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동연구, 출연연 간 경쟁·융합 장려 등 R&D 혁신 방안을 톺아보고, PBS 등 과기계의 근본 문제를 짚다

지난 8월 22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이하 R&D) 예산 배분·조정결과>에서 대대적인 예산 삭감이 발표된 이후 그 여파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학부생·대학원생, 과학기술원, 정부출연연구원(이하 출연연) 등 과학계 전반이 연대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편 예산 배분·조정결과와 함께 발표된 문서가 있다. 바로 정부 R&D 정책의 방향성을 담은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이다. 윤석열 정부의 R&D 분야 청사진을 담은 이 문서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과의 협력 추진’, ‘출연연 간 탄력적 인력 운용 및 경쟁 도모’, ‘사업 구조조정 및 상대평가 도입’ 등 다양한 방면의 제도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예산 삭감과 R&D 제도 개선 방안의 잘못된 지점은 무엇이고, 이전 정부의 정책과는 어떻게 다를까? 이번 논란에서 지적되지 않은 R&D 분야의 고질적인 문제에는 무엇이 있고, 또 해결이 가능할까? 이러한 의문들을 해소하고자 우리 학교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김소영 교수를 만났다. ‘R&D 정책 연구실’을 이끌고 있는 김 교수는 정부 R&D 지원 및 평가 등 과학기술과 공공정책 분야의 전문가다. 

 

1998년부터 2023년까지의 국가R&D 예산과 2023-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나타난 국가R&D 예산안을 정리하여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                                                                                                                      통계청 제공
199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OECD 평균의 GDP 대비 GERD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경우 2019년부터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일부분이 표시되지 않았다.                                       OECD 제공
1991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OECD 평균의 GDP 대비 GERD가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경우 2019년부터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일부분이 표시되지 않았다.                                       OECD 제공

 

충분한 교감 없었던 예산 삭감 과정에서 부족했던 소통 역량 드러났다

가장 먼저 정부의 예산안과 발표 이후 벌어진 사태에 대한 김 교수의 총평을 물었다. 그는 “전반적으로 이번 예산안을 보면 두 가지 요소를 중점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라고 입을 뗐다. 김 교수는 “첫째로 다른 줄어든 분야들이 있지만 R&D 분야가 특히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둘째로 예산 삭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내용에 대해 과학계와 충분한 교감이 없었다.”라며 문제점을 짚었다. 

“정부가 예산에 대한 긴축 기조를 갖고 있으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고 있었지만, 어떤 분야에 대해 얼마만큼의 긴축이 이루어질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었다.” 김 교수가 이어서 대답했다. 그는 “대신 전략기술들에 대한 예산 투자는 늘었다”라며 예산안의 의도가 ‘선택과 집중을 하자’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는 현장 연구자들에게 설명이 되었어야 하는 부분이었음에도, ‘재원이 부족하니까 선택과 집중을 하자’와 같은 메시지를 주며 설득하는 과정이 부족했기에 현장에서 많은 반발과 실망이 생겼다고 보았다.

이어 김 교수는 “연구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연구비가 꼭 많아야지만 정책적으로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의 동기와 목적의식”이라고 대답했다. 김 교수는 이런 측면에서 이번 예산 삭감이 연구자들에게 부정적인 메시지를 주었다고 보았다. “R&D 예산을 어떻게 분배하는지도 큰 문제이지만, 연구자들의 사기(morale)가 확 떨어졌다.” 정부가 과학기술을 국정의 핵심으로 삼겠다고 해놓고, ‘R&D에 카르텔이 있다’, ‘과학자들이 이익 집단이다’라고 하니 정부가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는 것인지 일대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이어서 대답했다. “이는 일선 연구자들에게 ‘이 일이 별로 가치가 없는 일인가’라는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소통 능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김 교수 “지난 정부 급속하게 늘어난 R&D 예산, 현실적인 조정 필요했다”

