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교수, “생애 첫 연구, 기본연구 등 신규과제액 전액 삭감하여 기초연구 분야 포트폴리오 크게 훼손해”

국가연구개발사업(이하 R&D) 예산의 대폭 삭감이 담긴 2024년도 예산안과 2023-2027 국가재정운용계획이 지난달 1일 국회에 제출되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가 집행하는 주요 R&D 예산 3조 4,000억 원(13.9%), 총 R&D 예산 5조 2,000억 원(16.6%) 삭감이라는 매우 이례적인 감축안이 포함된 만큼, 과학기술계의 반발은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5일에는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등 9개 조직이 참여한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출범해 R&D 예산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했다. 기초연구연합회 역시 지난달 18일, 기초연구 예산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이공계를 꿈꾸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예산안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지난 8월 28일, 우리 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 및 대학원의 총학생회에서는 정책 재검토를 요구하며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전면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본지는 지난 기사를 통해 현재 국회에 제출된 R&D 예산안 전체를 톺아보고, 우리 학교의 입장을 들어보기도 했다 (관련 기사 512호 <33년만의 R&D 예산 삭감…기초연구, 출연연 예산 포함해 5조원 이상 삭감>). 본지는 이번 기사를 시작으로 현재 진행 중인 R&D 예산 삭감의 문제에 관해 과학기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재호 기초과학연구연합회 이사 겸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를 인터뷰하여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본지는 추후 이어질 후속 기사를 통해, 출연연과 더불어 대학 현장의 목소리 역시 취재할 예정이다.
 

기초연구연합회는 어떤 단체인가

2016년 10월 7일, 1,700명의 기초과학 연구자가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요구하는 국회 청원을 진행했다. 이 청원에 힘입어, 2017년 1월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의견서가 채택되었으며, 같은 해 9월 27일 21개의 기초연구 학회 및 협의체가 모여 기초연합회 창립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를 토대로 생겨난 기초연구연합회는 현재 기초연구 분야 30개 학회 및 협의체로 그 범위가 확대되어 국가연구정책 제안 및 기초과학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다. 이 교수는 기초연구연합회 이사직을 수행하며 국가 정책 제안 분야에서 주로 활동 중이다.

이 교수는 기초연구연합회의 2가지 큰 목적을 강조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기초연구연합회가 중시하는 키워드는 창의성과 다양성”이라고 밝혔다. 이어 “창의성과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자기 아이디어를 제안해야 한다”라며 “일종의 상향식 연구 제안법인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사업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연구자 주도 연구비를 국가에 요구하기 위해서는 납세자들인 국민의 이해가 필요하다”라며 “국민들이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초연구 성과를 발굴하고 홍보하여 과학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즉, 기초연구연합회는 창의성과 다양성을 위한 연구 환경 확보 및 과학 저변 확대를 위해 활동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기초연구연합회의 모든 활동은 회원 학회 및 개인의 기부로 유지된다”라며 “정부 예산 지원을 받지 않기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될 여지가 적다”라고 강조했다.
 

2024년 예산안, 삭감 이상의 문제 있어

인터뷰에 나선 이 교수는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며 2024년 R&D 예산안에 문제가 있음을 피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기초연구연합회에서 말하는 기초연구예산은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사업비를 뜻한다. 이는 과기정통부의 주요 R&D 예산과 교육부의 일반 R&D 예산의 일부를 각각 포함하는 개념으로, 과기정통부의 경우, 개인 기초연구와 집단 연구 지원을 목적으로, 교육부의 경우 이공학 학술 기반 구축 사업을 목적으로 지원된다. 이 교수는 “정부가 기초연구 예산이라고 설명하는 경우, 이보다 큰 데, 이는 하향식으로 나오는 연구 과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라며 주의를 요구했다. 기초연구연합회에 따르면, 기초연구예산은 올해에 비해 2024년 1,537억 원 감액될 예정이다. 

그는 2024년 예산안 분석 자료를 토대로 예산이 줄어든 것 이상의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과기정통부의 개인 기초연구 예산을 보면 올해 1조 6,367억 원, 내년 1조 6,363억 원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큰 문제는 포트폴리오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초연구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기초연구사업은 박사과정생에서 중견 전임교원에 이르기까지 포트폴리오가 존재한다. 현재는 전임교원으로 신규 임용된 신진 연구자의 경우, 수천만 원 단위의 생애첫연구, 기본연구부터 1억 원 안팎의 우수신진연구비까지의 과제를 수주하여 연구실을 운영한다. 중견 연구자의 경우, 마찬가지 기본연구부터 수억 원 규모의 중견연구, 리더연구 등을 수주하며 연구실을 운영한다. 비전임교원의 경우에는 수천만 원 규모의 창의연구, 1억 원 내 규모의 세종펠로우십을 토대로 운영된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의 경우, 비교적 고액인 우수신진연구, 중견연구, 세종펠로우십의 경우 신규 과제액이 증액되었지만, 비교적 저액인 생애첫연구, 기본연구, 창의연구 등의 경우는 신규 과제액이 모두 0원이 되었다. 

