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 「피프티 피플」

 

(주)예스이십사 제공
(주)예스이십사 제공

남까지 챙기기 어려운 세상이다. 나 하나 살기 바쁘고, 버겁고, 힘든 세상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복잡해지고 빨라지는 세상에, 다가오는 사람들은 다 신경 쓰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그중 대부분은 스쳐 지나갈 뿐, 잠시 기억 속에 머물고 다시 사라지고 만다. 나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더라도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의 삶을 그만의 형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여기 소소해 보이면서도 절실한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50명의 사람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 ‘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의 저자인 정세랑 작가는 사회의 단면을 담은 소설을 쓰겠다는 동기로 이 책을 써냈다. 50명의 이야기는 모두 신선하고, 또 어딘가 살아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특정 계층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소수 계층을 넘나들어 일상에서 특별한 관심 없이는 쉽게 만나보지 못할 법한, 그러나 분명 우리 주변 어딘가에는 존재하는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짧게는 5페이지에서 길게는 14페이지 동안 서술되고 곧바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단편소설의 형식이다 보니 한 책에서 만난 50명 모두를 기억하기에는 큰 피로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읽을 때는 각각의 삶에 모두 몰입했더라도 읽은 뒤에는 인상 깊은 몇몇 에피소드를 제외하곤 자연스레 잊혀 간다.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함에도 책을 덮고 나면 몰려오는 묵직한 삶의 무게는 주인공들의 작은 무게들이 담담히 쌓여 만들었다. 작가의 말에 적혀있는 것과 같이 ‘한 사람 한 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가 된 것이다.

50명의 주인공은 스쳐 지나갈 정도의 관계성을 가지고 있어 주의깊게 본다면 끝이 난 줄 알았던 에피소드 주인의 이후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전 에피소드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속사정을 알게 되는, 편견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혹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경험일 수도 있다. 이 또한 가벼운 관계에서는 사람의 단편적인 모습만 확인할 수 있음을,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는 그 이상의 관심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 같다.

에피소드의 다수는 병원을 배경으로 진행되곤 한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가까운 죽음을 맞닥뜨렸거나, 다소 멀지만,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죽음을 일상인 양 받아내야만 하는 그들의 현실에서 나도 모르게 희망을 찾고 있는 순간이 온다. 그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답한 삶을 버텨내는 모습은 우리 삶에도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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