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라고 하면, 누군가를 죽이거나 고통을 주기 위해 사용하는 위험한 물질로 인식된다. 인류의 역사만 보더라도 수많은 정치와 음모 사이에 독을 이용한 암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만연했던 독의 위협이 현대에 와서 줄어든 이유에는 그런 독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해독제를 개발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독의 용량을 조절하여 불치병이라 여겨졌던 다양한 질병을 치료하면서 의학의 발전이 있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독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간단하게나마 의학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 오예원 기자
© 오예원 기자

 

독의 시작

영어로 독은 `poison’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라틴어로 ‘마시다’라는 뜻인 `potare’에서 고대 프랑스어인 `puison’으로 변형되었다. 1200년대 영어 문헌을 살펴보면 `poisoun’이라는 단어가 `치명적인 물약이나 물질’, `영적으로 부패한 생각과 나쁜 의도’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영어에서 독은 물약을 뜻하는 `potion’과 어원이 같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특정 나라 언어에서는 독을 `선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독일어, 스웨덴어, 덴마크어 등의 언어에서는 독을 `Gift’라고 말하고, 이는 영어로 선물이라는 뜻인 `gift’와 같은 어원을 가진다. 이는 선물과 독이 모두 갈레노스와 그리스 의사들이 처방을 내릴 때 썼던 고대 그리스어 `dosis’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독은 나쁜 의도를 가진 물약, 처방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다. 사람을 괴롭게 하고 심지어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암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동물을 사냥해서 식량을 구해야 할 때부터 인류에게는 효율적인 사냥 방법이 필요했다. 그 일환으로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무기를 점점 개량해 가며 야생동물을 빠르게 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사슴 같은 동물은 단번에 죽이지 못하면 빠르게 도망가서 놓치기 쉬웠기 때문에, 첫 시도에 죽이지 못 하더라도 사냥에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화살촉과 창끝에 독을 바르는 방법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 살던 사람들도 확실하게 사냥하기 위해 독화살개구리의 독을 화살촉에 발랐다. 그렇기에 독의 또 다른 단어인 `toxin’이 ‘화살촉에 바르는 독약’이라는 고대 그리스어 `toxikon’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몸의 고통, 독의 작용 과정

대부분의 독약은 엄중한 보관하에 아무런 피해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물질이 실수로라도 사람의 몸에 유입된다면, 너무나도 쉽게 죽음에 도달하게 된다. 독약이 인체에 미치는 과정은 유입, 작용, 효과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유입에는 크게 나누면 섭취하거나, 흡입, 흡수, 주사하는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이는 독약의 특성이나 사용 목적에 따라 바뀐다. 독의 작용은 보다 과정이 다양하다. 신경독과 혈액독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신경독은 신경을 훼손하고, 혈액독은 체세포를 파괴하여 몸이 자체적으로 수복할 수 없게 만든다. 독의 작용 과정에서 우리 몸은 살기 위해서 구토, 설사를 통해 독약을 배출하려고 하고, 그래도 제거가 안 된다면 심정지나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눈동자를 크게 해주는 독약

1500년대 중반, 사교계에서는 눈동자를 크게 만들어 주는 약이 유행했다. 1544년, 이탈리아의 의사인 마티올리는 이 안약이 실제로는 어떤 열매의 즙이고, 눈에 넣으면 동공이 확대되어 아름답고 매력적인 눈처럼 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 열매에 아트로파 벨라돈나(belladonna) 즉,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러나 이 안약은 실제로 신경독의 일종이었다. 이 열매에서 추출할 수 있는 독은 아트로핀(atropine)인데 부교감 신경계에 작용한다. 이 신경계가 정보를 전달할 때는 아세틸콜린이라는 화학물질을 시냅스 사이에 분비한다. 예를 들어, 입에 침이 고이게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는 등의 휴식과 소화를 담당하는 부분을 부교감 신경이 맡는다. 그러나 아트로핀은 신경 세포의 아세틸콜린 수용체에 대신 붙어서 화학적으로 정보를 전달하지도 못하게 한다. 이는 생리학적으로 길항제(antagonist)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즉, 아세틸콜린이 전달해야 하는 정보를 차단하기 때문에 아세틸콜린이 비활성화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타액 분비가 줄어들고 입이 바싹 마르게 되어 갈증이 심해지며, 음식물을 넘기는 것이 힘들어진다. 눈물도 말라버리기 때문에 눈이 따갑고 충혈되는 증상이 생긴다. 또한, 아세틸콜린은 빛의 갑작스러운 변화 등, 눈앞에 생길 수 있는 위협에 대비하여 동공을 축소할 수 있는데 아트로핀이 이를 방해하기 때문에 과거 이탈리아의 여인들처럼 동공이 커지는 결과가 초래된다. 그렇기에 아트로핀에 중독된다면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앞도 잘 못 보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뿐만 아니라 피부의 혈관이 확장되어 얼굴이 붉어지고, 뇌신경에 영향을 주어 취한 사람처럼 걸음을 비틀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고열에 시달리며, 심장이 천천히 뛸 수 없어서 빠르게 뛰다가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가 혈압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불규칙한 심장 박동을 심장 근육이 견디지 못하고 마비되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몸속에 단백질을 해체하는 피마자콩

