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가 지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되어갑니다만, 여름의 무더위는 아직 꺾일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확실히 근래에는 가을이 짧아지고 있음이 피부로 와닿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지만, 한창 더웠던 7월과 8월을 지나쳐, 가을학기의 첫 신문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덧 처서를 넘어 백로의 시기가 되었습니다. 

백로(白露),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이슬이 맺히는 시기입니다. 이맘때부터 슬슬 일교차가 커지면서 밤에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히면서 가을의 기운이 완연하게 나타납니다.

백로의 시기는 선선한 가을바람이 돌며 곡식들이 풍성하게 여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보통 백로는 무더위 속에서 고되게 지었던 여름 농사를 뒤로 하고, 곡식이 여무는 기간에 서리가 내려 농사를 망치지 않기를 바라며 농사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백로가 지나면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송편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정을 쌓는 추석이 찾아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매해 백로가 될 때마다 괜스레 두근거리는 기분이 듭니다. 아직 추석이 되지도 않았는데, 백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미리 짧은 가을 방학을 기대하며 꿈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9월은 여름방학 새에 쉬면서 굳은 몸을 풀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백로가 되면, 개강 이후 무겁게 느껴지는 몸을 뒤로 하고, 곧이어 찾아올 추석을 더 애타게 바라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꺾이지 않던 여름의 더위가 백로를 맞이하면 조금이나마 사그라들지 않을까 하며 나름 기대감을 품고 있습니다만, 기사를 쓰는 오늘까지는 기대하는 마음이 무색하게도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는 잠을 못 이루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독자님들이 기사를 읽으실 때 즈음에는 딱 백로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올해 백로에는 에어컨을 졸업해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잠에 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마음 한 켠에 작은 소망을 품고 백로가 찾아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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