다른 한편으로 김 교수는 “예산 삭감의 폭이 크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R&D 예산이 굉장히 많이 늘어났었고 증가율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라면서 이것을 조정하는 것은 필요했던 일이라고 말한다.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긴급재난지원금, 소재·부품·장비 예산 등으로 말미암아 정부 예산이 전체적으로 많이 증가했었고, 이와 함께 R&D 예산의 폭도 많이 증가했다”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통계를 살펴보아도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 국가R&D 연구비가 크게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국가R&D 예산이 10조 원을 처음 돌파한 것은 2008년(11.1조 원)이고, 20조 원을 돌파한 것은 2019년(20.5조 원)으로 10조 원이 증가하기까지 11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2023년 국가R&D 예산은 31.1조 원을 기록해 사상 최초로 30조 원을 넘었다. 20조 원에서 30조 원이 되기까지는 11년보다 배로 짧은 시간인 4년밖에 소요되지 않은 것이다. 1998년부터 2023년까지의 국가R&D 예산과 그리고 2023-27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명시된 국가R&D예산 예상치가 좌측 상단 도표에 증가율과 함께 표시되어 있다.

김 교수는 “R&D 예산이 증가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방향이라고 보지는 않는다”라며, ‘R&D 역설’이라는 단어를 소개했다. R&D 역설이란, 적극적인 R&D 투자에도 기업의 실적이나 경제성장세가 정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례로 시장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른바 ‘장롱 특허’를 생각할 수 있다. 김 교수는 또 “R&D 역설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데에는 R&D 예산이 증가하고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늘어남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라는 배경이 있다고 말한다. OECD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총연구개발비(Gross Domestic Expenditure on R&D, GERD) 비율은 2012년 이후 OECD 가입국 중에서 줄곧 2위를 지키고 있다. 증가세도 미국, 일본, 중국 등 주요국에 비해 비교적 가파르다. 우측 하단 도표를 통해 이러한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R&D 예산 집행 기조, 이전 정부와는 어떻게 다를까

이전까지 과학계 R&D 예산이 지금과 같이 큰 주목을 받았던 상황은 없었다. 그렇다면 현 정부의 R&D 예산 집행 기조는 이전 정부와는 어떤 차이가 있길래 이러한 주목을 받는 것일까? 이에 관해 김 교수는 우선 “정권을 잡는 정당이 바뀔 때마다 전반적 운용 방향성이 바뀐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R&D 예산이 계속해 증가해온 것은 맞지만, 증가율만 따지면 진보 정부에서 보수 정부보다 더 많은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각 정권의 통치 기간 동안 발생한 대내외적 사건과 대통령 개인의 관심도 등 고려할 요소가 여럿 있지만, 전반적인 경향성은 위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는 와중에도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으로 국가R&D 예산을 집행하자’는 의제는 계속 유지되었다. 이미 2009년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에서는 ‘R&D투자 GDP 대비 5% 달성을 위한 민간 R&D 투자 촉진 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5%라는 수치는 R&D 연구자들 간에 상징적인 목표로 계속 인용되어 왔다. 이는 현 정부의 국정에도 반영되어 지난 3월 발표한 ‘제1차 국가연구개발 중장기 투자전략’을 보면, 5년간 170조 원의 R&D 예산을 투자해 정부 총지출 대비 5%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투자 목표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 예산 삭감을 통해 5%라는 지향점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실제 내년도 전체 예산안 대비 국가R&D 예산은 3.9%로, 이 값이 4% 미만이 된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이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과학기술 현장은 많이 찾아다니는데 이렇게 예산 삭감을 해버리니 국민들이 다소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예산안은 소수의 대형 과제 중심 

김 교수는 R&D 정책에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소수의 대형 과제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방식으로, 일명 어 퓨 빅(a few big) 접근법이다. 다른 하나는 많은 소형 과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일명 매니 스몰(many small) 접근법이다. 국가 R&D 정책에는 두 접근법이 동시에 사용되고, 정부는 두 접근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 퓨 빅 접근만 추구해서는 과학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는 셈이 되고, 매니 스몰 접근만 추구해서는 전략적으로 핵심 과제에 투자하지 못해 당장 필요한 성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이번 예산안이 어 퓨 빅 접근법에 좀 더 치중한 예산안이라며, “보수 정부는 상대적으로 어 퓨 빅 접근에 가깝고, 진보 정부는 매니 스몰 접근에 가깝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에 올해 대비 108개의 사업을 감축하고, 미래전략기술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내용으로 그대로 나타난다. 

