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엔 좋은 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은 너무 많아서 문제다. 자기계발서 혹은 성장을 추동하는 책들은 일반론적인 정답만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다 끝난다는 걸 우리 모두는 잘 알 것이다. 왜 그럴까? 맞는 말을 가져왔는데 왜 하지를 못하는 것일까? 그건 맞는 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 중요하다고만 주장하지 뭐가 더 중요한지, 그 우선순위는 빼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택지가 많아지면 용기 있게 택한 뒤 다른 대안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포기하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키우고 싶은 습관이나, 행동에 계속 반추할 단서, 그리고 신념 등을 마음속에 담고 다닌다. 그리고 끊임없이 삶을 이 문장에 비춰본다. 이 과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원래 언어라는 것은 만 가지 궤변이 가능한 법이고, 서로 상충하거나, 명료히 증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어떠한 제한을 두지 않으면 우리는 맨날 언어로 오뚝이 놀음만 하게 된다. 이쪽저쪽을 오가다 결국 혼란만 가중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파스칼은 '신념은 현명한 도박'이라고 말한다. '현명한' 이유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매번 즉흥적인 것보다 시행들의 총합이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며, '도박'인 이유는 신념은 증명할 수 없는 공리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만약 파스칼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인생을 이끌 말들에 개수 제한을 걸고 제대로 도박해야하지 않을까. 이문열 작가의 말마따나 "문제는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선택하는 의식의 순수함과 실천의 성실함"이니까. 

가끔 마음속에는 어릴 때 하던 게임처럼 '슬롯'이 있다는 상상을 한다. 언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작고 소중한 공간들. 개인적으로 슬롯의 개수는 3개~5개 정도가 맥시멈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은 말 중에 무엇이 가장 알짜배기인지 나는 모른다. 아마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그래도 딱 슬롯의 개수 정도만 선택한다. 주머니에 억지로 물건들을 집어넣으면 찌그러져서 제 형태를 못찾거나, 주머니가 터져버리기 마련이다. 생각할 말들이 많으면 사실상 지키기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우선 순위만 정해서 그것들만 기억한다. 선택한 말들을 제외한 나머지 말들은 일단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고치거나 더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계속 담가두었던 말들이 인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될 지경까지 흡수되었을 때, 그제야 슬롯에서 빼고 다른 말을 집어 넣는다. 이걸 반복하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가장 최적의 방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어떤 말들을 되새김질 하고 싶은가.

(1) 진실해지자.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자. (2) 품위는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3) 불완전하고 가혹한 세상에서,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성장해보고 싶다. 나는 내 최대한의 성장 가능성을 원한다. (4) 절망은 언제나 가장 손쉬운 선택지다. 책임감있는 어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5) 너의 해석은 보통 틀린다. 해석과 사실을 구분해라. 우선 함부로 해석하지 말고 사실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파악하라.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생각해 보라. 바꿀 수 있는 일이면 노력하고, 아니면 잊어라.(1번 출처는 기억나지 않으며, 2번, 3번, 4번은 정세랑 작가한테, 5번은 사르트르와 니부어에게 빚을 진 것으로 기억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언어를 택하고 싶은지 몹시 궁금하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