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립미술관은 1999년부터 대전·충남 지역의 청년작가들을 꾸준히 발굴하고 소개하며 매년 청년작가지원전을 개최해왔다. 올해 25회를 맞은 대전청년작가지원전의 제목은 <넥스트코드 2023: 다이버, 서퍼, 월드빌더>(이하 <넥스트코드 2023>)로, 김피리, 박다빈, 윤여성, 이덕영, 한수지, 다섯 명의 작가가 선정되어 전시에 참여했다.

이들이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시선과, 장르를 넘나드는 50여 점의 작품들을 묶는 하나의 주제는, 전시의 부제인 ‘다이버, 서퍼, 월드빌더*’다. 대전시립미술관은 이 부제에 대해 “세계의 안과 밖을 탐험하며 독자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하는 신진작가 5명의 도전정신과 실험성, 그리고 전시가 개최되는 2023년 여름이 지닌 특별한 시간성이 공명하는 기호”라고 설명한다. 올여름에는 지난 3년의 여름과는 다르게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을 쓴 사람보다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바깥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숨쉴 수 있게 된 자유, 그리고 격리된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있는 여름에 청년작가들이 조명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전시 포스터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전시 포스터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트라우마의 재해석 -김피리

예술은 관람하는 사람 뿐아니라 창조하는 사람에게도 치유의 방법이 된다. 김피리는 과거 자신의 트라우마를 신화로 재구성하여 시각화한다. 경험에 허구적 서사를 더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기억이 “긍정적 사건의 가능성으로 다시 쓰여진다”라고 설명한다. 김피리의 신비로운 작품들은 사용된 색과 둥근 선들 덕에 따뜻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이 들어가 자세히 볼수록 작가의 트라우마적 경험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평면적인 에칭작업들과 <자라는 손>(2023)과 같은 입체작을 통해 관람객은 작가와 치유의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 

 

그림 1. 달빛 아래서(김피리, 2022)                                ©방민솔 기자
그림 1. 달빛 아래서(김피리, 2022)                                                                             ©방민솔 기자

 

기술을 입은 현시대의 성찰 -박다빈

박다빈은 이미지 생산능력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다시 한번 성찰하고 생각해야 할 기술의 한계, 그리고 이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한계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특히 <New Wave>(2020)는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된 예술품을 전시하는 가상의 전시를 영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전시를 소개하는 큐레이터 또한 인공지능으로 생성했다. 의도적으로 진지하지 않은 그래픽과 자막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 전시를 ‘관람’보다 ‘시청’하게 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고 풍자한다. 이외에도 ChatGPT와 3D 프린팅을 활용한 작품, <Chatty>(2023)과 기술적 예측의 오류에 주목한 영상 작품, <Inhale-Exhale, Breathe>(2023)를 소개한다. 
 

무기력의 실체화 -윤여성

<pain과 pain>(그림 3)은 작가가 무기력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빵을 반죽하고, 뒤집고, 굽던 과정을 전시한 작품이다. 프랑스어로는 ‘빵’을, 영어로는 ‘고통’을 의미하는 ‘pain’을 이용한 언어유희를 통해 빵과 고통 사이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벽 모서리를 가운데 두고 벽 양쪽에 대칭적으로 빵이 든 지퍼백들과 그에 맞는 프린트된 일기가 전시되어 있다. 또, 빵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상과 빵의 재료를 함께 전시하여 마치 관람객이 함께 빵을 만드는 것 같은 친근감과 현실감을 더한다. 빵 반죽의 숨구멍을 관찰하며 뿌듯함을 느낀 윤여성은 숨구멍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종이에 끝없는 원을 그리며 <o의 집중과 연결>(2022), <o의 겹침 2>(2022)와 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되어 있는 <무기력과 느슨함>(2023) 또한 무기력을 실체화한 작품이다.  
 

