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와 음악 페스티벌들이 많은 여름에는 곳곳에서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선선한 밤공기를 맞으며 밴드 음악을 듣는 여름밤, 축제에서 울려 퍼지는 빠른 비트의 음악 소리와 세션의 화려한 퍼포먼스 따위를 떠올리면 어렵지 않게 기억 속의 한순간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같은 순간을 경험한 모든 사람이 음악을 같은 방식으로 지각하고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사람은 멜로디를, 다른 사람은 특정 악기의 소리를, 또 다른 사람은 같은 멜로디라도 전혀 다른 선율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음악이‘진짜’음악이었던 걸까요? 작곡가가 처음 음악을 작곡했을 때 상상했던 버전일까요, 곡이 연주되며 점차 수정된 버전일까요, 그도 아니면 음악을 처음 들은 관객의 마음속에 있는 버전일까요?

 

ⓒ 오예원 기자
ⓒ 오예원 기자

 

청각적 착각, 착청 현상

당연하게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음악의 ‘진짜’ 형태는 유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음악은 감상자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음악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에 따라 음악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른 까닭은 청각 시스템이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청각이 일으키는 착각을 바로 ‘착청 현상’이라고 합니다.

청각은 착시 현상으로 잘 알려진 시각 이상으로 착각을 일으키기 쉬운 감각입니다. 이는 청각 시스템이 시각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양의 신경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각 시스템은 외부에서 투사된 빛의 패턴이 양 눈의 망막에 상으로 맺히면, 망막에 있는 광수용체가 신호를 받아들여 뇌의 중추에 보내는 방식으로 물체를 인식합니다. 이때, 한쪽 눈에만 약 126,000,000개의 광수용체가 있고, 대뇌피질의 3분의 1이 시각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청각 수용체(털 세포)는 한쪽 귀에 약 15,500개에 불과하며, 이 중에서 뇌로 전달되는 신호는 3,500개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청각에 사용하는 대뇌피질의 양 역시 3~20% 정도로, 시각과 관련된 피질과 비교하면 명백히 적은 양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이렇게 적은 양의 신경조직으로도 수많은 물체에서 반사되어 귀에 전달된 복잡한 소리의 파형을 재구조화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합쳐진 소리를 개별적으로 분리해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처리 과정을 적은 수의 신경조직만으로 수행하려면 그만큼 복잡한 신경 경로를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뇌는 사전 경험이나 주의집중, 기대와 예상 등에 의한 정보를 사용하여 무의식적 추론이나 하향식 처리(Top-down processing)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착청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림 1」 무엇-어디 시스템이 옥타브 착청을 만드는 원리를 설명한 모델.
「그림 1」 무엇-어디 시스템이 옥타브 착청을 만드는 원리를 설명한 모델.

 

옥타브 착청과 무엇-어디 시스템

이제 단순한 패턴의 착청 현상을 하나 살펴보겠습니다. 한 옥타브 간격의 두 음이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반복되는데, 오른쪽 귀에 고음이 들릴 때 왼쪽 귀에는 저음을 들려주고, 반대로 오른쪽 귀에 저음이 들릴 때는 왼쪽 귀에 고음을 들려주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오른쪽 귀에 ‘고음-저음-고음-저음’이 들릴 때, 왼쪽 귀에서는 ‘저음-고음-저음-고음’이 들리는 방식입니다. 오른쪽과 왼쪽 귀에 동일한 소리가 번갈아 제시되고 있으므로, 양쪽 귀가 음을 정확히 인식한다면 고음과 저음이 교차하듯 들리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쪽 귀에서는 고음만 띄엄띄엄 들리고, 반대쪽 귀에서는 저음만 띄엄띄엄 들리는 방식으로 소리를 지각합니다. 정리하면 오른쪽 귀는 ‘고음-무음-고음-무음’으로, 왼쪽 귀는 ‘무음-저음-무음-저음’으로 들리게 되는 겁니다.

여기서 더 놀라운 점은, 청자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에 따라 높은음과 낮은음이 들리는 방향이 통계적으로 다르다는 점입니다. 청자가 오른손잡이라면 오른쪽에서 고음을 듣는 경향이 강하지만, 왼손잡이는 반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이애나 도이치(Diana Deutsch)는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뇌에 두 개의 분리된 시스템이 존재한다고 가정했습니다. 들리는 음의 높낮이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무엇 시스템(What system)’과 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를 판단하는 ‘어디 시스템(Where system)’이 바로 그것입니다.

무엇 시스템으로 소리를 결정할 때는 우세귀에 도달하는 음의 높이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비(非)우세귀가 듣고 있는 음의 높이에 관한 의식은 억제합니다. 반면, 어디 시스템은 음의 높낮이와는 관계없이 고음이 들리는 방향에서 음이 들린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오른손잡이가 오른쪽에 고음, 왼쪽에 저음을 들으면 무엇 시스템이 오른쪽 귀가 고음을 듣고 있다고 판단하고, 어디 시스템은 오른쪽에서 소리가 들린다고 판단합니다. 곧이어 오른쪽에 저음, 왼쪽에 고음을 들으면 무엇 시스템이 오른쪽에 저음이 들린다고 판단하지만, 왼쪽 귀에 들린 고음이 어디 시스템의 주의를 끌어 왼쪽에서 저음이 들린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왼손잡이의 경우 반대가 되고요.