한편 김 교수는 ‘어 퓨 빅 접근’을 선택한 예산 삭감안이 발표됨에 따라 우리 학교의 여러 연구실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학교 예산 중에서 정부 재원으로 충당되는 정부출연금은 채 사분의 일이 되지 않고, 대부분은 연구재단의 과제를 수주하는 등 학교 외부에서 가져오는 예산이다. 그런데 R&D 예산이 전략기술 쪽에 무게추가 실리며 연구 분야에 따라 수주하는 과제가 늘거나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양자, 첨단·바이오 등 전략기술 분야 연구자들은 더 많은 과제를 수주하고, 접점이 부족한 기초과학의 연구자들은 불리해질 수 있다.

 

기초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산의 지속성

계속해 R&D 예산 조정이 기초과학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질문했다. 김 교수는 “기초연구 예산은 아마도 전임 정부와 가장 차이가 나는 분야일 것”이라고 말하며, 정부가 바뀌며 기초연구 예산에 대한 접근법이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초연구 예산 2배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여 정말 2배가 된 것인지는 현장에서도 의구심이 없지 않지만, 표면적으로는 기초연구를 진흥하겠다는 메시지를 냈다”라고 전임 정부의 정책을 평가했다. 실제로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는 순수 기초연구비를 2020년까지 2배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는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예산 2배 확대’가 반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 정책에 대해 김 교수는 “핵심 메세지가 R&D다운 R&D로, 이는 국가전략기술 등 핵심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기초연구에 대한 별도의 메세지가 보이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대신 아무나 협력하지 않고 가치 기반 동맹국가들과 전략적인 국제 협력을 하겠다는 점에서 R&D 예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다.” 김 교수가 덧붙였다.

이어 김 교수가 중요한 지점을 짚었다. “국가전략기술이든, 기초연구든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라는 것이다. 특히 지속적인 투자는 기초연구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 그는 “일반적으로 교수의 지도 하에 대학 연구실에서 이루어지는 기초연구는 연구비가 적더라도 예측 가능하게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연구자들에게 적은 금액을 계속해 받을 건지, 큰 금액을 불안정하게 받을 것인지 물어보면 다들 후자를 택한다”라고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국제공동연구, 상향식에서 하향식으로 기조 변화할 것

다음으로 ‘정부 R&D 혁신 방안’의 골자를 하나씩 짚으며 김 교수의 의견을 들었다. 첫째로 가치를 공유하는 선진국과의 협력을 추진하는 내용에 대해 물었다. 여기에는 해외 연구기관들이 정부R&D에 참여하게 하고, 그중 미국과 협력이 중요한 바이오, 배터리, 에너지 등 핵심·신흥기술에 대한 협력을 우선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김 교수는 위와 같은 국제공동연구 진흥 방안에 대해 지식 교류를 통해 얻는 이점과 자본·기술 유출의 우려가 병존한다면서도 연구자 간의 협업 방식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전에는 연구자 개인 간의 네트워킹 기반으로 상향식(bottom-up) 연구 협력이 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국가전략기술의 관점에서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외국의 제휴해야 하는 기관들을 발굴하고 협업하는 하향식(top-down) 정책으로 기조가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국제 협력이 당장에 현실화될 수 없다는 의견도 내보였다. 타 선진국의 경우 R&D 정책 설계 후 반영되기까지의 시간이 적어도 2~3년은 걸리기에, 당장 내년 예산을 바꾼 우리나라와 바로 발맞추어 공동 연구를 진행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연연 간의 융합 필요하지만, 현상태로는 어렵다

이어 출연연 간의 연구 협력 진흥 방안에 대해 질문했다. 과기정통부는 이것의 일환으로 기관 간 칸막이를 없애는 가칭 글로벌TOP 전략연구단을 신설하고, 현행의 기관별 예산요구안에서 벗어나 핵심임무별 통합 예산을 수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시에 예산과 정원은 ‘실력 있는 기관’에 지원하기 위해 경쟁을 촉진하고 R&D 성과를 엄중히 평가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관해 김 교수는 “정부출연연구원 간의 융합, 협력을 해야 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문 간의 융복합화가 계속되는 현 추세상 출연연이 협력해야 하는 과제들이 늘어나는 것은 맞다”면서도 운영 목표가 다른 출연연 간의 융합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름이 다른 출연연 간에도 연구 분야가 겹치는 연구자들이 있기에, 출연연 간 협력의 여지는 있다. 예시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라고 해서 생명공학 전공자만 있지 않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라고 항공공학 전공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함께 기반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모일 수 있다.

