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 「오펜하이머」

 

2차대전의 광기 속에서 과학계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핵물리학의 발전과 양자역학의 태동은 재래식 무기의 살상력을 상회하는 신무기의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과학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누가 먼저 원자폭탄을 손에 넣을지 경쟁하였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는 신경질적이던 시대 속에서 맨해튼 프로젝트를 감독하던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삶과 내면의 모순을 조명한다.

UPI 코리아 제공                                                                             8월 15일 개봉 ~ 현재 상영 중
UPI 코리아 제공                                                                             8월 15일 개봉 ~ 현재 상영 중

영화는 1954년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 갱신에 대한 청문회와, 1959년 루이스 스트로스 제독의 장관 임명 청문회 두 가지 플롯으로 전개된다. 긴 상영시간 동안 어지러울 정도로 교차하는 두 시간축은 관객이 “그래서 오펜하이머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속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써 작용한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되며,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명성 이면에 가려진 내면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오펜하이머는 어떻게 해야 원자폭탄의 살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초조하게 잔소리하고 일본에서의 투하 성공에 대해 환희에 차 연설하면서도, 원자폭탄이 가져올 파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수소폭탄 개발 계획을 저지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 모순은 청문회 기소인의 “1945년에는 고민이 없었고, 1949년에는 고민이 많았다?”라는 비아냥을 통해 대표된다. 

일관되지 못한 신념과 오만했던 과거의 행적은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비가역적인 국제 정세의 변화와 동시에 자신의 파멸을 초래한다. 영화 시작부터 쭉, 천재적인 학자였고, 자신만만한 태도를 유지해왔던 오펜하이머는 해리 트루먼과의 만남과 보안 인가를 취소당한 청문회 이후 예상치 못했고, 돌이킬 수도 없는 죄를 쓸쓸히 바라보아야 하는 범인의 위치로 내려온다. 이는 영화에서 오펜하이머의 대사인 “똑똑하면, 모든 게 용서가 돼”, “각하, 제 손에 피가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파멸의 연쇄반응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로 명확히 드러난다. 

파멸의 원인이 일관된 신념의 부재와 내면의 모순으로 비추어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내면의 모순이 없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에 대해 설명하며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양자 세계에서는 사실 양립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서 오펜하이머의 심경 변화는 주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새로운 정보의 습득, 다른 가치관을 가진 인물과의 접촉 등을 통해 신념이 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못된 것은 공산주의자를 편집증적으로 배제하던 매카시즘의 광풍과, 2차대전과 냉전 동안 이어진 진영 대립 속에서 뒤틀린 일관성을 강요하던 세계였을지도 모른다. 

놀랍도록 입체적으로 묘사된 오펜하이머의 전기는 관객에게 다채로운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당신에게 오펜하이머는 누구로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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