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엄지부터 소지를 접을 때면 이른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 아침 9시 수업을 들으러 달려가는 내 모습을 보며, 다음에는 일찍 일어나야지 다짐한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들어오면 이미 해는 지고, 불을 끌 수도 없는 힘으로 털썩 침대에 눕는다. 그나마 왼손 약지와 오른손 엄지를 접으면 행복하다. 점심 먹기 전에 느릿느릿 일어나서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나면 되고,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사색에 잠길 시간도 생긴다.

이번이 두 번째 기사 수첩인데 작년 가을이랑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심하면 더 심해졌다. 5 전공으로 후회하고 있는 과거의 나를 잊어버린 채 지금은 6 전공을 듣고 있고, 매일 저글링을 하는 심정으로 과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교수님은 나에게 계속해서 폭탄을 던져주신다. 폭탄 하나를 해체하면, 기특하다고 두 개를 주시고, 다음 주에 교수님이 바쁘니까 하나 더 주시고, 그러다 보니 내 손에는 3개의 폭탄이 돌고 있다.

사실 가만히 사색에 잠긴다고 하지만, 머릿속은 어지럽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아깝다. 그렇기에 남은 휴일에 어떤 일을 먼저 해결할지 고민하면서 내 손은 책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책 2권을 읽는 동안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처리해 간다. 모든 일이 제시간에 맞게 끝나고 있음에 깊은 행복을 느끼고, 높게 유지되는 심박수는 정신을 맑게 해준다. 그 사이에도 손은 쉬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하지만, 폭탄 하나의 제한 시간이 24시간도 남지 않았다. 처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내일 빈 시간이 언제 있는지 계산을 해본다. 이런, 또다시 수업 시간에 해결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것 같다. 왜 미리 하지 않았을까 후회해 보지만, 그 후회하는 시간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남은 시간을 확인하러 KLMS에 들어가 보는 데 알림이 20개?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 내 손에는 5개의 폭탄이 돌고 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내 일요일은 거의 끝나 있었다. 조금씩 접혀 가는 검지를 보면서, 일주일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었다. 내 옆에는 터지면 내 생명에 위해를 가할 폭탄 5개와 내 눈앞에는 아직 펴져 있는 오른손의 중지, 약지, 소지가 보인다. 하지만, 이 셋은 순순히 접힐 생각은 없겠지. 눈을 뜨면 다시 왼손 엄지를 접어야 할 거야. 째깍째깍. 심장은 야속하게도 폭탄의 시계 소리에 맞춰 천천히 하지만 끝나지 않는 박동을 유지한다. 나에게 3일만 더 있었더라면! 손가락 열 개를 모두 접어야 한 주가 끝났더라면! 나는 메아리 치지 않는 한탄을 내뱉은 채로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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