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의 글은 제가 고3 시절, KAIST 면접 전날 겨울밤에 쓴 글입니다. 저는 무엇을 기다렸습니까. 아직 찾는 중인가 봅니다.

세상에! 놀라울 정도로 별빛 하나 없는 밤이다. 저들은 대체 무슨 명분으로, 기대로, 그리고 꿈과 희망으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좋다. 유리창 별빛들을 뒤로 하고 나는 제가 태양인 체 우뚝 서 있는 웬 가로등 하나를 마주하고 있다. 그 주변의 골목은 모두 빈 유령 건물이거나 지나치게 세련되었다. 양면적인 거리를 단 한마디로 정의할 수가 있다면 그래, 그 가로등이었다. 보름달보다 둥글고 시리우스보다 밝으며 태양보다 티 없는, 그리고 나만이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불꽃 아래에서 나는 살짝, 독점욕을 꺼내 보았다. 나는 가로등 근처 인도의 초록색과 불그뎅뎅한 빛으로 얼룩진 추한 테셀레이션을 온몸으로 가렸다, 입고 있는 겉옷도 벗어 펼치고, 내 영토를 더욱 넓혔다. 이대로 영원히 멈추어버린다면 태양이 뜰 것이다. 그것은 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정말 난감한 것은, 공무원 나리들이 가로등 씨와 일말의 대화도 해 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전력을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즉, 가로등을 태양의 호환 품쯤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직 가로등을 위한 일장연설을 토한 적이 없어 나는 그 옆에 영원할 것처럼 누워있기라도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나는 이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사랑하는 이일 지도 모르고, 증오하는 지도, 혹은 비즈니스적이고 지루한 관계일 수도 있다. 누가 되었건 내 첫 말은, “아냐,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그러나 나만이 아는 세계를 마음 한구석에 품는다는 것은 그것이 필연적인 만큼이나 애틋한 일이다. 떠벌릴 수는 없으니 가로등 씨라도 이를 보아주고 그 증거가 되어준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고마워 내심 울컥하였다. 나는 내 영혼이 이곳에 있었다는 그 증거를, 감히 가로등 씨에게 동의도 없이 심으려는 것이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는지 검토해볼 즈음이다. 너와의 관계가 이미 파탄 났다 하여도 너는 언젠가 이곳에는 와 줄 것이다. 모든 공간에 중첩된 네가 한 번쯤은 이곳에 와 줄 것이다. 가로등이 그 증거다. 사람 하나 없는 이 거리가 증거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시리우스 별빛 하나에 삼켜져 버리고, 부정적인 미래 예측은 죄다 가로등 씨가 맡아주어, 나는 정말 언제까지나 이 밤에서 너를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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