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일기를 쓴 게 언제인지 진심으로 가물가물합니다. 그동안 제 다이어리는 책갈피가 오늘을 한참 까먹은 채 과거에 있었겠지요. 친구가 독자칼럼을 제안했을 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지금 제 생각, 감정들을 놓치겠구나! 이거 생각보다 좋은 기회 같은데? 하는 마음에 덥석 하겠다 답했습니다. 중요하거나 깊이 있는 생각도 아니겠지만, 그때를 회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기를 저는 좋아합니다.

요즘 저는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경제활동을 하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커리큘럼도 만들어 보고 많은 활동을 하면서 책임이라는 것을 격렬히 체감하고 있습니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이 왜 많은 공감을 받는 건지 깨닫고 있기도 합니다. 더블 체크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나요? 매일매일 무리해서 3시간만 자다가는 언젠가 큰 실수를 벌일 수도 있습니다. 또 시간약속, 적절한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청결은 기본입니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기숙사랑은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나만의 공간과 내 편인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계속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집에 제가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30분이라도 제가 안 보이면 저를 찾고 오랜 시간 돌봐 주지 않으면 병나버리는 가녀린 존재입니다. 양치시켜야 하는데 꽤 어렵습니다. 억지로 시키자니 얘가 싫어하고 할 때까지 놀자니 시간이 걸리네요. 언제나 그렇지만 전 이 아이에게 항상 져서 오래 놀면서 양치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전 아직 어른이 되기에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매번 마감 가까이서 일을 마무리하니.. 언제쯤 미리미리 할 일을 끝낼지 모르겠습니다. 임기응변과 효율적인 일 처리를 한다는 것은 좋은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한 번 진짜 아슬아슬했을 때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생각하면 정말 진저리가 납니다. 언제쯤 저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까요. 사실 나이 먹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가 전 17에 계속 머물러 있네요.

약 6주 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을 견디고 5일 정도 휴가를 냈습니다. 주변에서 계속 괜찮냐고 물어볼 때 항상 괜찮다고 했었지만 제 몸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휴가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네요. 그래도 아쉽지만, 오전 오후만 자유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녁과 밤은 다른 일이어서 휴가를 내지 못했습니다. 모교에 가고 싶다는 학생 몇몇을 봐주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 기사가 올라갈 즈음에는 모두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다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안되었다고 해도 그 경험이 해가 아닌 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 일 없이 여유로운 것이 불안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조금 많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중엔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혹은 해야만 할 것 같은 일도 있었네요. 모두 해내니 조금은 뿌듯하지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 보니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미안합니다. 제가 하겠다 한 일 때문에 제 몸도 제 주변도 조금 지쳐 보입니다.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는 조금 거절하는 연습을 해볼까 합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니 조금은 목적성이 흐려졌습니다. 덕분인지 무너진 우선순위에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신선하고 상쾌합니다. 조금은 방황도 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KAIST에 와서 참 다행입니다. 과를 정해서 입학했다면 이런 방황은 없었을 테지만 뜻깊은 고찰도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괴로워서 조금이라도 의미를 더 찾아내는 걸지도 모르겠군요. 어렵습니다.

연락이 뜸해 미안했습니다. 조금은 바빴습니다. 개학하면 더 자주 볼 수 있겠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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