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 <굿걸스>, <범죄의 재구성>,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 유명한 드라마 시리즈, 그들의 공통점은 ‘마약’입니다. 시리즈 내 마약 사용자는 물론, 심지어는 마약을 만들어서 직접 유통하는 내용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새 우리 머릿속의 마약은 이국적인 이미지와 맞물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마약은 우리와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올해 4월에 있었던 서울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 등으로 우리나라의 마약 사태가 가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언젠가 오게 될 마약 팬데믹을 준비하기 위해 마약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반드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몸과 마음을 망가뜨리는 약

마약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업 계열의 마약은 일종의 흥분제입니다. 복용한 당신의 눈은 현미경이 되기도, 망원경이 되기도 하고 나비의 날갯소리가 마치 헬리콥터 프로펠러같이 들리기도 합니다. 필로폰, 암페타민, 크랙 등의 이런 업 계열 마약은 조명과 음악을 한 층 신나게 만들어 주는 효과 때문에 클럽에서 자주 유통되고 사용됩니다. 다운 계열 마약은 업 계열의 마약과 정반대의 작용을 합니다. 사람을 늘어지게 하고 편안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15분만 잤는데도 마치 하룻밤을 꼬박 잘 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약이라고 하면 그 효과로 주로 업 계열의 마약을 떠올리기 쉽지만, 프로포폴, 펜타닐, 헤로인 등의 다운 계열 마약의 이름은 절대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그건 아마 업 계열 마약으로 놀고, 계속 흥분된 상태로 잠도 못 자면 다운 계열 마약이 필요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흥분했다가 진정했다가, 마약 중독자들은 중간도 없는 롤러코스터같이 땅에서 하늘로 솟았다가 다시 하늘에서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경험을 계속하게 됩니다. 애당초 업 계열 마약과 다운 계열 마약을 묶어서 같이 하는 스피드볼(Speedball)이라는 개념이 있기도 합니다. 

마약은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엔도르핀과 같이 우리 몸에서 행복, 흥분, 쾌락 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을 교란합니다.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분비되기도 하고, 가끔은 아예 결핍되기도 하면 우리의 몸은 이에 맞추어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신경전달물질의 존재를 확인하여, 여러 연쇄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수용체 그 자체와 그 양에 변화가 생깁니다. 물론 사용하는 마약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뇌와 신경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은 사람은 자극이 없어도 마치 있는 것과 같은 착각, 즉 환각을 필연적으로 겪게 됩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데 우리 뇌에서는 실제로 있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현실과 망상을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누군가가 나를 헤치려고 든다는 피해망상에 빠지게 됩니다. 정신 착란을 겪게 됩니다. 끝없는 우울과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다다릅니다.

불안과 우울, 끝내는 폭력성까지 보이게 되는 이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을뿐더러 본인의 몸 상태조차도 돌아보지도 못하게 됩니다. 필로폰 등의 업 계열 마약을 복용하면 몸에서 마구 힘이 솟습니다. 흥분과 황홀에 빠져, 밥도 물도 없이 1~2주를 버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마약이라고 해도 몸에 열량을 공급하지는 못합니다. 지방부터 근육의 단백질까지 몸은 자기를 구성하고 있던 요소들을 하나씩 녹여서 사용할 수밖에 없으며 마약 의존자는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거친 피부, 휑한 머리카락, 충혈된 눈, 바짝 마른 몸은 의존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공통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중독되는가

미디어에서 본 마약을 잠깐 상기해 봅시다. 그들은 흰 가루를 코로 들이마시기도 하고, 주사기 속 흰 액체를 팔에 스스로 주입하기도 합니다.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고, 코로 무언가를 들이마시는 것 자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는 마약을 흡입, 주입하는 행위 자체가 기괴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괴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마약 의존자와 중독자들도 이유식보다 대마초를 먼저 씹기 시작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약으로, 가면 갈수록 더 무거운 약으로 말입니다. 입에 무언가 물고, 그 끝에 불을 붙이는 이 행동은 비흡연자인 필자에게는 아주 낯선 행동이지만 흡연자에게는 아주 낯설지는 않을 것입니다. 찬드니 힌드차(Chandni Hindocha) 연구팀이 영국에서 2020년에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1년 동안 대마초를 피울 확률은 10배, 매일 대마초를 피울 확률은 25배나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몇 번씩 대마초를 몸에 들이다 보면 마약을 한다는 불안감과 심리적 장벽이 허물어지길 마련입니다. 

