 간 공생 카르텔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에 관련해 제 공동대표는 “일명 ‘R&D 브로커’가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관료주의의 폐해로 인해 발생한다”라며 이것이 전체 연구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답했다. 예컨대 적임자가 누구인지, 필요한 예산이 얼마인지를 과거의 경험으로 알 수 있는 연구에도 공동 개발이나 기업의 참여가 반드시 요구되는 비효율적인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과주의의 폐해로 무자격 기업, 연구자들이 발생하고 이들을 잇는 브로커들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제 공동대표는 “브로커가 존재한다면 이를 찾아내 죄를 묻고, 이를 묵과한 공무원을 징계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빌미로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잘못을 힘없는 연구자들에게 떠넘기는 몰염치한 행동이다”라고 예산 삭감을 비판했다. 

이 공동대표도 “연구 현장 종사자 전체를 카르텔로 매도했다”면서 연구원들을 비도덕적이고 비리가 많은 집단으로 묘사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반년간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에서 연구 현장과 긴밀히 협의해 만든 예산안을 뒤집고 짧은 기간 안에 전부 재구성한 것이 비효율이고 카르텔이라는 지적이다. 제 공동대표도 “카르텔이라는 단어는 권력자의 옆에 서야 어울린다”라며 목소리를 대변할 정치인도 매우 적은 과학기술계가 권력을 잡기는커녕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리도 한 번 카르텔을 만들어 부와 권력 누려보자”라는 주변 연구원의 자조적이고 역설적인 반응을 전하며 ‘과학계 이권 카르텔’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강조했다.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 과기계의 우려

예산 삭감에 대한 과학기술계의 부정적 기류는 과기 연대회의가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과 실시한 ‘정부 R&D 예산 삭감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설문조사에는 교수, 연구원, 박사후연구원, 대학원생을 포함해 총 5,307명이 참여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R&D 예산 삭감에 ‘바람직하지 않은 편이다(388명, 7.3%)’,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4,792명, 90.3%)’를 선택한 인원은 총 5,180명으로, 전체의 97.6%라는 압도적인 수치의 반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R&D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2,040명, 38.4%)’, ‘동의하지 않는 편이다(1,938명, 36.5%)’가 도합 75.0%(명)를 차지해 현장의 부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2개의 복수 응답을 허용해 이번 예산 삭감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물은 문항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R&D 카르텔에 대한 정부의 설명 부족과 정책의 반감 확대(2,607명, 50.1%)’, ‘현장의 목소리(분야별 단계적 삭감 혹은 증액)의 미반영(1,845명, 34.8%)’,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1,772명, 33.4%)’, ‘정부의 구체적 예산 삭감 범위 미공유(1,417명, 26.7%)’, ‘준비가 부족한 과학기술정책 방향(1,396명, 26.3%)’, ‘예산 편성 과정 절차 위반(894명, 16.8%)’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문제없다’고 답한 인원은 40명(0.8%)뿐이라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었다. 

설문조사를 통해 과학기술계가 공유하는 걱정도 그대로 드러났다. 2개의 복수 응답을 허용해 조사를 진행한 결과, 총 4,017명(75.7%)의 응답자가 R&D 예산 삭감이 불러올 가장 큰 문제가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현장 연구원 사기 저하(2,494명, 47.0%)’, ‘연구 인력 해외 유출 심화(1,629명, 30.7%)’, ‘대학 이공계 기피 현상(1,382명, 26.0%)’가 이를 뒤따랐다. 

예산 삭감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는 원안을 그대로 추진하자는 응답이 106명(2.0%)에 불과하였으며, 삭감 이전 과기정통부 혁신본부의 2% 증액안을 추진하자는 의견이 1,832명(34.5%)으로 제일 많았다. 비슷한 비율로 정권에 따라 R&D 정책이 변하지 않게 법을 개정하자는 의견(1,702명, 32.1%)과 현장 연구원 의견 수렴 후 추진하자는 의견(1,622명, 30.6%)도 상당했다. 
 

