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 「거미집」

9월 27일 개봉 ~ 현재 상영 중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9월 27일 개봉 ~ 현재 상영 중                                                         (주)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자유로이 예술을 할 수 없었던 검열의 시대 1970년대. 김열(송강호 분)은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작품들이 줄줄이 망하며 점차 삼류 감독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거미집’의 촬영을 마치고 며칠째 새로운 엔딩에 대한 악몽을 꾸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그는 결말만 새로 찍으면 데뷔작을 넘어선 걸작이 될 것이란 예감으로 이틀간의 추가 촬영을 결심한다. 미도(전여빈 분)의 도움으로 겨우 촬영을 시작하지만, 심의는 통과되지 않고, 꼬여버린 스케줄과 ‘플랑 세캉스’를 고집하는 김 감독에 배우들의 불만은 많아진다. 설상가상 영화 관계자까지 들이닥치며 영화는 극으로 치닫는다. <거미집>은 영화 ‘거미집’을 다시 촬영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영화이다.

치열한 현장에서 박진감 넘치게 흘러가는 영화지만, 132분의 긴 상영시간과 반복적인 스토리에 다소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소재나 시대적 배경이 독특하다 보니 생소하게 느끼는 관객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지점이 오히려 영화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 속의 영화 ‘거미집’은 흑백이며 배우들이 70년대의 말투로 연기를 한다. 평소 우리가 보던 영화와는 아주 다르지만, 그것을 잘 풀어낸 김지운 감독의 연출, 곳곳에 숨어 있는 웃음 포인트, 그리고 쉴 틈 없이 몰아치는 배우들의 완벽을 넘어선 앙상블은 관객들을 ‘거미집’이라는 세계 속으로 빨아들인다.

김지운 감독은 지난달 28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거미집’은 한 명의 감독이 마음속 불씨를 꺼내고 활활 태워 모든 걸 전소시키는 과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김 감독의 시선을 따라간다. 김열의 꿈으로 시작하여 위기의 순간들, 그리고 상영이 끝난 순간마저도 그의 표정에 집중한다. 그의 감정에 이입하다 보면 관객은 영화를 촬영하는 이들의 열망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는 세트장 벽에 불을 붙이고 칼을 쓰는 위험한 장면을 촬영할 때, 끊지 않고 한 번에 장면을 완성하는 ‘플랑 세캉스’를 고집한다. 그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촬영 방식을 택한 이유는 의도를 잘 표현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남들과는 다른 예술가적인 무언가를 해내야만 한다는 집착 때문이었다. 결국 세트장에 불이 나고 촬영은 산으로 가지만, 김 감독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불태운다. 시간과 시대의 압박에 시달리던 상황 속에서도 빛나던 그 열정은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가 촬영한 ‘거미집’은 영화 속 관객과 영화관을 찾은 관객 모두에게 박수받으며 훌륭한 작품이라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김열의 표정은 뭔가 복잡 미묘하다. 후련하다는 표정도 아쉽다는 표정도 아니다. 이 순간의 여백은 관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영화의 끝에서 이 여운을 간직하며 김지운 감독, 그리고 김열 감독의 감정에 잠시나마 공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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