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꿈만 같았던 순간이 있는가?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한 순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지고, 황홀함, 혹은 그와 같이 의식을 집어삼키는 감정에 의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

나는 올해 여름에 그런 순간을 경험했다. 환한 조명, 손을 맞잡은 배우들의 90도 인사,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 서서히 불이 꺼진 뒤의 암흑. 열심히 준비한 연극이 끝나며 감격에 벅차오른 그때,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2023년 봄, 막 카이스트에 입학 후 동아리를 탐색하고 있던 내게 연극 동아리 “이박터”가 눈에 들어왔다. 연극? 평소에 영화나 뮤지컬은 많이 봐도 연극은 생소한 예술 문화였고, 다른 종합대도 아닌 공대 연극 동아리인 점이 흥미를 끌었다. 마침 주말에 극을 올리길래 별 생각없이 보러간 나는, 그 동아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분명 동아리에서 취미로 연기하는 대학생 배우들인데 연기를 진짜 너무 잘했다! 나는 그 길로 이박터에 들어갔다.

학기 중의 일반적인 이박터 활동은 다음과 같다. 우선, 매주 기초연습을 통해 연극 연기의 기본기를 쌓는다. 발성, 발음, 동작, 감정 등 다양한 종류의 기초연습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연습은 “틀깨기”다. 연극의 특성상 배우는 감정을 과장해야 할 때가 있다. 어머니가 죽은 아들의 슬픔, 평생 앓던 병이 치유된 사람의 기쁨,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죄수의 분노… 이런 상황들은 평범한 감정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즉, 자신의 평소 감정 한계치가 5~6 정도라면, 무대 위에선 감정의 “틀”을 깨고 10의 감정을 표출해야 한다. 이를 위해 틀깨기에서 슬픔, 기쁨, 분노의 각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연습을 한다.

또한, 매 학기 연출, 조연출, 배우들이 한 조가 되어 독백과 워크샵을 준비한다. 독백은 한명의 배우가 3분, 워크샵은 2~3명의 배우가 5분 정도의 장면 연기를 펼치는 것이다. 배우는 이를 통해 대본을 외우고, 인물, 상황, 감정 등을 분석하고, 대사와 동선을 연습해서 실제로 무대 위에 서는 귀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독백과 워크샵이 끝날 때마다, 내 연기 실력이 크게 향상된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여름 방학이 되고, 나는 여름 정기연극에 배우로 참여했다. 힘들었다. 2달 동안 거의 매일 학교에서 연습하는 것에 대한 육체적인 피로도 있었지만, 그보다 대본을 외우고, 성공적인 연기를 펼쳐야 한다는, 그래서 결국 완성된 극을 올려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더 컸다. 하지만, 힘든 것 이상으로 즐겁고 보람찼다. 좋은 사람들과 추억을 쌓고, 연극의 캐릭터에 몰입하고, 점점 배우들 간의 호흡을 맞춰 극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정말 값진 경험이었다.

이박터에 들어와서 놀란 점은, 다들 연기와 연극에 진심이란 것이다. 이 동아리 사람들은 진심으로 연극을 보고, 대본을 분석하고, 무대 위에서 연기를 펼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말할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연극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그저 시간을 버리는 일 밖에 되지 않냐고. 충분히 논리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에게 되묻고 싶다. 당신에겐 꿈만 같았던 순간이 있는가?

영화 <라라랜드>의 노래 <Audition>에서 이런 표현이 나온다. “꿈꾸는 바보들”. 비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 같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꿈꾸며 살아간다는 것 아닐까? 내게는 연기를 연습하고, 연극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리는 모든 순간이 꿈 같았다. 내 진심, 연기를 향한 내 열정을 따라 행동했기 때문에 즐거웠다.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쓸데없다, 비효율적이다, 바보 같다고 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일들에 진심인 이들을 위하여. 편하고 쉬운 길이 아닐지라도 재밌으니까, 보람차니까 돌아가는 길을 택한 자들을 위하여. 꿈의 달콤함을 아는 사람들을 위하여. 세상과 삶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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