그림 3. pain과 pain(윤여성, 2023)              ©방민솔 기자
그림 2. pain과 pain(윤여성, 2023)                                                                            ©방민솔 기자

 

낯선 기분을 회화로 -이덕영

이덕영은 일상이 어느 순간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세밀한 흑백 선으로 종이에 옮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년 전 여행에서 길을 헤맸던 경험과 낯선 자연 풍경을 평면뿐 아니라, 영상과 설치 작업으로도 표현했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우뚝 놓여있는 철제 계단, <잔재가 남겨준 계단>(2022)이 눈에 띈다. 흔히 전시회장에 있지 않은 조형물을 어색하게 배치하여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덕영이 경험했던 ‘일상의 낯선 기분’을 함께 느끼게 돕는다. <잔재가 남겨준 계단>(2022)을 중심으로 벽면에 전시된 <방랑계단>(2023), <미완의 계단>(2023) 등 회화 작품들에도 많은 계단과 파이프가 등장한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재로 환상에 있는 듯한 풍경을 그려낸다. 
 

그림 3. 두 기둥(이덕영, 2021)                                                                                  ©방민솔 기자
그림 3. 두 기둥(이덕영, 2021)                                                                                  ©방민솔 기자

 

유사과학의 절정 -한수지

한수지는 디지털 공간과 물리적 공간 사이 경계에 주목한다. 그는 1차원 공간부터 다중 디지털 공간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가상의 생명체, 비트라콘트리아(Bitchondria)를 중심으로 데이터 과학, 해양생물학, 우주과학, 물리학 등 학문 조사를 토대로 구축한 유사과학적 서사를 전달한다. 구체적으로, 전시실 벽면에 재생 중인 영상, <비트콘드리아 xn, yn, zn>(2022)과 <다중 디지털 공간지도>(2023), <비트콘드리아 화석>(2022), 그리고 3 채널로 디스플레이되는 가상 교수의 강의(그림 4)를 전시하고 있다. 관람객은 잘 짜인 유사과학 각본에 들어가 과학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 혼자 남들과 다른 진실을 알고 있을 때의 어색한 기분도 체험할 수 있다. KAIST 구성원이라면 어색함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다. 
 

그림 4. MIT(Multi-Digital Space Institute of Technology) 브루스 글리크너 교수 강의 2: 비트콘드리아와 다중-디지털 공간 존재증거(한수지, 2022)                                                                        ©방민솔 기자
그림 4. MIT(Multi-Digital Space Institute of Technology) 브루스 글리크너 교수 강의 2: 비트콘드리아와 다중-디지털 공간 존재증거(한수지, 2022)                                                                        ©방민솔 기자

 

<넥스트코드 2023>은 마치 다섯 개의 전시를 본 것 같은 다양한 감상을 준다. 전시 내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는 여러 담론을 통해 궁극적으로 대전 충남 지역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들이 현재 어떤 사회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는지, 과거와 미래에 관한 한 세대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이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영감을 얻어갈 수 있는 전시다. 

마지막으로, 전시를 더 풍부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넥스트코드 2023> 전시해설을 운영하고 있다. 화요일에서 일요일, 매일 16:00에 3전시실 앞에서 시작하며 20~30분이 소요된다. 20인 이상 단체 관람이 아닌 경우 별도의 예약 없이 당일 선착순으로 현장 접수할 수 있다. 또, 대전시립미술관은 <넥스트코드 2023>의 전시 스케치 영상과 다섯 청년작가의 각 2분 내외의 ‘아티스트 토크’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하여 관람객의 이해와 감상을 돕고 있다. 8월 22일과 24일에는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인 윤여성 작가와의 만남을, 9월 2일에는 <넥스트코드 2023> 라운드 테이블을 운영하며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하기도 했다. 


장소 | 대전시립미술관 3전시실, 4전시실
기간 | 2023.06.27 ~ 2023.09.10
요금 | 성인 500원(만 25세 이상), 학생 300원
시간 | 화~일요일 10:00 ~ 19:00
문의 | 042-270-7341
 

*월드빌더(World Builder)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신직종 중 하나로, 본 전시명에서는 특정 직업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신진작가들의 동시대적 혁신성을 은유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출처: 대전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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