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간의 이름은커녕 얼굴도 알지 못하는 5명이 만나 또 다른 5인조와 경쟁을 해야 한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서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5명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게 합을 맞춰본다. 가끔 이 단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번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상대방과 경쟁할 시간이다. 초반에는 각자 1대1, 2대2로 합을 겨루고 독특하게도 한 사람은 인공지능과 싸우게 된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게임 시작 전 잔이 식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선언한 친구가 목만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자주 있는 일이기에 개의치 않고 나의 일에 집중했다. 2대2로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상대방의 거처를 먼저 철거했다. 일단 5명 중 2명의 1차적 승리는 달성한 셈이다. 여유가 생긴 나는 남은 3명의 상황을 살펴보게 되었다. 아뿔싸, 3명 모두 상대방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했다. 슬픔, 분노라는 두 가지 감정이 솟구치는 순간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의 상대적 우위를 활용하여 남은 3명의 상대적 열세를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마음을 다잡고 동료들을 설득하며 상대를 하나, 둘 물리쳐 갔다. 승리의 편린이 보인 찰나의 순간, 자기 객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자신이 관우인 양 적진으로 돌진하는 한 사내가 등장했다. 놀랍지도 않게 당연히 우리 동료다.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기에는 3초도 필요하지 않았다. 난 그 순간 직감했다. 아주 긴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시작한 지 45분쯤 지났을까, 팽팽하던 균형이 한 순간에 무너졌다. 드디어 승부를 결정지을만한 압도적인 5대5 싸움을 승리했다. 상대의 건물을 3개 정도 부수고 마지막 건물을 앞둔 순간, 우리는 다시 태어난 상대를 이길 확신이 없었기에 후퇴하게 되었다.

시간은 5분 정도 흘러 시작한 지 50분이 가까워졌을 때, 잊힐 만하면 다시 등장하는 관우 덕에 우리팀은 모두 검은 화면을 맞이해야 했고 화면의 색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19/5/12와 84,199 숫자들의 나열을 보고 있으니 지난 50분간의 시간이 무상해졌다. 이런 게임 양상이 몇 판째인지 모르겠다. 이 뒤로 난 원거리 딜러에 손도 대지 않고 있다. 

일부 독자 여러분들은 눈치채셨을 수도 있지만 대중적인 게임, 일명 LOL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올 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이 게임에 손을 대게 되었고 덕분에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극적인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모르는 이에게 인생 최대의 분노를 느끼고 싶지 않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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