그러나 김 교수에 따르면, 지금껏 그에 대한 보상이 적었다. 융합 연구의 프로젝트 규모도 작고, 연구자 개인에게 큰 보상이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관련해 그는 “몇 년 전에 NST에서 출연연 간 칸막이를 낮추기 위해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예산이 기존의 출연연에 오던 출연금을 조금씩 깎아 마련한 예산이었다”라며 기존 출연연 연구인력들도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출연연 간의 협업을 하려면 추가적인 보상이 주어져야지, 기존의 자원을 사용하는 방식으로는 경쟁으로 귀결된다.” 김 교수가 보충했다. 

한편 출연연 간의 협력을 가로막는 요소가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출연연 간의 경쟁이다. 김 교수는 “출연연은 늘 줄 세워지고 평가를 받는다. 출연연의 기관장들은 중간·연말 평가를 받고, 이 결과에 따라 각 기관에 돌아가는 보상도 달라질 수 있다”라며 출연연 간의 경쟁 요소가 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첨언했다. 

 

‘과학계 이권 카르텔’의 두 가지 의미를 묻다

셋째로 예산 삭감과 관련해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단어인 ‘과학계 이권 카르텔’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 교수는 “여기서 언급된 카르텔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첫째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고, 예산을 잘 따오는 연구자 그룹들이 일부나마 있다”라며, 예산의 출처를 잘 알고 사업 기획에 능한 이 집단이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카르텔’이 생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하향식으로 내려오는 과제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 일부 연구자와 공무원이 만나 ‘이런 주제의 R&D 기획이 필요하다’고 미리 논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는 연구자들에게는 과제를 배정받는 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고, 공무원들에게도 승진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라며 연구자와 주무 공무원의 이해관계가 맞아 부당한 공생관계가 생겼을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둘째로 김 교수는 과학기술계를 지원하는 조직을 ‘카르텔’로 보고,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여서 실제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에 투입되는 예산을 늘리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았다.대표적인 사례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다. 과총은 정부로부터 받는 차년도 국고보조금 120억 원 중 70%가 줄은 40억 원을 배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는 학술 활동 지원 예산 76억 원의 전액 삭감이 포함되어 있어 기관 운영의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는 “(과총과 같은 학회의 연합체들은) 바로잡아야 할 사안이 있을 때 목소리를 내는 기능이 있는데, 이를 줄여버리는 것은 정부 말을 잘 듣도록 만드는 조치일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예산을 줄이더라도, 예산 편성 ‘눈치게임’은 계속된다

김 교수는 이번에 발표된 예산안과는 별개로 R&D 예산 편성 과정에 있어서 구조적인 문제가 상존한다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우선 ‘기획한 R&D 사업을 발주했으면 책임을 지고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평가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규모가 큰 R&D 과제의 경우 10년 이상도 지속할 수 있는데, 과제가 진행되는 중간에 점검을 하는 자리가 마련되면 예전에 이 사업을 평가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남은 인원이 평가를 이어나간다는 것이다. 이는 ‘예비타당성조사만 면제하면 어떻게든 사업이 진행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만들 수 있기에 위험하다. 

책임을 지고 프로젝트를 평가하는 인원의 부재와 더불어 기획재정부와 연구자들 간의 ‘예산 눈치싸움’도 R&D 예산 편성의 구조적 문제이다. R&D 분야는 토목·건축 분야와 달리, 특성상 예산 집행의 근거가 수량적으로 명확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R&D 예산으로 연구에 사용되는 컴퓨터를 100대 구매했다고 하면, ‘왜 95대가 아니었는지’ 혹은 ‘왜 90대가 아니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는 정부가 예산 사용의 근거를 의심하고, 사업비를 깎을 수 있는 유인이 된다. 반면 연구자들은 ‘어차피 정부가 매의 눈으로 예산을 살피고 깎을 텐데, 조금 더 예산을 높여 잡자’고 생각하게 된다. 김 교수는 이번 예산안에는 R&D 예산 집행 과정에서 상시 벌어지는 이러한 ‘눈치게임’을 개선하려는 문제의식이 없다고 분석했다.

