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인 해커톤( Hackathon)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의 직군이 팀을 이루어 제한 시간 내에 서비스를 개발하는 공모전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프로그래밍 직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운영체제, API 등 프로그램 개발에 관한 단어들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비슷한 듯 다른 메이커톤(Make-A-Thon)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기시감이 다소 느껴지는데, 아마 정확히는 몰라도 대략적인 상상이 가능한 해킹과 달리 메이킹은 그 범주가 너무 넓어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많은 기술들이 제안되었음에도 그들 모두가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결국 산업적으로 부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상상’의 영역을 넘어 ‘실제’라는 제약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메이커톤은 이러한 문제 의식에 관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개발자, 엔지니어, 디자이너, 기획자 등 다양한 직군의 참가자가 팀을 이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실제 적품으로 구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인터렉티브 운동화 '쿨런'의 시제품 제작 과정이다. 제작은 아이디어팩토리를 활용해 진행되었다.  아이디어팩토리 제공
인터렉티브 운동화 '쿨런'의 시제품 제작 과정이다. 제작은 아이디어팩토리를 활용해 진행되었다.                           아이디어팩토리 제공

 

이러한 맥락 속에서 우리 학교 창업지원센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한 의식주 변화 아이템 제작하기’를 주제로 지난 7월 5일부터 열흘간 2023 KAIST 메이커톤을 개최하였다. 유관 부서인 아이디어팩토리에 근무하는 최서연 직원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메이커톤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함에 따라 대면 행사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기획되었다. 특히 시제품 제작 역량과 더불어 해당 과정에서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과정 전반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비대면 모임을 통해서는 성취할 수 없는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또한 우리 학교는 아이디어팩토리(Idea Factory)를 통해 3D 프린터, 레이저 커터 등 시제품 제작을 위한 주요 장비를 학부에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으며, 나아가 세미나 및 멘토링을 통해 각종 장비의 활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대회를 위한 환경도 상당 수준으로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창업지원센터에서 주최하는 행사임에도 창업에 관한 청사진을 오랫동안 그려온 구성원만이 참여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창업지원센터 측은 오히려 “창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을 가지거나 또는 창업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사를 기획했다”고 언급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경험을 통해 창업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또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행사의 취지임을 밝혔다. 일례로 각각 시가총액 1, 2위를 자리를 지키며 글로벌 주식 시장을 선도하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미국 특유의 차고(Garage) 창업 문화를 바탕으로 시제품을 우선 구현하고 이를 완성품으로 발전시키며 기업의 성장을 이룩했다. 요컨대 시제품을 제작하는 작은 시도가 경험의 형태로 축적되고, 나아가 창업에 대한 열정을 북돋을 수 있다는 점에서 벤처 문화 확산에도 기여할 수 있다. 

한편 의식주 변화 아이템 제작의 측면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는 주제의 선정과 관련하여 묻자, 창업지원센터 측은 오늘날의 기술 발전이 사회 문제 해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며 기획 의도를 부연했다. 즉 행사 참여자들과 환경 문제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공유한 후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최종적으로는 실제 시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서 사회 일원으로서의 책임 또한 제고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KAIST 메이커톤의 경우 2~4인의 KAIST 재(휴)학생으로 구성된 팀으로 지원을 제한함으로써 사회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수준에 국한하지 않고 협력을 통해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본 행사는 메이커 문화 확산 또한 목표로 하는 만큼, 아이디어팩토리 내 장비사용 교육, 아이디어 기획법 수업과 더불어 전문 멘토링까지 지원하는 등 팀 내부의 협력을 넘어 외부의 전문 인력과 협업할 기회를 적극 제공하고 있다. 즉 KAIST 구성원이라는 제약 조건을 제외한다면 열정과 의지 외에 그 어떤 조건도 필요치 않다. 

