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KAIST 학부·대학원 총학생회를 포함한 9개 대학 학생회는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을 발표했다. 우리 학교 외에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를 비롯해, POSTECH(포항공과대), UNIST(울산과학기술원), GIST(광주과학기술원),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UST(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 등 이공계 연구 중심 대학 학생회가 행동을 같이했다. 학생들은 성명서를 통해 정책 입안 및 예산안 수립 시 정부가 과학자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R&D 예산 삭감 결정의 재고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번 성명서는 정부가 내년도 과학기술 연구개발 사업비를 올해 대비 16.6%인 5조 원 이상 삭감한 예산안을 발표한 것에 반발한 집단행동이다. 국가 연구개발 예산이 삭감된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4년 이래 사실상 처음 있는 초유의 사태이다. 이번 결정으로 우리 학교를 비롯해, 대덕단지의 여러 정부 출연 연구기관들은 물론 한국 과학계 전체에 비상에 걸렸다. 급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중장기적인 계획하에 진행해야 하는 각종 연구개발 사업들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향후 연구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게 되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또한 건전한 과학 생태계의 존립과 학문 다양성이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정부는 나눠먹기식의 소액 지원 대신, AI, 첨단바이오, 양자 컴퓨터 등 차세대 혁신 기술과 바이오, 우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사업성이 높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예산을 확충했다. 반면 투자 대비 성과가 불투명한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이 삭감되었고, 특히 기초 분야의 연구비가 6.2%나 줄었다. 한국의 연구개발정책은 이전부터 기초 연구보다는 응용, 개발 분야에 전략적으로 치중하는 구조였는데, 이번 조치로 인해 앞으로 단시간에 경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운 분야의 연구는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삭감된 예산 자체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한국 과학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칠 이번 결정이 과학계의 의견 청취 없이,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데 있다.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 예산은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예산 대폭 감축이 발표되었다. 물론 과학계의 기존 관행이 갖는 비효율이나 문제점이 있다면 사안에 따라 철저히 개선해야 하지만, 이는 결코 R&D 예산 일괄 삭감이라는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졸지에 ‘카르텔’로 몰린 과학자들의 사기 저하뿐 아니라, 예산 삭감으로 인한 한국 과학 생태계의 왜곡, 나아가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국가 경쟁력의 저하가 크게 우려된다. 정부는 과학자들에 대한 존중을 요구하는 젊은 과학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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