과기 연대회의의 출범과 이후 활동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과학기술계의 분노는 10개 단체가 연합해 연대회의를 꾸리게 되는 동기로 작용했다. 이 공동대표는 “단순히 연구자 처우나 연구 환경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면 과학기술계가 이렇게 뭉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국가 R&D 역량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며,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기에 다 함께 연대하게 되었다”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제 공동대표도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여러 노조를 한자리에 불러모아 연대회의를 만들게 되었다”며 예산 삭감이 부당하다는 데 모두의 공감대가 모였다고 답했다.

9월 5일 출범 기자회견을 가진 과기 연대회의는 다방면으로 R&D 예산 복구를 위한 노력을 진행해 왔다. 먼저 R&D 예산 삭감의 문제점을 알리고자 다양한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대전시 주요 지점에 현수막을 게시했다. 9월 27일에는 추석 연휴를 맞아 귀성객들에게 대전역과 버스터미널 등에서 국가 R&D 삭감과 연구 현장의 상황을 담은 전단지를 배포하기도 했다. 계속해 이번 달 11일에는 정부세종청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앞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국정감사에 앞서 기자회견을 했고, ETRI에서 과방위 국정감사가 열린 이번 달 24일에도 국정감사장 앞·연구동 앞 등에서 팻말 시위를 진행했다.

정부와 야당과도 접촉해 과학기술계의 의견을 전달했다. 이 공동대표는 과방위의 조승래, 민형배, 변재일 의원 등을 방문하여 R&D 예산 삭감의 현황과 부당함을 설명했다고 답변했다. 이번 달 20일에는 두 공동위원장이 과기 연대회의의 이운복 공동대표 겸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과기정통부의 조성경 제1차관과 면담하여 정부에도 과학기술계 입장을 전했다. 관련해 제 공동대표는 “면담을 통해 예산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출연연 관련 제도·지침 개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국회 간담회 및 토론회 참석, 보도자료 배포 등 R&D 예산 복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고 두 위원장은 전했다. 
 

예산 복구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 있지만, 삭감에 대한 우려는 여전해

R&D 예산 복구를 위한 과학기술계의 노력과 예산 삭감에 비판적인 국민 여론에 힘입어, 정부·여당에서 R&D 예산을 복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기도 했다. 한 예로 조선일보는 “‘카르텔 논란’에 삭감된 기초과학 R&D 예산 다시 늘린다”라는 제목의 9월 20일 자 기사를 통해 대통령실 관계자의 발언을 싣고 정부·여당이 국가R&D 예산 재조정에 공감대를 갖고 세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지만, 당일 대통령실이 예산 증액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공지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여당 측 간사인 송언석 의원은 이번 달 24일 “무턱대고 예산을 증가시키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면서도 증액이 필요한 경우 “여야 간 협의를 통해 정부의 동의를 얻어서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R&D 예산을 증액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공동대표는 “정부의 강경한 방침에 자포자기했던 초기에 비해선 증액을 기대하는 기류가 아주 조금 있다”라면서도, 예산이 일부 증액되어도 연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위기는 그대로라고 전했다. 또 “각 기관에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예산이 늘어날 것 같진 않고, 정부가 알아서 예산을 정리해 배분할 것 같다”며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듯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제 공동대표도 “만나는 연구원마다 예산이 복구되기를 압도적으로 희망하면서도, 예산 삭감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걱정한다”고 답했다. 이어 “예산 증액을 노력하고는 있지만, R&D 총액의 상향 없이는 다른 조직의 예산을 빼앗는,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라면서 총예산의 증액을 촉구했다. 

두 위원장은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과학기술계의 미래에 큰 먹구름이 끼었다고 내다보았다. 제 공동대표는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젊은 과학자들이 좌절하고 이공계 기피 현상이 심해질지 우려했다. “이번 예산 삭감으로 인해 박사후연구원, 학생연구원 등을 거의 고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젊은 인력의 유출은 남은 연구자들의 업무 과중을 유발해 추가 유출을 가져오는 악순환을 일으킨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공동대표도 “11월 말 정부 예산안이 확정되고, 내년도 R&D 사업과 세부 연구과제 삭감이 확정되고 나서 연구 현장에서 더욱 큰 좌절과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지막으로 제 공동대표는 “꾸준히 외연을 확장하여 이번 예산 삭감뿐만 아니라 PBS 제도 개선,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 등 현안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도록 하겠다”라며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다. 이 공동대표도 “후배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며 예산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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