피마자는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는 식물로, 키가 빨리 자란다. 이 피마자에서 나오는 피마자 기름은 아직도 가정상비약으로 쓰이며 어린아이들의 다양한 통증을 완화해 주는 약의 역할을 한다. 맛은 쓰지만, 독약으로 악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전 없이도 복용할 수 있는 약이다. 그러나 피마자에서 나오는 또 다른 물질인 리신(ricin)은 몇 알갱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극독이다.

리신은 신경에 작용하지 않고, 체세포를 파괴하여 몸을 망가뜨린다. 이 독은 리보솜 차단 단백질(RIP)이라고 불리며 리보솜을 파괴하여 새로운 단백질을 생산할 수 없게 만든다. A와 B로 구분하는 두 개의 단백질 체인은 택배 폭탄처럼 B가 A를 체세포 내부 단백질에 무사히 전달하여 A가 폭발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B체인이 모든 세포막 안에 있는 단백질과 결합하고, A체인이 리보솜을 파괴한다. A체인 분자 하나가 연쇄반응을 통해 1분 안에 1,500~2,000개의 리보솜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리신을 섭취하고 나면 최대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리보솜이 비활성화되어, 새로운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고, 세포가 빠르게 붕괴한다. 죽은 세포의 수가 일정 수를 넘어가면 조직이 망가지고, 출혈로 인해 혈액이 장과 소변에도 유입된다. 더 심해지면, 간, 심장, 심지어는 뇌까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몸이 항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겠지만, 해독하기 전에 리보솜의 파괴로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리신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해독제는 없고 대증요법만 존재한다.
 

영롱한 녹색이 주는 죽음

오래전부터 써오던 가장 흉악한 독약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을 죽이고, 네로를 황제로 만들어 준 이 독은 바로 비소다. 이 비소는 18~19세기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벽지에서 비소화합물이 가장 많이 검출되었는데 그 이유는 카를 셀레라는 사람이 개발한 `셀레 그린(Scheele green)’이라는 영롱한 녹색 때문이다. 빅토리아 여왕도 사교장에 셀레 그린으로 염색한 녹색 드레스를 입고 나와 상류층에 이 녹색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자연의 엽록소를 이용해 만든 녹색보다 더 선명하였기에 상류층뿐만 아니라 가정집의 벽지로도 활용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쓰인 비소화합물이 습한 환경에서 증식하는 곰팡이에 의해 비화수소로 변했고, 당시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 적혈구 세포의 붕괴를 일으켰다. 적혈구가 없어 체세포에 산소를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을 질식시켜서 죽이는 것이다. 비소화합물이 위험한 또 다른 이유는 비산염이라는 형태가 인산염과 유사하기 때문에 ATP 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명의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의약품으로 발전된 독

상기한 세 가지의 독은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을 의학계에서 치료제로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아트로핀은 병원에서 심장 박동이 느려진 환자나 멈춰버린 환자에게 사용하여 심박수를 정상으로 돌리는 데 쓰고 있다. 수술 중 체액이 폐렴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도 아트로핀이 발병을 예방한다. 리신의 경우는 아직 치료제로 개발되지는 않았지만, A체인을 원하는 지점에 위치시키면, 종양이나 암 등의 특정 세포를 제거하는 곳에 쓸 수 있다고 한다. 비소는 과거에 매독 치료제로 오해받은 적이 있기도 했고, 현재는 백혈병 치료제로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신약 개발에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시대가 왔다. 다만, 작년 4월에 의학계에 경종을 울리는 논문이 나왔다. AI가 6시간 만에 기존에는 없었던 작용 과정의 독약을 포함하여 약 4만 종의 화학무기 후보물질을 찾았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에 의해 엄중하게 관리되던 독극물의 제조가 이제는 조금이라도 딥러닝을 다룰 줄 알면 인터넷 정보로도 충분히 치명적인 독을 제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대한민국도 독극물 반입을 100%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경각심이 필요하다. 또한, 치료제로 독이 사용되는 예를 봤을 때 같은 물질이라도 독인지 약인지 결정하는 것은 양의 차이다. 결국, 우리 손에 비소가 놓여 있더라도 그게 `독'이 될지 `선물'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참고문헌 | 
<한 방울의 살인법>, 닐 브래드버리, 위즈덤하우스(2023)
<한 권으로 이해하는 독과 약의 과학>, 사이토 가쓰히로, 시그마북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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