이 교수는 이를 설명하며 “총액을 줄여 나가는 과정에서 우수신진연구 증액 등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이 못지않게 중요한 생애첫연구 등을 없앴다”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기초연구를 보면 신규 중견연구 과제, 신규 신진연구 과제가 늘었다며 연구자들 상황이 좋아졌다고 오해할 수 있다”라며 “포트폴리오 상에서 소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모두 중단되며 연구비와 연구비 사이에 큰 계곡이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비교적 연구비 수주가 어려웠던 분야의 연구실, 초임 시기 굴곡을 겪는 연구실, 연구를 잘 진행하다가 어느 기간 연구비 선정이 안되어 고전하는 연구실 등이 연구 활동을 시작할 수있게 하는, 또는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연구비가 필요한데 이런 역할을 할 과제가 아예 사라진 것”이라며 “우수신진연구 등의 연구비 산정률이 20~40% 정도에서 머무는 상황을 생각하면 연구비 지원을 못 받는 연구실이 훨씬 많아질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차선책을 없앴다”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이러한 연구 포트폴리오를 나눠먹기식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연구 생태계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나아가 “웻랩(Wet lab)의 경우, 필요 기자재의 준비, 학생이나 연구원을 고용한 뒤, 지도 및 교육하는 과정이 몇 년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연구비 절벽이 이런 식으로 갑자기 찾아오면 인건비, 운영비 등을 충당하는 입장에서 난감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연구에서는 수월성과 다양성 모두가 중요하다”라며 “중견연구, 우수신진연구 등이 증액되며 과제 수도 늘었기에 수월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있으나, 수월성만큼 중요한 다양성의 측면은 없앴다”라고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나중에 큰 연구자가 될 사람들 역시 작은 규모의 연구비에서 시작한다”라며 “수월성과 다양성의 양립은 과학계를 이끄는 큰 철학”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중견연구, 우수신진연구 등 일부 신규과제의 경우, 증액되었지만 정작 중견연구, 우수신진연구마저 계속과제는 감액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올해 지원받은 연구비의 규모로 내년에도 지원받을 것이라 생각하여 예산을 짠다”라며 “중견과제마저 계속과제 예산은 줄어들며 진행 중인 연구의 부실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견연구 계속과제 2,115억 원(25.2%) 감액, 신진연구 계속과제의 경우, 435억 원(18.6%)가 감액될 예정이다. 사업별로 볼 경우에도 한우물연구(예산 전년과 동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40%가량 삭감되었다.

이 교수는 선도연구센터과제 예산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현했다. 선도연구센터과제는 기초연구사업에 포함된 집단 연구 과제이다. 그는 “올해 예산안에서 각 선도연구센터과제 앞에 모두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붙었다”라며 “글로벌 SRC(우수이학연구센터), 글로벌 ERC(우수공학연구센터) 등으로 모두 바뀌었지만, 정작 이 ‘글로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선도연구센터과제 예산 역시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국한한 연구인 IRC(혁신연구센터)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감액되며 종합적으로 보았을 때 문제해결형 연구에 집중하려는 철학이 있는 듯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도 코로나바이러스를 외국에서 전공한 분들이 여럿 있었으나 한국에 돌아와서 연구한 사람은 없다. 연구비를 못 땄기 때문이다”라며 “도움이 별로 안 될 것으로 생각했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기초 연구는 결국 코로나-19 팬데믹을 겪는 가운데 진단법과 백신 개발의 기본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인류가 최초로 팬데믹을 통제한 사례를 남기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다양성을 훼손하면, 미래를 희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기초연구연합회에서 예측한 연구 과제 수 추이도 설명했다. 그는 “2027년까지 천천히 예산을 현재 규모로 다시 늘린다고 하지만 이를 고려해도 연구 생태계가 정상화될지는 의문”이라며 “지금처럼 신규과제를 비슷한 규모로 산정한다고 가정하면, 증액된 신규과제 역시 다음 해에는 계속과제로 남기 때문에 신규과제에 쓸 수 있는 예산은 외려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에 따라 과제 총수가 감소하여 2026년에 절반 정도만 남을 것”이라고 덧붙이며 “1인 1과제 원칙상, 과제 수 감소는 필연적으로 연구자 수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정리했다.
 

기초과학 연구가 투자 대비 성과가 없다는 생각도 있는데, 이 역시 오해

이 교수는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전혀 낭비되는 것이 아님을 정량적으로 설명하며 말했다. 이어 “논문 수의 경우, 정부 R&D 예산의 8.2%를 차지하는 기초연구사업이 논문 수에는 43.7% 기여한다”라며 “학문이 아닌 특허의 관점에서도, 특허 출원 성과의 14%에 기여한다”며 오해에 반박했다. 또한 “가장 직접적인 성과와 관련된 기술료 징수액 역시, 총액의 19.3%에 기여한다”라며 기초연구 성과가 투자 대비 성과가 낮다는 생각은 정책당국과 시민들의 오해임을 토로했다. 더불어 이 교수는 “세부적으로 기초연구사업 중 이번에 없어지게 된 생애첫연구나 기본연구도 피인용 상위 1% 논문 수, 특허 개수 등에서 다른 연구과제와 확연한 차이가 나지 않는다”라며 현재 예산안의 방향성이 잘못되었음을 다시 짚기도 했다. 

이 교수는 연구 현장의 반응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 있는 연구자들의 경우, 출연연 연구자들에 비해 R&D 예산 삭감의 충격에 대해 상대적으로 덜 실감하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하지만 현재 여러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사실을 보며 떨떠름하고,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교수는 “최근 연대회의 측과 연락할 기회가 있었다”라며 “기초연구연합회와 연대회의는 세부 관심 사항은 다르지만, R&D 예산을 정상화한다는 큰 틀에서의 협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남은 과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9월 21일 국회 간담회를 진행할 때, 여러 기자가 참석하는 것을 보며 국민의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는 낙관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는 한편, “헌법 57조에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라며 “증액에는 결국 국회, 정부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라는 어려운 측면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때문에 여야 모두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라며 “야당 국회의원은 물론, 여당 국회의원, 행정부까지 폭넓은 접촉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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