이렇게 무엇-어디 시스템의 해리 현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1차 청각피질 옆에 있는 측면 벨트의 뉴런이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측면 벨트 앞쪽에 위치한 뉴런은 소리가 무엇인지만 판단하고 어디에서 나는지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뒤쪽에 위치한 뉴런은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오는지에만 반응했고요. 연구자들은 뉴런들이 이 두 영역으로부터 뇌의 다른 영역으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를 매개하는 것이 바로 ‘무엇’ 경로와 ‘어디’ 경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2」 음고류 원. 셰퍼드 톤(C#→D)에서 두 음을 결합시키는 방식.
「그림 2」 음고류 원. 셰퍼드 톤(C#→D)에서 두 음을 결합시키는 방식.

 

순환 음계와 셰퍼드 음

착청 현상은 영화 음악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영화 <덩케르크(2017)>에서,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Hans Zimmer)는 셰퍼드 음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연속된 소리를 사용했습니다. 끊임없이 상승하는 듯한 관현악 패턴이 영화의 긴장감을 고조하는 백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셰퍼드 음 역시 일종의 착청 현상에 속합니다.

셰퍼드 음계는 심리학자 로저 셰퍼드(Roger Shepard)가 펜로즈 계단의 원리를 청각에 적용해 만든 음계입니다. 이를 들으면 어떤 음이 끝없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듯한 환청을 느낄 수 있죠. 셰퍼드 음을 만드는 방법은 조금 복잡할 수 있으므로, 유튜브에 셰퍼드 음을 검색해서 들어보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셰퍼드는 먼저 옥타브 간격으로 10개의 순음(소리의 주파수 성분이 하나인 음)을 합성해 복합음(두 종류 이상의 주파수 성분으로 구성된 소리)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 복합음을 모아 소리 뱅크를 세팅했습니다. 쉽게 말해 피아노로 같은 음이름에 해당하는 모든 건반을 한 번에 눌렀다고 상상하시면 됩니다. 그런 다음 저음의 건반은 매우 작게, 중간 음역대로 갈수록 세게, 다시 고음으로 갈수록 매우 작게 누르는 방식으로 각 음역대의 순음 음량을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각 복합음의 음고류(같은 음이름을 가진 음들의 집합)는 잘 파악되지만, 음의 높낮이는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이제 지각되는 음의 높낮이는 고정한 채, 음고류를 반음씩 시계방향으로 움직이면 음이 끝없이 올라가는 것처럼 들립니다. 반대로 반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면 음이 끝없이 내려가는 것처럼 들립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이는 ‘근접성의 원리’에 의한 효과입니다. 근접성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들끼리 연관 짓는 경향을 뜻합니다. 우선 C#-D라는 셰퍼드 음계 패턴을 재생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두 음을 연결하는 방식으로는 움직임이 지각되지 않거나, 두 음이 음고류 원에서 더 가까운 거리로 결합되어 올라가는 것처럼 들리거나(그림 2, 왼쪽), 더 먼 거리로 이동한다고 지각하여 내려가는 것처럼 들리는(그림 2, 오른쪽) 세 가지 방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지각 시스템은 반음 간격일 때는 항상 근접성의 원리에 기초하므로, C#-D 셰퍼드 음계를 들으면 계속 올라가는 것처럼 들립니다. 반대로 D#-D와 같은 음계는 끝없이 내려가는 것처럼 들리게 되죠.
 

노래로 변하는 언어

때로는 말이 노래로 변하는 착청 현상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 착청 현상은 음원의 소리 신호 변화 없이 단순히 동일한 구절을 여러 번 반복 재생함으로써 발생합니다. 다이애나 도이치는 음원 CD의 내레이션을 점검하다가 이 중 한 구절인 “Sometimes behave so strangely”라는 구절을 반복해서 여러 번 들은 뒤에는 이 구절이 노래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언어와 음악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에는 원본 음원과 동일한 음원을 10번 반복해서 들려주었고, 두 번째 그룹에는 음높이를 위아래로 살짝 변조시킨 음원을 10번 반복해서 들려주었습니다. 세 번째 그룹에는 음높이는 같지만, 단어나 음절의 순서를 바꾼 음원을 10번 들려주었죠. 이때 처음과 마지막에 제시된 음원은 모두 동일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음높이나 음절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동일한 음원을 반복해서 들은 사람일수록 말을 음악으로 지각하는 비율이 늘어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합창단 경험이 있으며 음을 능숙하게 따라 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구절을 변조 없이 10회 반복해서 들려주자 대부분 구어보다는 음악에 가까운 동일한 멜로디로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착청 현상을 경험하며, 각자의 마음속에서 만든 간단한 선율에 맞추기 위해 음높이를 왜곡시킨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반복이라는 특성은 말을 노래로 지각시키는 중요한 장치가 됩니다. 또한, 이러한 지각적 변화는 운율적인 특징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음악은 강박에 강세가 있는 음절이 나타나도록 리듬을 고려해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Sometime behave so strangely”라는 구절에 유독 강한 착청을 느낀 까닭은 이 구절의 음고 패턴이 웨스트민스터 차임에 등장하는 구절과 유사하며, 리듬은 <루돌프 사슴코>와 비슷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착청 현상은 사람들이 음악을 지각하는 방식에 현격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음악과 뇌, 그리고 청각이 만들어 내는 이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현상이 복잡한 청각 메커니즘의 비밀을 밝힐 열쇠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 
<왜곡하는 뇌>, 다이애나 도이치, 에이도스(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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