마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모르핀은 아편을 가공해서, 헤로인은 모르핀을 가공해서 더 센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중독에 빠지는 과정도 이와 사뭇 비슷합니다. 대마초를 태우기 시작한 사람들은 대마초 내의 마약 성분인 THC 함량이 높은 것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THC 함량이 더 높은 대마가 없자 액상 대마로, 액상 대마에서 알약으로 넘어오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입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실시한 마약류 사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평생 한 가지 약만 사용한 경우는 10명 중 4명꼴로, 과반의 사람들이 점점 강해지는 순서로 두 가지 이상의 마약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마약이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시행한 조사인 만큼, 실제 정도가 축소된 대답이 있을 것이라는 걸 고려하면 이는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입니다. 
 

치료와 규제

마약 사용자는 범죄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약에 대한 대중적 시선도 매우 비판적입니다. 그들은 범죄자이기에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다만 다른 시각도 존재합니다. 마약 사용자들은 약물 의존성에 빠진 환자이기 때문에 치료해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마약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일종의 이상주의적 시각에서 비롯된 사상입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마약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약의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시각에서 비롯된 현실주의적 접근입니다. 이런 접근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의견은 주로 사용자의 안전입니다. 마약을 사용하기 위해 불법적 경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들어갔는지조차 모르는 혼합된 약물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사기를 공유하며 HIV나 C형 간염 등의 병이 전파될 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마약 치료를 받지 못하여,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끝에 매춘이나 강도와 같은 다른 범죄로 빠져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마약 의존증 치료 및 일부 합법화는 이런 악용의 사례는 양지의 조명과 정부의 감시와 규제하에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가 이러한 이유로 마약을 합법화했다고 하여, 이런 모델은 ‘네덜란드 모델’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네덜란드뿐이 아닙니다. 2013년에 미국은 대마초에 한해 각 주의 법률을 따를 수 있게 했고 2022년에 태국은 대마초를 합법화했습니다. 그리고 두 나라 모두 마약에 의한 현실적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대마초에 대한 규제는 존재했습니다. 태국의 경우, THC 함량 제한과 연령 제한 등의 실질적 규제는 늘 있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대마 사용 후 정신적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이 5배 이상 늘었고, 청소년의 대마 소비는 2배 늘었다고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욕에서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가게는 60곳에 불과했지만, 몇 년 새에 집계된 불법 영업소만 1,400곳이 넘어간다고 합니다. 
 

조절한다는 착각

다양한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마약 규제에 애를 먹는 이유는 아마 사람들이 스스로 마약을 조절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절 망상’이라고도 부르는 이 현상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약의 투약 양과 횟수를 조절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다른 말로 “나는 중독이 아니다”만을 속으로 되뇌는 현상입니다. 스스로 중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의 필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망가지는 투약인의 생활을 주변에서 보는 보호자나 주변 사람이 억지로 진료소로 데리고 오더라도 치료를 거부한다면 그 어떤 진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담배만 해도 자신의 의지로 끊는 사람은 100명 중 4명꼴밖에 되지 않습니다. 금연을 돕는 약을 먹더라도 금연에 실제로 성공하는 사람의 비율은 3명 중 1명입니다. 담배는 쾌락과 금단 현상이 다른 마약에 비해 비교적 약한 ‘소프트 드러그(soft drug)’임을 감안하면 ‘하드 드러그(hard drug)’는 의지만으로 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일러스트 | 오예원 기자

 

참고문헌
<마약 하는 마음, 마약 파는 사회>, 양성관, 히포크라테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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