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화 - 「콘크리트 유토피아」

8월 9일 개봉 ~ 현재 상영 중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8월 9일 개봉 ~ 현재 상영 중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아파트로 인해 인류는 주거 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밀집한 대도시를 이룰 수 있었고, 그 결과 서울은 콘크리트의 정글이 되었다. 그런데 이 콘크리트의 정글에 대지진이 일어나, 하나의 아파트만 남기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이 일어나 황궁아파트 103동만 남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재난의 명확한 사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의 초점이 오로지 아파트 거주민의 가치관과 관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나 재난이 정확히 어떠한 이유로 일어났는지 궁금하겠지만, 재난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재산을 보호하고, 일신의 안전을 꾀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을 지만이 관심사일 뿐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 외부인에 대한 공포, 그리고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아파트 주민이라는 점에서 오는 선민의식은 아파트 주민을 차차 생존만을 중시하는 괴물로 만든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안에서의 체제는 두 번 붕괴한다. 첫 번째는 재해로 인한 현대사회의 몰락이고, 두 번째는 영탁을 중심으로 한 황궁아파트의 몰락이다. 법망과 사회계약에 기반한 현대사회의 몰락 이후 영탁(이병헌 분)이 이끄는 아파트 체제는 선민의식에 기반한다. 아파트 주민은 그들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며, 아파트 주민이 아닌 이를 배제하고 영화 후반부에서는 다른 생존자에 대한 약탈까지 자행한다. 하지만 이 선민의식은 구조적 모순을 동반한다. 아파트 주민이라는 정체성은 외부인을 몰아내기 위해 뭉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이후 지속적인 생존을 이어가는 데 있어 불만을 심화하는 요소가 된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도 ‘황궁아파트 주민’답게 풍족하게 살고 싶은 욕망은 현실과 괴리를 보이며 분열을 가속한다. 이는 영탁 자체의 근원적 모순과 함께 결합하여 결국 아파트 체제의 붕괴를 초래한다.

영화는 재난의 상황을 통하여 한국 사회에서 ‘내 집’이 가진 의미를 해체하고 풍자한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집, 땅, 건물은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마련하는 경제적 분신인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 상징이다. 재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나의 집을 허락 없이 점거하거나 침입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피가 거꾸로 솟는 일이며, 내가 산 아파트를 무시하는 것은 곧 나에 대한 중대한 모욕으로 간주된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내 집’에 대한 집착이 아파트 주민이 처음으로 윤리적 선을 넘고 악업을 쌓는 계기가 된다. 외부인을 지옥과도 같은 바깥으로 몰아내기 위한 회의의 계기는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닌 사람이 주민을 쫓아내고 아파트에 들어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끝에서 명화(박보영 분)는 황궁아파트에서 나와 새로운 아파트에 들어서 살게 된다. 이 아파트는 문이 없이 여럿이 한 집에서 모여 살고, 옆으로 무너져서 수평적이다. 명화의 “여기 살아도 돼요?”라는 물음에 누군가 “살아 있으면 사는 거지, 뭘 물어.”라고 답한다. 내 집에 대한 집착, 타인에 대한 배척, 그리고 선민의식에 가려져 있었던 당연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속삭이며, 영화의 막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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