정리하자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작금의 예산 집행 체계는 예산 처리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하는 구조인 것이다. 연구비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예산에 대한 통제가 너무 강해서 각 세부 항목별로 어디에 써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김 교수는 “만약 1억을 받더라도 구체적인 항목들에 규제를 받으면서 써야 하는 선택지와 자율적으로 쓸 수 있는 천만 원을 받는 선택지가 있다면, 연구자 입장에서는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10년을 넘어온 의제 ‘PBS 개혁’, 이젠 할 수 있을까

R&D 예산 분배 과정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바로 PBS(연구과제중심제도; Project Base System)다. PBS는 사업 기획, 예산 배분, 수주 등 연구 관리 시스템을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PBS 체제 하에서 연구자는 직접 연구과제를 섭외하거나 과제 수주 경쟁에 참여해 과제를 확보한다. PBS의 도입은 연구 원가를 알 수 있게 해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이로 인해 과도한 과제 수주 경쟁이 잇따르는 등 연구의 안정성과 질이 저하되었다는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은 다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연연의 비효율을 개선해야 하지만, 그 방법은 일괄적 예산 삭감이 아닌 PBS 개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입장에 동의하는지, 김 교수의 생각을 물었다.

이에 김 교수는 “PBS 개혁은 출연연의 가장 큰 소망”이라고 답하며, 한편으로는 “지난 20년간 시도했음에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미완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PBS가 시작한 1996년 전에는 모든 인건비가 정부출연금으로 충당됐었다. 원래 PBS는 젊은 연구원들이 ‘과제를 통해 인건비를 가져가게 해달라’는 것이 시작이 되었다”라고 PBS가 탄생한 과정을 설명했다. 처음 PBS를 만들 때 인건비는 출연금에서 모두 주고, 여기에 자신이 과제를 따온 만큼 추가금을 주는 식으로 디자인했어야 했지만, 예산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인건비 총액을 그대로 두고, 그중 일부를 PBS로 충당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문제가 되었다. 

그렇다면 쉽게 PBS를 없앨 수 있을까? 김 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현재의 PBS를 없애야 한다고 본다”고 하면서도 “PBS 이후의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라고 말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PBS 체제에서 경쟁을 통해 따내는 연구과제를 다시 출연연에 배치할 때, ‘어떤 기관에 얼마만큼’ 배치할지 합의하기가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각 기관에 주는 출연금의 금액을 확정해도, 내부에서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다시 논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 교수는 우리 학교를 예시로 들며 “만일 정부에서 우리 학교에 2500억 원을 주었다고 하자. 이를 KAIST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선 구성원 간의 이견이 생길 것이다. 교육, 기초연구, 응용연구 등 다양한 주장들이 난립할 텐데, 여기서 합의를 해내지 못하면 PBS 개혁이 더 큰 분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PBS를 개혁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해결책으로 다다르는 길은 첩첩산중이라는 것이다. 

 

과학기술계가 이익 집단으로 비치지 않도록, 국민과 함께할 필요 있다

김 교수는 끝으로 “이번 사태에서 과학기술계가 이익 집단처럼 보이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과학기술계에 당부를 전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에 대한 투자에 미래가 달려있고, 지금처럼 예산을 줄여서는 과학이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없다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R&D는 특성상 성과가 언제 나올지 모르기에, 오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들의 지지”라며, “지금보다 생활이 궁핍했던 과거에 과학에 전폭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던 것도 밀가루 한 포대를 포기할 망정 교육과 과학에 투자하는 것을 국민들이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과학기술계 밖 일반 시민의 지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인이 전체 유권자 집단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낮기에, 과학기술인들이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주제가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도 과학자 집단은 여러 전문가 집단 중 가장 신뢰받는 그룹에 속한다. 과학자들은 항시 연구에 매진하는 순수한 집단이라는 인식이 유지되어 왔다”라며 대중의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있는 만큼 일반 시민들과 발맞추어 연대하는 것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인터뷰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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