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닌지 4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새내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때 로망으로 꿈꿨던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게 바로 교환학생이었다. 바쁘게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에 다닌 시간이 앞으로 다닐 시간보다 더 길어져 있었고 '후회하지 말자'가 삶의 모토였던 사람으로서 지금이 아니면 내 오랜 로망을 이루지 못하고 후회하겠다는 단순한 생각에 무작정 독일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딱히 큰 포부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독일에서 못해본 게 있다고 후회하진 말자는 것이 다였다. 비싼 돈 주고 여기까지 온 김에 이 나라도, 저 나라도 다 가봐야겠다 생각했다. 한국에서 잘 하지 않던 것도 괜히 해봐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 학기라는 시간은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며 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한국에 22년 살면서 못 해본 것도 많고 못 가본 곳도 많은데 겨우 6개월 동안 다해보겠다는 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 하지만 욕심인 걸 인지하지 못한 채 바쁘게 시간을 보냈고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감당해 내지 못하며 결국 '내가 대체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에, 소위 말해 현타에 빠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기도 하였다. 좀 재수 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여행이 전혀 즐겁지 않아 힘든 시간이 있었다.

 그때 마침, 비자 문제로 독일 밖을 나가지 못하는 한 달이 있었다. 친구들은 다들 왜 하필 이러냐며 걱정해 줬지만 사실 돌아보면 나한테 꼭 필요한 한 달이었다. 반강제적으로 여행을 쉬면서 독일에서의 '일상' 자체를 만끽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시험 기간에 공부도 좀 하고 좋아하는 맥줏집도 자주 가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수영도 하고 잔디밭에 멍때리면서 누워있기도 했다. 딱 그랬더니 여기서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고 떠나겠다며 바쁘게 살 때보다 훨씬 행복했고 만족감도 가득했다. 하루하루가 꽉 찬 느낌이었다. 바쁜 것 없이 일상만을 보내니 그만큼 시간은 넘쳐났고 그동안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바쁘게 돌아다닐 땐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후회 없이 살자’라는 모토를 가진 나로서는 여기까지 나와서 시간을 평범하게 보내고 있는 지금이 더 힘들어야 하는 때 아닌가? 그제야 난 ‘후회 없이 살자’에 내가 너무 갇혀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정말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을 살고 있으니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겠다고 사소한 것들을 놓쳐버리면 그에 따른 후회가 또 밀려오더라. 차라리 당장 경험하고 있는 것 안에서 최대한을 끌어내 긍정적인 양분을 많이 얻어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끌어낸 긍정적인 것들로 인생을 꽉꽉 채우는 것. 그것이 경험 자체의 횟수를 의미 없이 늘리는 것보다 더 좋은, 더 나은 삶 아닐까?

 공부하면서 시간을 알맹이 있게 쓴다는 느낌은 나를 발전시키는 기분이라 좋았다. 잔디밭에서 멍때리며 누워있을 때는 따스운 햇살과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게 평화로운 기분이 들어 좋았다. 고요한 시간 동안 조용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때 하는 이런저런 생각들은 또 나를 완성하는 것 같아 좋았다. 좋아하는 맥줏집을 가고 좋아하는 친구를 만날 때마다 좋은 기억들이 쌓이는 것 같아 좋았다. 작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찾은 긍정적인 요인들은 결국 나를 완성하는 작은 힘들이 되었다. ‘후회 없이 살자’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나의 생활과 어떤 사람이 되고싶은지에 집중해야지 싶었다.

 이후에 후회하고 말고에 대해 따지는 건 관뒀다. 대신 하루하루 긍정적인 것들로 꽉 채워진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좋아하는 걸 했고 그때 나의 기분을 만끽했다. 꽉 채워진 행복이었다. 긍정적인 것들로 채워지는 게 기분이 너무 좋았고 내 성장이 느껴져서 그걸 바라보는 것 자체가 큰 만족이었다. 자연스럽게 나의 모토도 바뀌었다. 중학생 때부터 10년 가까이 후회 없이 살자고 다짐하며 살았는데 6개월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극단적으로 정신없이 살아보니까 그 모토에 갇혀 온전하지 않은 나를 마주했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찬, 온전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교환학생을 가기 전에는 “교환학생이 제 삶의 터닝포인트였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좀 진부해 보였다. 나는 다녀와서 꼭 다른 이야기를 해야지 다짐했는데 사람이 살아가는 시선과 태도가 바뀐 것을 두고 터닝포인트가 아니면 달리 뭐라고 설명할 수 있겠는가! 진부한 결론이지만 그로 인해 내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란 믿음이 생긴다. 나의 진부했던 6개월에 몹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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