2023 KAIST 메이커톤은 대상 1팀, 최우수상 1팀, 우수상 2팀 각각에게 세전 250만 원, 150만 원, 100만 원의 상금을 지급했는데, 대상의 영예는 습한 환경에서 쾌적하게 달리기를 즐길 수 있는 운동화를 제작한 ‘주대유’ 팀에게 돌아갔다. 박주언(산업디자인학과 20), 김대욱(산업디자인학과 20), 송유택(산업디자인학과 17)으로 구성된 ‘주대유’팀은 기후 위기로 인해 아열대화되는 우리나라의 환경에 주목하여 인터렉티브 운동화 ‘쿨런’을 개발했다. 최우수상은 도시 배수로를 최적화하는 청정 하수구 시스템 ‘스마트 하수구’를 개발한 ‘잼 미니팀’이, 우수상은 침수 상황을 조기에 감지해 거주자에게 대피 알람을 울리고 침수를 지연시키는 ‘사물인터넷 차수판’을 발표한 ‘비버’ 팀과 개인 냉방과 해충 퇴치가 동시에 가능한 웨어러블 밴드인 ‘웬디버그’를 개발한 '그린디버그 팀’이 각각 수여했다. 창업지원센터 측은 “기후 위기로 변화된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주대유’ 팀의 작품이 신선했다며, 문제 해결의 중요성도 강조되어야 하지만 더불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또한 제품 자체만이 아니라 패키징까지 꼼꼼히 준비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창업과의 연계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2023 KAIST 메이커톤에 인터렉티브 운동화 '쿨런'을 출품한 '주대유'팀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아이디어팩토리 제공
2023 KAIST 메이커톤에 인터렉티브 운동화 '쿨런'을 출품한 '주대유'팀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아이디어팩토리 제공

 

 

본지는 본 대회에서 수상한 ‘주대유’ 팀을 만나 제작 과정 및 대회 출전 속에 숨어있는 뒷이야기를 듣고자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주대유 팀과의 일문일답이다. 
 

한 팀을 구성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주언(이하 박): 이전에 산업디자인학과 수업에서 같은 팀을 했던 적이 있다. 해당 수업에서는 서비스 디자인과 UX 디자인을 진행했다. 같이 조를 하면서 다른 학우들보다 더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었고,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이후 메이커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두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메이커톤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이전에 다른 산업디자인학과 강의 중에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이 있는 제품을 제작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수업에서 진행했던 방식을 응용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한동안은 서비스 디자인, 혹은 앱 디자인을 해왔었기에, 제품 디자인을 진행하는 메이커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전에 들었던 수업에서의 방식을 어떤 식으로 응용한다는 것인가?

산업디자인학과 수업은 주제가 주어지면 그 주제에 대해 각자의 방향성을 찾아 발전시키고 자신의 생각을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메이커톤에도 ‘기후 변화’라는 대주제가 주어져 있었고, 방향성을 찾아 발전시키는 일이 남은 상태였다. 여기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수업에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과 유사해서 익숙하다고 느꼈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의 보행을 가능하게 하는 운동화 ‘쿨런’을 제작하여 대상을 수상했다.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처음에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는 우산을 생각했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비가 올 때 빗물을 우산의 기둥에 저장한 후, 더위가 심해졌을 때 빗물을 에어로졸로 만들어 주변에 뿌리는 우산이다. 이렇게 하면 물이 기화열을 흡수하여 주변이 쾌적해지는 원리이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를 급하게 적어서 낸 탓에 만족스럽지 못했고, 사나흘간 아이디어를 다시 생각했다. 이 기간 동안은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데 모든 시간을 썼던 것 같다. 그러다 학과의 한 교수님이 ‘유럽에서는 노후화된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을 개조할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럼 에어컨처럼 시원하게 해줄 수 있는 장치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펠티어 소자를 쓰면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펠티어 소자는 온도 조절 기능이 있는 소자로 에어컨이나 김치냉장고에 사용된다.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까 고민한 끝에 신발에 적용하자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쿨런’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쿨런’의 제작 과정에 대해 알고 싶다. 제작 과정에서 변화한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이 있을까?

처음 ‘쿨런’의 아이디어는 사람의 보행 움직임을 이용해, 뒤꿈치 쪽에 압력이 가해지면 사용자의 발 안쪽으로 바람이 들어가 시원해질 수 있도록 공기 펌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펠티어 소자를 부착하면 펠티어 소자가 만든 냉기가 펌프에 의해 순환하며 신발의 전 부분이 골고루 차가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펌프의 제작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제작 과정에서 모종의 오류가 있었는지, 신발 뒤쪽에 압력을 가했을 때 펌프에 의한 바람이 세게 나오지 않았다.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했기에 제작 과정에서는 과감히 포기했다. 

끝내 포기했던 또 다른 아이디어는 구리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구리 테이프는 전연성이 좋으면서도 열전도율이 높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를 신발 안쪽에 붙이면 냉기를 전체적으로 잘 퍼지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시간 부족으로 실제 적용이 힘들었다. 

신발의 외형을 제작할 때는 제작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면서도 콘셉트를 살릴 수 있는 직관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운동화 외형을 보면 원래는 메쉬 소재를 사용했어야 할 부분에 끈을 사용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메쉬 소재를 썼겠으나, 이를 위해서는 공장에 의뢰하는 등 더 정밀한 기술력이 요구되어서 보다 간단히 제작히 가능한 끈을 썼다. 이렇게 해도 우리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외에도 현재 충전 케이블을 통한 유선 충전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를 무선 충전으로 바꾸자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또 ‘쿨런’의 작동 여부를 조절하는 스위치의 위치도 바꾸었다면 좋았겠으나 모두 최종 작품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추후 시간을 더 들인다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을 받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는가?

절대 아니었다. 시간이 부족해서 작품을 급박하게 제작했다. 기존에는 운동화 내부를 3D 프린팅을 이용해 제작하려고 했으나, 인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실리콘 소재로 바꿨다. 그럼에도 실리콘을 굳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다 굳히고 나니 최종 발표를 시작하기 한 시간 전이었다. 발표장에 도착해서도 운동화의 끈을 묶고 있었다. 발표 전에 다른 팀들의 작품을 둘러보니 크기도 크고, 멋있는 시연을 보여주어서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고 발표에 임했다. 다행히 발표를 평가한 심사위원들이 좋은 부분을 많이 봐주셨다.
 

메이커톤 진행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져 있을 때가 스트레스이다. 제품을 성공적으로 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불안하면서도, 어떤 제품을 제작해야 할지도 모르니 답답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제품 제작 과정에서도 스트레스가 있었다. 예컨대 진행했던 3D 프린팅이 실패하거나,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그때의 실패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무엇을 할지가 정해지지 않아서 스트레스만 받아야 하는 시간이 제일 힘들었다. 어떤 제품을 만들지 정하고 나면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진 제품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지 고민하면 된다. 구체화하는 작업은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다.
 

이번 대회를 전후로 해서 바뀐 부분이 있는가?

김대욱 : 대회 이전까지는 주로 컴퓨터를 이용한 제품 디자인 모델링을 공부했었다. 그러나 메이커톤을 진행하면서 현재 할 수 있는 모델링 수준의 한계를 명확히 깨달았고, 이를 다시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대회를 진행하면서 만든 ‘쿨런’의 모델링도 이번 학기 중으로 다시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볼 생각이다. 

박주언 : 원래는 제품 디자인을 아주 싫어하는 학생이었는데, 대회를 참여하면서 ‘이걸 그렇게까지 싫어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제품 디자인을 좀 더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송유택 : 지금까지는 디자인의 결과물을 발표할 때, 지구온난화처럼 이 디자인에 연결된 거대 담론을 강조해서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이번 메이커톤 발표를 준비할 때는 ‘일상의 즐거움’을 강조했다. 굳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거대 담론에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대회를 준비한 아이디어팩토리에서 아주 많은 신경을 써주셨다. 이 행사를 주관하신 분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메이커톤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더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더 많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다. 더 많은 학생들이 대회에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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